흑해 동부에 위치한 옛 소련 국가 조지아의 정부가 러시아식 언론·시민단체 통제법 제정 의지를 굽히지 않으면서 시민들의 저항도 거세지고 있다.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서 11일(현지시각) 5만여명이 참가한 ‘외국 대리인 법’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조지아 국기와 유럽연합(EU) 깃발을 흔들며 행진했고, 일부는 우크라이나 국기를 들고 있었다.
조지아 시민들은 정부가 지난해 시민들의 반발에 직면해 철회했던 법 제정을 최근 다시 추진하자 한달 이상 반대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그동안은 청년들 중심으로 시위가 벌어졌으나, 이날 시위에는 나이 든 시민들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고 통신은 전했다. 이날 시위는 지난 1일 의회의 법안 심의 저지를 위해 시민들이 의회 건물 봉쇄를 시도했던 때와 달리 대체로 평화적으로 진행됐다.
논란이 되는 법안은 전체 예산 가운데 20% 이상을 외국으로부터 지원받는 언론이나 비정부기구는 정부에 “외부 세력의 이익을 추구하는 기관”으로 등록하게 하는 내용이다. 이는 러시아 정부가 지난 2012년 제정한 법과 아주 유사해, 법안 반대자들은 이 법을 ‘러시아식 법’으로 부른다. 동유럽에서는 ‘외국 대리인’이라는 표현이 냉전 시절의 ‘외국 간첩’을 연상시켜, 시민들의 반감은 더욱 크다.
시위에 참가한 학생 아누키(22)는 젊은 세대는 “우리 세대와 이후 세대의 안전을 확보하고 표현의 자유를 누리게 만들”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러시아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라클리 코바히제 총리는 전날 반대 세력이 젊은이들을 호도하고 있다며 법안의 의회 통과 강행 의지를 밝혀 시위대를 더욱 자극했다. 조지아 의회는 13일부터 이 법안 통과를 위한 마지막 심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코바히제 총리는 친유럽 성향의 살로메 주라비슈빌리 대통령이 이 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의회 표결을 통해 거부권을 무력화시킬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유럽연합이 지난달 초부터 이 법안에 대한 우려를 제기해온 데 이어 미국도 우려를 표명했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소셜미디어에 쓴 글에서 “우리는 조지아의 민주주의 후퇴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조지아 의회는 국민들의 유럽·대서양 (지향) 열망을 지지할지, 민주주의 가치에 반하는 크렘린 스타일의 ‘외국 대리인 법’을 통과시킬지 결정적인 선택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조지아 국민들과 함께 한다”고 강조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