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멸한 철권 통치…'부자 세습 독재' 시리아 아사드 망명 (2024.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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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4-12-10 10:25 조회13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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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멸한 철권 통치…'부자 세습 독재' 시리아 아사드 망명
- 한승동 에디터
- 승인 2024.12.09 13:20
우크라 전쟁과 이-팔 전쟁 영향이 결정타
반군 총공세 12일 만인 8일 수도 함락, 망명
이후 시리아 이끌 반군 HTS 수장 졸라니?
러시아와 미국까지 개입한 복잡한 대리전
런던 투자분석가와 결혼 아사드, 일족 영화 추구
부자 세습 50여 년의 시리아 바샤르 알아사드(59) 정권의 철권 통치체제가 지난 달 27일 반군 공세가 본격화한 지 불과 12일 만인 8일 급작스레 무너졌다. 제대로 대응도 해보지 못한 채 비행기를 타고 긴급히 탈출한 아사드 대통령 일가는 이날 지원국인 러시아 모스크바로 가 망명했다.
30년을 집권한 하페즈 알아사드가 사망한 2000년에 출범한 그의 아들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급작스런 붕괴는 2011년부터 시작된 내전의 장기화에 따른 경제 사회의 피폐와 아사드 일족 지배 정권의 무능과 부패, 분단(분열)과 탄압을 일삼은 공포정치에 대한 대중의 반감, 그리고 최근의 외부정세 변동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우크라 전쟁과 이-팔 전쟁 영향이 결정타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결정적 작용을 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러시아와 이란의 지원에 크게 의존했던 아사드 정권은 이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제대로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처지에 몰렸다. 러시아는 우크라 전쟁의 장기화로 인한 병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시리아 난민 수천명을 투입할 정도로 어려워진 상황에서 우크라 공세에 전력을 집중했다. 주요 지원세력 중의 하나였던 이슬람 무장세력 헤즈볼라도 최근 이스라엘 군의 집중 공격으로 하산 나스랄라 등 지도부 주요 인물들이 살해당하면서 조직 자체가 와해 위기에 직면했다. 헤즈볼라와 하마스를 지원해 온 이란마저 서방의 제재 등에 따른 내정 위기와 이스라엘의 공세로 아사드 정권을 제대로 지원할 수 없었다.
그 허점을 노린 레반트 해방위원회(HTS. 샴 해방위원회)가 이끄는 반군이 전격적인 대규모 공세에 나서면서 순식간에 아사드 정권의 핵심 거점인 제2도시 알레포가 함락되고 뒤이어 하마, 홈스 등 주요 도시들이 차례차례 무너졌다. 그리고 수도 다마스쿠스마저 거의 속수무책으로 점령당했다. 외부 지원이 약화된 상태에서 이미 사기가 크게 떨어진 정부군은 반군의 공세에 저항다운 저항도 하지 못했다. 철권통치체제에 구멍이 뚫리자 움츠리고 있던 전국 각지의 반아사드 세력이 들불처럼 동시다발적으로 들고 일어났다.
이드립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해 온 반군 핵심 HTS는 원래 국제 테러조직인 알카에다에서 파생된 조직으로, ‘알누슬라 전선’이란 이름으로 활동해 오다가 2016년에 알카에다에서 이탈한 급진적 이슬람 조직이다.
튀르키예와 이라크, 요르단, 레바논, 이스라엘에 에워싸인 중동의 중심이자 ‘문명의 십자로’라 불렸던 시리아 아사드 장기 철권통치체제의 급속한 붕괴는 중동정세에 적지 않은 충격파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10여년 간 지속된 내전에 개입했던 미국, 러시아, 이란, 그리고 반정부 세력을 지원해 온 쿠르드족 분리독립 문제를 안고 있는 튀르키예 등의 지정학적 계산과 전략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아사드 정권 붕괴 이후 시리아 누가 이끄나?
“시리아를 통치할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11월 27일 북서부 시리아 이드립에 있는 본거지에서 공세를 시작한 42세의 HTS 수장인 아부 무함마드 알 졸라니”라고 <이코노미스트>는 8일 기사에 썼다. 기사에 따르면 졸라니는 이슬람식 가명을 버리고(그의 텔레그램 채널은 이제 그를 ‘아메드 알-샤라 대통령’이라고 부른다) 기독교인과 여성들에게 엄격한 이슬람 규범을 부과할 계획이 없다는 걸 확신시켰다. 8일 저녁에 그는 시리아 국영 텔레비전을 통해 “미래는 우리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다른 젊은 수니파 강경파인 사우디 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과 비교되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지만, 시리아에서 알카에다의 지도자로 활동했던 과거와 라이벌에 대한 잔혹한 탄압으로 잘 알려진 그의 리더십을 다른 반군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아직 미지수다. 여러 세력으로 구성된 연방정부를 구성할 수도 있고 새로운 내전이 시작될 수도 있다.
