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창간기획-정전·한미동맹 70년①-세계 최대 미군 해외기지…무기·일상 뒤섞인 ‘평택기지’ (2023.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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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3-07-17 09:38 조회606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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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미군 해외기지…무기·일상 뒤섞인 ‘평택기지’
끝나지 않은 전쟁, DMZ·험프리스에서 ‘평화’를 묻다
한미동맹 상징 캠프 험프리스 가보니
올해로 한국전쟁 정전협정(7월27일)과 한-미 상호방위조약(10월1일)이 맺어진 지 70주년이 됐다. ‘정전’은 전쟁이 잠깐 멈춘 상태로, 전쟁이 끝난 게 아니다. 정전 뒤 북한의 재침에 대비한 강력한 군사동맹을 요구한 한국의 요구로 한-미 상호방위조약이 맺어졌다. 정전 70년을 맞아 강원도 홍천의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현장과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화천 7사단 비무장지대(DMZ)를 찾았다. 아직도 온 나라 곳곳의 언덕과 고지에는 10만구가 넘는 전사자 유해가 눈비를 맞으며 묻혀 있다. 이 유해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 전에는 한국전쟁은 ‘끝나지 않는 전쟁’이다.
70년 동맹의 현주소를 확인하러, 한-미 동맹의 상징으로 꼽히는 경기도 평택 주한미군 기지(캠프 험프리스)를 찾았다. 단일 기지로는 전세계 최대 규모라는 캠프 험프리스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컸다. 명실공히 대중국 견제 전초기지로 충분해 보였다. 미군이 떠난 서울 용산과 미군이 모인 평택에서 70년을 맞은 한-미 동맹이 그 자체가 목적인지, 우리 국익을 위한 수단인지 생각해봤다. 편집자
“훈련을 하다 밥 먹으러 갈 때 버스를 타야 한다는 것만 빼면 만족스럽게 군 생활을 하고 있어요.”
지난 9일 오후 3시, 경기도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 미군기지에 있는 체육시설에서 근무를 마치고 운동을 하고 있던 카투사(주한미군에 배속된 한국군 장병) 류호전(20)씨는 운동을 하던 중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날 방문한 험프리스 미군기지는 류씨의 말대로 버스를 타지 않으면 도저히 돌아다닐 수 없을 정도로 광대한 규모였다. 캠프 험프리스는 여의도의 5배, 판교새도시의 1.6배 면적인 14.67㎢이며 미군, 군무원 등 종사자와 가족을 평시 4만3천명까지 수용하고 있다.
미군기지라고 알고 들어섰는데 매점, 쇼핑몰, 미용실, 네일숍, 학교, 도서관, 병원 등이 잇따라 눈에 들어왔다. 도로 표지판도 미터법이 아닌 야드파운드법에 따라 마일로 표기돼 있었다. 평일 이른 오후였지만 체육관 옆에 있는 잔디밭에서는 10여명의 부대원과 가족들이 고기를 굽거나 캐치볼을 하고 있었다. 숙소도 병사·장교 등에 따라 나뉘어 있지만 깔끔한 아파트 형태다. 미국의 한 도시를 옮겨놓은 모습이다.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소파)에 따라 이곳에선 국내법이 아닌 미국법이 적용되고, 주한미군은 기지 밖에서도 사실상 치외법권적 지위를 인정받는다.
현재 캠프 험프리스는 미군의 세계 최대 해외 기지다. 유엔군사령부(유엔사), 주한미군사령부, 주한미특수전사령부, 미8군, 제2보병 사단 사령부가 주둔하고 있는 주한미군의 핵심 기지이자, 1953년 10월1일 한-미 상호방위조약 조인으로 맺어진 한-미 동맹의 상징 지역이다. 여러개의 주한미군 기지 가운데 하나였던 캠프 험프리스는 2004년 한국과 미국이 용산기지이전협정(YRP)과 경기도 의정부·동두천 미 2사단 등을 평택으로 옮기는 연합토지관리계획개정협정(LPP)을 체결하면서 규모가 커졌다. 이후 전국 각지의 미군기지가 캠프 험프리스로 통합되면서 주한미군의 ‘용산시대’가 막을 내리고 ‘평택시대’가 시작됐다. 캠프 험프리스는 중국과 가장 가까운 미군기지로 평택항, 평택 오산 미 공군기지와 함께 중국을 견제하는 미군의 동북아 군사허브 구실을 하고 있다.
세스 그레이브스 험프리스 기지 사령관은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평택으로 많은 수의 미군을 옮겨 통합했고, 이를 위해 험프리스는 2천에이커 이상 성장해 크기가 세배로 커져야 했다”며 “지난해 한미연합사령부의 이전으로 2004년부터 시작된 용산 이전 계획의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밝혔다.
드넓은 캠프 험프리스 터에는 대추리 주민들의 아픔도 묻어 있다. 캠프 험프리스를 기존 부지에서 서북쪽으로 10㎢ 면적을 넓히면서 정든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던 팽성읍 대추리 주민들이 강하게 저항했다. 2006년 5월4일 주민들이 모인 계성초등학교 대추분교에 경찰들이 들이닥쳐 210명이 다치고 524명이 연행됐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눈에 들어오는 험프리스 기지의 활주로에서는 공격용 헬기인 아파치가 오르내리고 있었다. 활주로 건너편 장병 숙소와 놀이터에서 어린이들이 뛰어노는 등 평택기지는 무기와 일상이 뒤섞인 묘한 모습이었다. 2만8500명의 병력과 첨단 무기들로 무장한 채 요충지들에 자리잡고 있는 주한미군의 힘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쓰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군이 평택으로 떠나고 용산은 120년 만에 우리 품으로 돌아오는 중이다. 현재까지 미군이 반환한 용산 기지 부지는 63만4천㎡로 전체 243만㎡ 중 30% 정도이며, 외교부와 국방부는 미국 쪽과 나머지 부지 반환을 협의하고 있다. 1904년부터 일본군이, 해방 이후에는 미군이 주둔해온 용산기지는 역사적 가치가 높은 건물만 남기고 용산국가공원으로 꾸며질 예정이다. 그중 일부인 용산어린이정원은 지난 4일 개장했다. 지난 10일 용산 미군기지 14번 게이트로 쓰였던 주 출입구를 지나 어린이정원에 들어가니 미군 장성들의 숙소로 쓰였던 붉은 지붕의 건물들이 줄지어 보였다. 건물들을 지나가자 미군들이 야구장으로 사용하던 잔디광장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잔디광장 너머에 위치한 스포츠필드에서는 초등학생 야구단이 대회 준비에 한창이었다. 얼마 전까지 미군기지였다는 게 실감나지 않을 만큼 평화로웠다.
하지만 용산기지 환경 정화가 안 됐는데 졸속으로 어린이정원 문을 열었다는 우려도 있다. 미군기지로 쓰는 동안 기름유출 사고가 빈번해 토양이 오염됐을 것으로 추정되는데도 토양 정화 작업 없이 이 지역을 섣불리 개방한다는 것이다. 환경단체들도 발암물질 오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정부는 “안전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설명하지만, 환경단체들은 이 건이 막대한 미군기지 오염 정화 비용을 한국이 떠안는 선례가 될까 봐 걱정한다.
일제강점, 분단을 거치며 용산 미군기지는 현대사의 영욕을 상징하는 공간이 됐다. 용산국가공원이 ‘역사의 얼룩’을 지우고 시민 품에 온전히 돌아오려면 긴 호흡으로 시민사회 등과도 숙의해야 한다.
평택/글·사진 신형철 기자 newiron@hani.co.kr, 평택/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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