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모이 - 말을 잃으면, 민족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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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1-22 16:54 조회2,582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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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모이 - 말을 잃으면, 민족을 잃는다 | ||||||||||||||||||||||||||||||||||||||||||||||||||||||||||||||||||||||||||||||
<관람기> 이미혜의 영화이야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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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모이는 곳에 말이 모이고, 말이 모이면 뜻이 모입니다. 그 뜻이 모이는 곳에 독립의 길이 있지 않겠습니까?” 사전 하나 만들자고 갖은 고초와 희생을 감수하는 이유를 이보다 더 잘 설명해 주는 말은 없을 것이다. 영화는 순항중이지만, 나는 이 영화가 천만을 넘어 각급 학교마다 단체 관람의 열기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아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익숙한 영어 문법보다 우리말 문법이 더 어렵다는 아이들, 영어교과서보다 국어교과서가 더 어렵다고 하고 압운은 몰라도 라임은 알고 시를 쓰라면 랩 가사를 끄적거려 놓는 아이들, 영어 못하는 건 창피하지만 우리말 못하는 건 일도 아닌 아이들, 대학에 가면 영어로 강의를 듣고 영어로 논문을 쓰게 될 아이들. 아니, 아이들을 이렇게 만든 이 나라에서 해마다 한글날 연례 행사로 방영되는 특집 다큐멘터리 정도를 제외하고는 우리말에 대해 제대로 된 관심을 표명해 본 적이 있었던가. 그나마 한글날 특집이나 세종대왕 관련 사극에서 다루는 것은 말이 아니라 문자이니, 말에 초점을 맞춰 조명한 경우를 나는 거의 알지 못한다. 고리타분한 교과서에서조차 우리말의 소중함 어쩌구 하는 내용은 한물 간 유행가 가사처럼 찾아보기 힘드니, 이 영화 이전까지 조선어학회가 뭐 하는 곳인지 들어본 사람도 별로 없으리라.
일본과 조선 민족이 본래 같다는 논리로 조선 고유의 민족성을 부정한 일선동조론, 이름을 일본식으로 고치게 한 창씨개명, 천황 숭배를 강요하며 일본 왕실의 조상을 모신 신사에 참배하게 한 신사 참배, 그리고 일본 왕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황국 신민의 서사’ 외우기 등 적극적인 민족 말살 정책은 모두 그 일환이었다. 대표적으로 창씨개명의 예를 보자면, 1939년 일제는 6개월 기한을 주고 조선인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라고 명령했다. 바꾸지 않은 사람은 각급 학교에 들어가기 어려웠고, 식량 배급에서도 차별을 받았으며, 청년들은 징병이나 징용 대상자가 되었다. 창씨개명에 저항했던 윤동주도 일본 유학을 앞두고는 결국 창씨개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괴로워했으니, 당시 조선인의 80%가 이런 강요에 못 이겨 일본식으로 성과 이름을 바꿨다.
조선어가 뭐길래, 말이 뭐 그리 중요하길래? 잘 모를 때는 잘 아는 놈 하는 거 보고 따라 하는 게 최고다.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으면 그냥 공부 잘하는 애 관찰해서 그 공부법을 따라 하면 된다. 말이 왜 중요한지 모르겠으면 간교한 일제가 왜 그렇게 기를 쓰고 우리말을 탄압하고 조선인의 머릿속에서 없애려 했는지를 생각해 보면 된다. 그런 눈치도 없으면 사대의 노예가 되고 매국의 종이 되어 쓸개고 간이고 다 빼주게 된다.
그러다가 1921년 우리말과 글을 연구하기 위한 학술단체 ‘조선어연구회’가 만들어졌다. ‘국어연구학회’의 불씨가 살아난 것이다. ‘조선어연구회’는 1931년 ‘조선어학회’로 이름을 바꿨으며, 영화에 나왔듯이 잡지 <한글>을 발간하여 보급하였고, <조선어 사전>을 편찬하려고 했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해체될 뻔한 위기를 넘기고 간신히 살아남아 해방 후 1949년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렀다. 그래서 한글학회는 창립을 1908년 ‘국어연구학회’부터로 잡는다.
