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힘든 갈륨·게르마늄
미국 반도체 규제에 ‘맞불’
대선 앞 바이든, 철회 난망
충돌 격화 땐 산업 큰 파장
중국이 국가 안보를 이유로 반도체 등을 만드는 데 쓰이는 중요 금속인 갈륨과 게르마늄의 수출을 통제하기로 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대중 반도체 수출 규제에 맞선 보복 조치다.
중국 상무부와 해관총서가 지난 3일 발표한 공고에 따르면, 다음달 1일부터 갈륨과 게르마늄 및 관련 화합물 등 모두 14개 품목을 해외로 수출하는 경우 수출업자는 상무부에 수출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해당 품목이 국가 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될 경우 상무부는 국무원의 승인을 거쳐야 수출 허가를 내줄 수 있다.
갈륨과 게르마늄은 반도체 산업 등에 두루 쓰이는 금속이다. 갈륨은 휴대전화 충전기, 태양광 패널, 레이더, 전기차 등에 사용되는데, 이번 수출 통제 대상에는 차세대 전력반도체 소재로 주목받는 산화갈륨과 질화갈륨도 포함됐다. 게르마늄도 집적회로와 광섬유, 적외선 카메라 렌즈, 인공위성용 태양전지 등에 쓰이는 금속이다. 유럽연합(EU)은 두 금속을 모두 유럽 경제에 중요한 핵심 원자재로 분류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번 수출 통제에 대해 국가 안보와 이익을 이유로 들었을 뿐 구체적 배경을 설명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네덜란드가 지난달 30일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 규제에 동참해 오는 9월1일부터 반도체 장비 수출 제한을 강화하기로 한 직후 발표가 나왔다는 점에서 사실상 미국, 유럽 등의 반도체 규제에 대한 반격 조치로 볼 수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전문가들의 견해를 인용해 이번 조치가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에 대한 보복이며,주요한 타깃은 미국이라고 분석했다. EU에 따르면 중국에서 생산되는 갈륨과 게르마늄은 전 세계 생산량의 약 94%와 90%를 각각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은 2018~2021년 수입한 갈륨의 53%, 게르마늄의 54%를 중국에서 들여왔다. 블룸버그통신은 “갈륨과 게르마늄은 특별히 희귀한 금속은 아니지만 가공 비용이 높고 중국이 오랫동안 상대적으로 싸게 수출해왔기 때문에 다른 곳에는 추출할 수 있는 시설이 거의 없다”면서 “두 금속 모두 대체는 가능하지만 더 많은 비용이 들고 기술 성능을 저해할 수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오는 6~9일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의 방중을 앞두고 수출 통제 조치를 내놓은 것에 주목한다. 폴 트리올로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중국이 공급망을 무기화하려 한다면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는 미국과 EU, 아시아의 계산이 복잡해질 것”이라면서 “중국은 수출 통제를 잠재적인 협상 카드로 보고 있으며, 이는 미국과 서방국가가 반도체와 제조 장비에 대한 수출 통제를 철회하도록 설득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옐런 장관 방중 회담에서 이번 수출 통제 조치를 협상의 지렛대로 삼으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에 미·중 간 반도체 전쟁이 본격화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아딜 브라 대만 국립정치대 객원 연구원은 “미국이 내년 대선까지는 (대중) 규제를 철회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기술전쟁이 격화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미국과 EU는 대체 자원을 검토하겠지만 중국을 즉시 대체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