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계, 일반인 관심 쏟아지며 화제
“사실이었으면 좋겠다” 반응 쏟아져
중 매체, 지정학 갈등 돌파구로 부각
‘꿈의 물질’로 불리는 상온·상압 초전도체를 한국 연구진이 개발했다는 내용의 논문을 둘러싸고 해외에서도 비상한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각국 연구자들이 검증 실험에 뛰어들면서 논문 내용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한국 연구진이 초전도성을 띈다고 주장하는 ‘LK-99’에 대한 연구 내용이 제대로 된 검증을 거치지 않은 점, 초전도성 발현이 매우 어렵다는 점 등에 비춰 논문 내용에 관한 회의적 시각도 강하다.
하지만 과학계 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초전도체 구현의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해당 기술이 인류에 가져다줄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LK-99 관련 소식에 열광하는 모양새이다. 레딧 등 유명 커뮤니티사이트에서는 상온 초전도체 관련 밈(온라인에서 유행하는 이미지나 영상)도 쏟아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2일(현지시간) “LK-99는 한 세대에 한 번 나올 법한 과학적 돌파구일 수도 있지만, 큰 실망거리에 그칠지도 모른다”면서도 “최근의 소란스러움은 세상을 바꿀 새 과학적 발견을 우리가 얼마나 갈망해왔는지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초전도체의 개념을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화제거리가 되며 밈이 돌고 있다”며 “LK-99를 둘러싼 흥분감은 포용하되, 희망을 걸지는 말자. 과학의 여정은 그 자체로 결과만큼이나 가치가 있으며, 개인의 업적과 관계없이 축하할만한 일”이라고 전했다.
초전도체는 특정 온도 이하에서 전기가 저항 없이 아주 잘 흐르는 물질을 뜻하는 물리학 용어다. 양자 컴퓨터나 자기공명영상장치(MRI), 핵융합 장치 등에 쓰인다. 초전도 현상은 영하 200도 내외의 초저온 상태에서나 유지되는데 한국 기업 퀀텀에너지연구소 등에 소속된 연구진은 최근 영상 127도 이하에서 초전도성을 띠는 물질인 LK-99 합성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상온 초전도체가 개발되면 거대한 냉각장치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활용한 소규모 전자제품을 저렴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 송전 손실이 없어 발열 걱정 없는 전자제품 등도 만들어낼 수 있다.
미국 온라인 매체 더메신저는 “과학자들이 이슈가 된 초전도체 물질 합성 실험을 재현하기 위해 달려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처음에는 다들 회의적이었으나 몇몇 후속 연구는 상온 초전도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소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중국의 공학 교수라고 밝힌 한 네티즌이 LK-99를 재현했다고 주장하며 작은 물체 덩어리가 공중에 떠 있는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초전도체의 특성 중 하나인 ‘마이스너 효과’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마이스너 현상은 물질이 초전도 상태로 바뀔 때 외부에서 자기장을 가하면 물질이 이를 밀어내는 현상을 말한다. 자기장을 밀어내는 힘으로 물질이 공중으로 떠오르게 된다. 더메신저는 이 네티즌이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LK-99 제조 실험을 재현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앤드루 매클립이라는 엔지니어가 논문에 따른 LK-99 제조 과정을 실시간 영상으로 인터넷에 올렸다. 미 에너지부 산하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LBLN) 소속 연구진이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 LK-99에서 초전도체 특성이 감지됐다는 내용을 공유했다.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5개월간 거주했던 전 우주비행사 크리스 해드필드는 “초전도체가 실제 작동한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학계에서는 신중론이 우세하다. 미국 IT전문매체 씨넷은 “한국 연구진의 대담한 주장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면서도 “(상온 초전도체 기술 검증 및 상용화의) 첫 단계에 불과하고 더 많은 데이터가 필요하고 주의해야 할 이유가 있다”고 보도했다.
씨넷은 미국 아르곤국립연구소 소속 물리학자 아르곤 노만이 사이언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연구진이 아마추어처럼 보인다”고 신랄하게 평했다는 사실도 전했다. 다만 씨넷은 “LK-99는 성배가 될 것 같지는 않지만 그 자체로 흥미로운 재료가 될 수 있다”며 “새롭고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상온 초전도체를 찾아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전했다.
중국 관영매체들은 한국 연구진이 ‘상온 초전도체’를 개발했다는 논문 내용을 두고 “지정학적 갈등을 넘어서는 흥미로운 소식”이라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중국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3일 ‘상온 초전도체 논쟁에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이란 제목의 사설에서 “어느 나라 과학자이건 상온 초전도체 개발에 성공한다면 모든 인류의 전설이자 영웅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이 어느 진영이나 동맹에 속해 있든 중대한 과학적 돌파구를 열어젖힌다면 이를 거부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글로벌타임스는 상온 초전도체 개발 소식을 지정학적 갈등을 해소할 돌파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매체는 기후위기, 공공안보 등을 언급하며 과학기술을 통한 세계적 협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과 서방 국가들은 지정학적 이데올로기 갈등에서 벗어나 보다 넓은 차원에서 인류와 세계를 조망해야 한다”며 “상온 초전도체 개발 소식에 대한 열광은 (인류에게 통합의) 영감을 주는 하나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의 또 다른 관영 영자지 차이나데일리는 “LK-99가 실제 초전도성이 있는지 확인될 때까지 언론은 과학자들이 연구에 몰두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면서도 “우리는 한국 연구진의 성공과 상온에서 초전도체가 발견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앞서 중국 화중과학기술대 연구진은 LK-99가 초전도성을 띤다며 한국 연구진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검증 결과를 발표했다. 반면 중국 베이징에 있는 베이항대 연구진은 LK-99는 상온에서 전기저항이 ‘0’이 아니었다며 반박했다.
한국초전도저온학회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검증위원회를 구성해 상온 초전도체가 정말 만들어졌는지 국내 학계 차원에서 규명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