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미얀마 학살'을 알고 싶다면 '쿠오바디스, 아이다'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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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1-05-18 10:42 조회1,768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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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미얀마 학살'을 알고 싶다면 '쿠오바디스, 아이다'를 보라 (스타데일리뉴스) | ||||||||||||||||||||||||
19일 개봉예정, 104분 동안 한 순간도 눈을 뗄수 없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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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데일리뉴스=서문원 기자] 19일 개봉하는 '쿠오바디스, 아이다'는 25년전 세르비아군이 구유고연방국가를 상대로 저지른 만행을 토씨 하나 안바꾸고, 당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시시각각 급변하는 당시 상황과 더불어 디테일한 묘사를 통해 당시 비극을 재조명했다. 살인마와 피해자가 같은 하늘 아래 서로 부딪끼고 살아야만 하는 시대 비춰... 지난달 펼쳐진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장편영화부문 후보작으로 괜히 노미네이트된 작품이 아니다. 더 주목을 받아야 마땅하고, 군인은 물론 더 많은 사람들이 봐야할 영화다. 내전이 발발하기전 학교 교사로, 그뒤로 자신이 살던 고향 땅에 주둔한 네델란드 UN평화유지군 통역사로 활약했던 아이다(야스나 디우리치치). 일평생 마을에서 존경 받던 고등학교 교장인 남편과 장래가 촉망되던 큰 아들, 록밴드를 이끌던 둘째. 이 모든걸 송두리째 앗아간 세르비아군의 만행을 마치 어제 일어난 사건처럼, 생생하게 묘사한 작품은 거의 없다.
입만 살은 UN국제연합 그 실체가 엿보여... 19일 개봉하는 '쿠오바디스 아이다'의 진면목은 이뿐이 아니다. 서서히 목을 죄는 서사 전개, 암묵적 합의를 종교와 민족주의를 앞세워 과감히 깨버린 세르비아, 그저 눈치나 보며 살고자 대대적으로 파병한 UN군을 모른척 한 유럽 각국의 또 다른 이면을 이 영화는 과감하게 드러낸다. 심지어 영화의 시대 배경인 1995년 역대급 UN사무총장으로 존경 받던 부르토스 브루토스갈리와 UN차관에 이어 사무총장 직위까지 오른 코피 아난의 무능함도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1980년 5월 18일 광주 참극을 기억하는 이들 뿐 아니라, 현재 확장일로에 있는 미얀마 군부 쿠데타이후 연일 처참한 상황을 뉴스로 접하는 시청자들도 신작 '쿠오바디스, 아이다'가 영화가 주는 의미가 남다를 것으로 기대된다. 러닝타임 104분의 이 영화를 보는 순간, 때때로 고통스럽고, 매우 안타까운 장면이 이어지지만, 지난 세기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산악에 위치한 소도시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자들의 증언이 결코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 임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쿠오바디스, 아이다'(Quo vadis, Aida?) 살 길을 잃어버린 한 여인의 증언 "주여 어디를 가십니까"라는 신약 구절을 차용한 '쿠오바디스, 아이다'를 통해 간과하지 말아야할 사실이 하나 있다. 이 영화의 배경인 스레브레니차 집단 학살(당시 8천명 이상 실종 및 학살)은 1995년 7월에 발생했다. 더구나 네델란드 평화유지군이 보는 앞에서 벌어진 참극이다. 하물며 이 사건에 가담한 세르비아계 보스니아군(VRS)은 종전 후, 2005년 이라크전에도 참전한 전력이 있다. 2000년 초반까지 보스니아 전쟁 범죄로 재판까지 받고 강제 해산된 줄 알았던 세르비아 군부대가 용병, 혹은 파병이라는 이름으로 미군과 함께 이라크 전선에 뛰어든 것이다. 하나 더 보태, 세르비아 VRS군을 자세히 보면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무너지고 독립을 선언한 보스니아에서 살던 군출신 세르비아인들이 조직한 민병대다. 당시 기사를 봐도 세르비아 민병대라고 지칭했다. VRS는 1990년대까지 공산국가 유고슬라비아 연방 소속 인민군으로 몇년 뒤 세르비아계만 떨어져 나와 이웃 세르비아군의 지원으로 구성된 무장 조직이다. 소위 '인종 청소'로 명명된 보스니아 양민 학살은 25년전 국내 미디어들이 떠들던 인종 학살 만행이 아니다. 불과 몇년 전까지 혹은 전쟁 발발 하루 전까지 연애 혼인도 하고, 축구도 같이보며 초등학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동창, 동문이었던 동네 이웃들이 과연 피부 색깔이 다를까. 아니면 언어가 다를까. 사실상 종(種)이 아닌거다. 어제까지 분명히 가족이었고, 이웃이었던 사람들이다. 단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이슬람 종교를 가진 가족을 뒀다는 이유만으로 총부리를 겨누고 무차별 사살을 가했다면, 이건 인종 학살이 아니다. 무차별 살인행각이다.
