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이 시작된 후 6개월간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숨진 가자지구 주민 가운데 70%가 여성과 어린이라는 유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지난 8일(현지시간)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전쟁 발발 후 지난 4월 말까지 약 6개월간 가자지구 전체 사망자의 44%가 어린이, 26%가 여성이었다. 통상 무장대원으로 활동할 수 있는 성별·연령대로 간주되는 성인 남성은 전체 사망자의 30%였다.
사망자를 연령대별로 분류하면 5~9세가 가장 많았다. 그다음이 10~14세, 0~4세 순으로 어린이들의 인명 피해가 가장 컸다. 가장 어린 희생자는 태어난 다음날 숨졌다.
전체 사망자 가운데 88%가 동일한 공격으로 5명 이상이 동시에 숨진 사례였다. 유엔은 이를 두고 인구 밀집 지역에서 광범위한 인명 피해를 초래하는 강한 위력의 무기가 사용된 증거라고 짚었다.
이는 정밀 무기를 사용해 하마스 대원만 표적으로 공격하는 등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고 있다는 이스라엘 주장과 배치되는 내용이다. 전체 사망자 가운데 80%가 주택 등 주거용 건물에서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유엔은 32쪽 분량의 이번 보고서에서 전쟁 발발 후 6개월간 유엔이 세부 정보를 확인한 사망자 8119명만을 분석 대상으로 했으며, 여전히 많은 시신이 붕괴된 건물 안에 매몰돼 있어 희생자 규모는 훨씬 클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가자지구에 직접 유엔 조사단을 파견해 현장조사를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이스라엘 정부가 이를 거부했으며, 이로 인해 광범위한 조사에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가자지구 보건 당국은 지난해 10월 개전 이후 13개월간 가자지구 누적 사망자가 최소 4만3300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OHCHR 팔레스타인 지역 책임자인 아지트 숭하이는 이날 스위스 제네바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사망자가 매우 많아 사망 사례 검증에 시간이 걸리고 있으며, 최종 집계치는 가자지구 보건 당국이 발표한 수치와 유사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유엔은 보고서에서 “전례 없는 수준의 국제법 위반”이 확인됐다며 “전쟁 범죄 및 기타 잔혹 범죄 가능성을 조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가자지구 내 민간인 희생자 규모 외에도 이스라엘군이 국제사회가 보낸 구호품을 차단하고 대규모 강제 이주를 통해 피란민들을 극한 상황으로 몰아넣은 점, 민간인 밀집 지역에 백린탄을 사용하고 병원과 학교, 언론인을 공격하는 등 국제법을 위반한 점 등을 짚었다.
폴커 튀르크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이스라엘군의) 심각한 국제법 위반 행위에 대해 공신력 있고 공정한 사법 기구를 통한 합당한 처벌이 반드시 이뤄져야 하며, 모든 유관 정보와 증거가 수집되고 보존되어야만 한다”고 촉구했다.
반면 스위스 제네바 유엔본부에 주재하는 이스라엘 대표부는 보고서 내용을 전면 부정하면서 하마스가 민간인들을 ‘인간 방패’로 내세우고 있는 점을 유엔이 무시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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