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지역 대표 빈민운동가 김 목사
평생 노숙인과 부랑아들과 함께 그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단식 하는 등
예수의 삶으로 돌아가라고 한 선지자
평생 노숙인과 부랑아들과 함께 그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단식 하는 등
예수의 삶으로 돌아가라고 한 선지자
![고 김홍술 목사 빈소. 부산예수살기 제공 고 김홍술 목사 빈소. 부산예수살기 제공](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970/566/imgdb/original/2022/0216/20220216501703.jpg)
고 김홍술 목사 빈소. 부산예수살기 제공
부산의 대표적 빈민운동가로 부산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을 지낸 김홍술 목사가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2동 애빈교회에서 15일 새벽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향년 67살.
고인은 1991년 애빈회를 설립해 부산의 노숙인과 부랑아들과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살며 돌봤다. 애빈회는 애초 한울공동체, 부랑빈민선교회, 도시빈민사회복지선교회 등으로 활동하다가 2008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다. 김 목사는 2004년부터 2011년까지 부산시 동구 수정동 수정지구대 앞에서 8년 동안 매주 화·목·토요일 새벽 6시부터 무료급식소를 운영했고, 2012년엔 그 인근에 노숙인 숙소인 ‘부산홈리스 사회복지관’을 마련해 노숙인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또 2012년부터 부산역 앞에서 부산·경남종교평화연대와 공동으로 노숙인합동추모제를 열기도 했다.
![녹두장군 전봉준을 본따 늘 상투머리를 하고 살았던 김홍술 목사. 지승룡 목사 제공 녹두장군 전봉준을 본따 늘 상투머리를 하고 살았던 김홍술 목사. 지승룡 목사 제공](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40/960/imgdb/original/2022/0216/20220216501702.jpg)
녹두장군 전봉준을 본따 늘 상투머리를 하고 살았던 김홍술 목사. 지승룡 목사 제공
![1990년대초 부산에서 재활자와 키우는 토끼를 보고있는 김홍술 목사(오른쪽). <한겨레> 자료 사진 1990년대초 부산에서 재활자와 키우는 토끼를 보고있는 김홍술 목사(오른쪽). <한겨레> 자료 사진](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675/854/imgdb/original/2022/0216/20220216501592.jpg)
1990년대초 부산에서 재활자와 키우는 토끼를 보고있는 김홍술 목사(오른쪽). <한겨레> 자료 사진
그 뒤 신학교에 편입해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1989년 예배당을 열어 누구나 올 수 있는 곳으로 문턱을 낮췄다. 예배당은 노숙인과 알코올중독자들이 드나들며 라면과 소주병이 나뒹구는 곳이 되었다. 경제력이 없던 김 목사는 신자들과 함께 급식이 끝난 학교를 돌아다니며 남은 음식을 수거해 국은 데우고, 반찬은 냉장고에 차곡차곡 정리해 넣었다가 다음날 아침 노숙인들에게 나눠주는 것으로 노숙인 봉사를 시작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43일간 단식을 하던 김홍술 목사(맨왼쪽) 사진 예수살기 제공 2014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43일간 단식을 하던 김홍술 목사(맨왼쪽) 사진 예수살기 제공](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600/450/imgdb/original/2022/0216/20220216501704.jpg)
2014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43일간 단식을 하던 김홍술 목사(맨왼쪽) 사진 예수살기 제공
![2014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43일간 단식을 하던 김홍술 목사 사진 예수살기 제공 2014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43일간 단식을 하던 김홍술 목사 사진 예수살기 제공](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640/960/imgdb/original/2022/0216/20220216501705.jpg)
2014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43일간 단식을 하던 김홍술 목사 사진 예수살기 제공
오래된 한옥집에 ‘부활의 집’ 겸 애빈교회로 이름 붙인 김 목사는 중학교 교사였던 아내와 두 아이가 사는 집은 1주일에 한번만 갔다오고 줄곧 노숙인 10여명과 먹고 자고 함께했다.
김 목사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2014년 서울 광화문에서 방인성 목사와 함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43일간 단식하기도 했다.
![2005년 부산 애빈교회에서 노숙인들과 함께 기거하며 식사 중인 김홍술 목사. 조현 종교전문기자 2005년 부산 애빈교회에서 노숙인들과 함께 기거하며 식사 중인 김홍술 목사. 조현 종교전문기자](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790/931/imgdb/original/2022/0216/20220216501591.jpg)
2005년 부산 애빈교회에서 노숙인들과 함께 기거하며 식사 중인 김홍술 목사. 조현 종교전문기자
고인은 2018년 8월15일 자신의 사회적 사망을 선포하고, 3년상을 치르듯 1천일간 노숙자 지역을 벗어나지 않고 기도수행을 하겠다는 결심을 내외에 밝히기도 했다.
![2008년 서울 종로구 연지동 기독교회관 앞에서 단식 중인 김홍술 목사. 조현 종교전문기자 2008년 서울 종로구 연지동 기독교회관 앞에서 단식 중인 김홍술 목사. 조현 종교전문기자](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640/479/imgdb/original/2022/0216/20220216501593.jpg)
2008년 서울 종로구 연지동 기독교회관 앞에서 단식 중인 김홍술 목사. 조현 종교전문기자
빈소는 부산 동래구 명륜동 대동장례식장 5호실이다. 유족으로는 처 성갑순, 아들 김병수 딸 김민지가 있다. 장례예배는 부산예수살기 주관으로 17일 낮12시 열리며, 장지는 부산 영락공원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