조작의 서막이 오르자 나머지는 일사천리로 전개되었다. 줄줄이 조선어학회 회원들이 검거되어 1943년 4월까지 모두 33명이 검거되었고, 증인으로 불려나와 혹독한 취조를 당한 이도 48명이나 되었다. 검거된 이들은 내란죄란 죄목을 쓰고 16명이 기소되고, 12명은 기소 유예 처분을 받았다. 그리고 재판 중에 이윤재, 한징 2명이 옥사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조선어학회 사건이다. 당시 내란죄를 적용한 취지는 이랬다. “고유 언어는 민족의식을 양성하는 것이므로 조선어학회의 사전 편찬은 조선민족정신을 유지하는 민족운동의 형태다…… .” 역으로 이것이야말로 바로 조선어 사전 편찬의 의의이자, 우리가 말을 잃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저들이 잘 가르쳐 주었다.
조선어학회 사건 때 일제 경찰에 압수당한 사전 원고는 어찌 되었을까? 해방이 되면서 석방된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등 당시의 학회원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원고를 되찾는 것이었다. 조사받던 경찰서와 재판받던 법원 등을 백방으로 찾아다녀 보았으나 13년간 공들인 원고는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1945년 9월 8일, 경성역 창고에서 상자 하나가 발견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일본이 서둘러 본국으로 철수하면서 미처 챙겨가지 못한 화물들 사이에 수취인이 고등법원이라고 적힌 상자가 있었는데, 거기 원고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자그마치 400자 원고지 26,500여 장 분량. 기적 같은 일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상자를 열 때 어찌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영화는 역사 속에서 끄집어 낸 조선어학회 사건을 통해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사투리까지 빼놓지 않고 기억하고 기록하여 거기 담긴 풍물과 문화와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목숨까지 걸어야 했던 이들의 노고를 재조명한다. 왜 누군가는 그토록 말을 지키려 했고 다른 누군가는 그 말을 반드시 빼앗으려고 했는가. 말이란 무엇인가. 벤또와 도시락이 뭐가 다르냐던 일자무식꾼이 글을 깨쳐 거리의 간판을 읽고 한글 잡지를 읽고 동지라는 글자를 읽고 벤또와 도시락이 같지 않음을 깨우쳐 우리말 지킴이가 된다. 우리말이란 무엇인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빼앗긴 것은 되찾을 수 있지만 내어 준 것은 돌려받을 수 없다.” 그런데 지금 우리말의 자리를 다 영어에 내어 준 우리에게 영화는 다시 묻는 듯하다. 말이란 무엇인가. 우리말이란 무엇인가. 언어는 사고와 문화를 재편하고 동화시킨다. 내선일체,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으며 누구에게 동화되고 있는가.
영화의 주인공은 조선어학회가 아니라 이 익명의 수많은 민초들이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으로” 영화는 걷는다. 실제 사건의 일화를 섞어 직조한 영화는 이야기가 맛깔난다.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우리’라는 말에 우리 민족의 공동체 의식이 담겼다든가, 사투리를 우리말의 소중한 자산으로 인정한다든가, 표준어를 일방적으로 한 지역의 언어로 정하지 않고 실제 사용빈도를 조사해서 신중하게 정한다든가 등등 우리말에 대한 생각거리도 풍성하게 던져 준다. 구수한 숭늉 같은 배우들의 연기에 얹힌 깨알 같은 유머와 코끝이 찡한 감동, 그리고 관객의 마음을 무장 해제시켜 주는 ‘순이’까지 영화는 이 겨울, 마음을 어루만지는 훈풍 같다. 꼭 보시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