1980년 5월에 발생한 5.18민주항쟁, 2021년 2월에 발발한 미얀마 쿠데타, 그리고 1995년 7월에 일어났지만 수년이 지나서야 학살 참상이 전범재판을 통해 드러난 스레브레니차 학살은 세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위에 나열된 세 차례의 역사적 참극은 모두 국민을 지켜줄 국군이 저지른 학살 만행이라는 것. 둘째, UN국제연합은 물론 국제사회가 애써 외면했거나 외면 중인 비극이다. 셋째, 스스로 무기를 들고 자신을 지키지 않는다면 어디건 계속해서 반복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이라는 점이다. 여기에 '쿠오바디스, 아이다'의 각본을 집필하고자 수없는 현장 답사와 생존자들의 인터뷰를 강행 했었고, 연출은 물론, 중간 중간 모자라는 제작비를 충당하고자, 촬영이 끝날 때까지 동분서주했던 야스밀라 즈바닉 감독은 여성이다. 그녀의 피나는 노력으로 영상 장면과 스토리는 매우 디테일하면서도, 파격적이며, 시선을 뗄수 없을만큼 벼랑끝 전개를 곳곳에 집어 넣었다. 국민 세금으로 만든 국가 조직이 약자를 상대로 얼마나 잔인하고 비인륜적인 폭력과 학살을 자행했는지 여과없이 보여준 이 작품은 영화사 엠엔앰인터내셔널이 수입하고 배급한 영화다. 19일 개봉 전후로 적은 상영관으로 얼마나 많은 관객들이 관람하고, 입소문이 퍼질지 예상하기 힘들지만, 정치인, 공무원, 군인, 직장인, 노동자, 교사, 의사, 간호사, 학생 등 남녀노소 15세 이상이라면 꼭 봤으면 하는 작품이다. 오는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 41주년을 기념하고자 이 영화를 보라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도 일어날 수 있는 진행형이기 때문에 관람을 권유하는 것이다. 덧붙여 무기도 없는 다수 국민을 상대로 집단 사살을 강행하고, 각종 고문과 성폭행을 자행하는 미얀마 군부를 두고 국제사회가 왜? 외면하고 있는지, 왜? 우리 모두가 스스로 자각하고 경계하지 않으면 안되는지를 영화 '쿠오바디스, 아이다'가 생생하게 증언할 것이기 때문이다. | ||||||||||||||||||||||||
반복되는 비극의 역사..영화 '쿠오바디스, 아이다'
한미희 입력 2021.05.11. 08:00(서울=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 군에 학살당하는 무고한 민간인, 버려진 시신과 실종된 사람들, 뒤늦은 발굴작업과 유골이 된 가족을 앞에 두고 오열하는 사람들, 시간이 흘러도 규명되지 않는 진실.
한국 현대사에서도 낯선 장면이 아니다. 비극의 역사는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얼굴로 반복된다.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에 올랐던 보스니아 영화 '쿠오바디스, 아이다'(Quo vadis, Aida?)는 보스니아 전쟁(1992∼1995)의 한 장면을 담았다.
데뷔작 '그르바비차'(2005)로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받았던 야스밀라 주바니치 감독의 신작이다.
그르바비차라는 마을에 있던 세르비아군의 포로수용소에서 벌어진 집단 강간으로 고통받아야 했던 한 모녀의 이야기를 통해 보스니아 전쟁을 기록했던 주바니치 감독은 전쟁 속에서 남편과 아들을 구하려는 여성의 이야기로 여전히 아물지 않은 전쟁의 고통과 상처를 다시 한번 되새긴다.
1995년 여름, 아이다(야스나 두리치치)는 스레브레니차라는 작은 마을에 주둔한 유엔평화유지군의 통역관으로 일하고 있다.
아이다는 유엔군이 안전지대로 선포한 마을이 안전할 것이라 믿었지만 세르비아 군대는 마을을 불법 점령한다. 유엔과 국제사회의 작전은 실패했고, 현장의 유엔평화유지군 소속의 네덜란드 군대는 무력했다.
난민 보호소가 된 유엔의 기지는 밀려드는 사람들을 모두 수용하지 못하고, 아이다의 남편과 아들은 다른 주민들과 함께 기지 밖에 남겨진다.
우여곡절 끝에 아이다는 밖에 있던 남편과 아들을 수용소 안으로 데려오는 데는 성공하지만, 유엔은 기지를 비우기로 한다. 아이다는 유엔 직원인 자신은 물론 자신의 가족도 유엔이 보호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거절당한다.
주민들은 남자와 여자로 분리된 채 세르비아군에게 끌려가고 아이다는 남편과 아들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영화는 세르비아군이 보스니아 이슬람교도를 상대로 벌인 '스레브레니차 집단학살'을 보스니아 주민이자 유엔군의 통역관으로 중간 지대에 놓인 아이다의 동선을 따라가며 그의 시선으로 비춘다.
주바니치 감독은 실제 당시 유엔군 통역사였던 하산 누하노비치가 쓴 책 '유엔의 깃발 아래'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고, 엑스트라로 참여한 사람 중엔 수용소에 갇혔던 사람들도 다수였으며, 그들의 증언에 따라 촬영이 진행되기도 했다고 밝혔다.
또 "전쟁 이후 모든 것이 파괴된 보스니아는 1년에 영화 한 편이 겨우 나올까 말까 할 정도로 영화산업이 황폐해졌고, 스레브레니차는 세르비아계가 통치하는 지역이 되면서 여전히 당시의 대량 학살을 부정하는 우파 정치인들이 집권하고 있다"며 영화가 나오기까지 겪어야 했던 난관을 설명하기도 했다.
주바니치 감독은 "전쟁의 서사는 늘 자유, 민주주의, 정의의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어서 그 서사의 이면에 존재하는 진실을 놓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는, 다른 시각으로 보여주는 서사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9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