내전의 시작
2010년 말에 중동지역 민주화운동, 이른바 ‘아랍의 봄’이 시작되면서 튀니지와 리비아, 이집트 등에서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2011년 3월에는 그 파장이 시리아까지 미쳤다. 아사드 정권은 반정부 항의시위를 무력으로 탄압했다. 이에 대해 시리아 각지에서 반정부 세력이 무장하고 저항에 나서면서 내전이 시작됐다.
유럽 정치지형까지 바꾼 난민사태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에 따르면 내전 발발 전 인구의 4분의 1에 가까운 490만 명 이상이 인근 튀르키예 등으로 피난했다. 국내 피난민까지 합하면 1300만 명에 이르는 난민들이 나라 안팎으로 이동한 대규모 ‘난민사태’는 유럽 정치의 우경화에도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러시아와 미국까지 개입한 대리전
이처럼 시리아 내전은 아사드 정권과 거기에 저항하는 반정부 세력간의 싸움이었으나, 북부지역 거주 쿠르드족의 무장조직과 급진적 과격파 조직 ‘이슬람 국가’(IS) 등이 참전하고, 주변 중동국가들이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각기 다른 세력들을 지원하면서 대리전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게다가 미국, 러시아 등 강대국들도 거기에 가담해 내전은 한층 더 복잡해지면서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장기전이 됐다.
주요 전투세력은 아사드 정권과 이에 저항하는 반정부세력, 쿠르드 무장세력으로 대별된다. 아사드 정권을 지원한 것은 러시아와 이란이다. 시리아의 지중해 연안에 해군과 공군 기지를 갖고 있는 러시아는 2015년 9월부터 IS와 반정부세력에 대한 대규모 공습을 시작해, 2016년 말에 아사드 정부군이 반정부세력 최대 거점이었던 북부 알레포를 제압해 내전에서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상전에서는 이란과 이란이 지원하는 레바논의 이슬람 시아파 무장조직 헤즈볼라 등이 아사드 정권을 지원했다.
시리아 북동부 지역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던 쿠르드족 무장조직 ‘인민방위대’(YPG)가 IS 소탕작전에서 큰 역할을 했고, 이를 미국이 지원했다. 시리아 반정부 세력을 지원해 온 튀르키예는 자국에서도 많은 인구가 거주하는 쿠르드족의 분리독립 운동조직 ‘쿠르디스탄 노동자당’(PKK)과 YPG가 하나라고 보고 이를 테러조직으로 규정, 시리아 국경을 넘어 토벌작전을 펼쳤다. 그러나 시리아 정부군의 알레포 점령 이후에는 접경지역인 시리아 북서부 이드립 등으로 활동지역을 제한했다. 2020년 3월에 시리아 정부군이 총공세를 펼칠 때는 튀르키예와 러시아의 정상들이 휴전에 합의해 공세를 피하기도 했다.
런던 투자분석가와 결혼한 아사드, 일족 영화 추구하다 나라 망쳐
“분단(분할)해서 지배하라”는 전략을 충실히 따랐던 아사드 일족은 이슬람 시아파의 소수세력인 알라위파에 속한다. 국내 여러 세력들 간의 알력과 대립을 부추기는 정책을 고수해 온 아사드 대통령은 반정부 세력이 지배하는 지역의 병원을 공격하고 굶주리게 만들었다. 영국에 유학가서 의학을 공부하다가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급사한 뒤 권력을 물려받게 된 바샤르 알아사드는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런던에서 투자은행 J. P. 모건에서 투자분석가로 일하던 여성과 결혼했다. 한때 개방적이고 합리적 통치자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비밀경찰이 밀고와 고문, 처형을 일삼는 공포정치를 펴면서 1982년 하마에서 이슬람 반정부 활동가 2만 명 이상을 학살한 아버지 하페즈 알아사드의 폭력적인 성정과 통치수법을 물려받은 그는 국민이 아니라 일족의 영화를 위해 그것을 휘두르다 결국 나라를 망쳤다.
그는 나라를 마약 제조 거점으로 바꿔 마약을 수출하면서 주변 나라들을 괴롭혔다. 경제 시스템을 파괴해 하루 60만 배럴이 넘었던 시리아의 석유 생산량은 설비 노후화로 3만 배럴 정도로 떨어졌다. 반군들이 밀어닥칠 때 거기에 제대로 대처할 군 통수능력도 없었다. 그의 잔인한 통치수법과 부패, 경제를 공동화시킨 무능, 낮은 봉급에 지친 국민과 시리아군은 아사드 정권에 충성하지 않았다. 반군이 파죽지세로 진군하자 아사드 일족이 국외로 도망갈 것이라는 풍문이 돌았고, 풍문대로 그는 떠났다. 부자 2대에 걸친 세습체제는 외부의 적 때문이 아니라 자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