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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모이 - 말을 잃으면, 민족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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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1-22 16:54 조회2,58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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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모이 - 말을 잃으면, 민족을 잃는다
<관람기> 이미혜의 영화이야기
2019년 01월 22일 (화) 10:41:58이미혜 tongil@tongilnews.com
  
▲ [출처-Daum영화]
 
“사람이 모이는 곳에 말이 모이고, 말이 모이면 뜻이 모입니다. 그 뜻이 모이는 곳에 독립의 길이 있지 않겠습니까?”
 
사전 하나 만들자고 갖은 고초와 희생을 감수하는 이유를 이보다 더 잘 설명해 주는 말은 없을 것이다. 영화는 순항중이지만, 나는 이 영화가 천만을 넘어 각급 학교마다 단체 관람의 열기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아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익숙한 영어 문법보다 우리말 문법이 더 어렵다는 아이들, 영어교과서보다 국어교과서가 더 어렵다고 하고 압운은 몰라도 라임은 알고 시를 쓰라면 랩 가사를 끄적거려 놓는 아이들, 영어 못하는 건 창피하지만 우리말 못하는 건 일도 아닌 아이들, 대학에 가면 영어로 강의를 듣고 영어로 논문을 쓰게 될 아이들.
 
아니, 아이들을 이렇게 만든 이 나라에서 해마다 한글날 연례 행사로 방영되는 특집 다큐멘터리 정도를 제외하고는 우리말에 대해 제대로 된 관심을 표명해 본 적이 있었던가.

그나마 한글날 특집이나 세종대왕 관련 사극에서 다루는 것은 말이 아니라 문자이니, 말에 초점을 맞춰 조명한 경우를 나는 거의 알지 못한다. 고리타분한 교과서에서조차 우리말의 소중함 어쩌구 하는 내용은 한물 간 유행가 가사처럼 찾아보기 힘드니, 이 영화 이전까지 조선어학회가 뭐 하는 곳인지 들어본 사람도 별로 없으리라.
  
▲ [출처-Daum영화]
  
▲ [출처-Daum영화]
영화의 배경은 1930, 40년대. 일제는 강점 이후 처음에는 우민화(愚民化) 정책을 펴 우리 민족의 지적 수준을 식민 통치에 필요한 최소한의 수준으로 묶어 두면서 식민지 지배 질서에 순응하는 인간을 양성하려 했다. 그러다가 1931년 만주 침략, 1937년 중일 전쟁을 거쳐 1941년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면서 식민지 지배 정책은 훨씬 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형태로 변화해 갔다. ‘내선일체(內鮮一體)’와 ‘황민화(皇民化)’라는 이름으로 식민지 백성을 뼛속까지 일제에 충성하게끔 만들어 완전히 통합시키기 위한 동화 정책을 펼치게 된 것이다.
 
일본과 조선 민족이 본래 같다는 논리로 조선 고유의 민족성을 부정한 일선동조론, 이름을 일본식으로 고치게 한 창씨개명, 천황 숭배를 강요하며 일본 왕실의 조상을 모신 신사에 참배하게 한 신사 참배, 그리고 일본 왕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황국 신민의 서사’ 외우기 등 적극적인 민족 말살 정책은 모두 그 일환이었다.
 
대표적으로 창씨개명의 예를 보자면, 1939년 일제는 6개월 기한을 주고 조선인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라고 명령했다. 바꾸지 않은 사람은 각급 학교에 들어가기 어려웠고, 식량 배급에서도 차별을 받았으며, 청년들은 징병이나 징용 대상자가 되었다. 창씨개명에 저항했던 윤동주도 일본 유학을 앞두고는 결국 창씨개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괴로워했으니, 당시 조선인의 80%가 이런 강요에 못 이겨 일본식으로 성과 이름을 바꿨다.
  
▲ [출처-Daum영화]
  
▲ [출처-Daum영화]
창씨개명과 비슷한 시기인 1938년에 국어 상용화 정책이 실시되었다. 여기서 국어란 일본어를 말한다. 1937년부터 관공서에서는 이미 일본어만 쓰게 했는데, 1940년부터는 학교에서 우리말을 아예 쓰지 못하게 함으로써 부분적으로 남아 있던 조선어 교육은 완전 폐지되고, 일본어 사용이 상시적으로 강제되었다. 한글로 발간되던 신문과 잡지도 전면 폐간 조치되었다. 이 시기에 조선어학회 사건이 일어난다.
 
조선어가 뭐길래, 말이 뭐 그리 중요하길래? 잘 모를 때는 잘 아는 놈 하는 거 보고 따라 하는 게 최고다.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으면 그냥 공부 잘하는 애 관찰해서 그 공부법을 따라 하면 된다. 말이 왜 중요한지 모르겠으면 간교한 일제가 왜 그렇게 기를 쓰고 우리말을 탄압하고 조선인의 머릿속에서 없애려 했는지를 생각해 보면 된다. 그런 눈치도 없으면 사대의 노예가 되고 매국의 종이 되어 쓸개고 간이고 다 빼주게 된다.
  
▲ [출처-Daum영화]
  
▲ [출처-Daum영화]
조선어학회의 기원은 1907년 주시경 선생이 만든 ‘하기 국어 강습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를 기반으로 1908년 ‘국어연구학회’가 창립되었다. 이 학회는 1910년에 ‘배달말글모임’[朝鮮言文會], 1913년에는 ‘한글모’로 이름을 고쳤다가, 이듬해 주시경 선생이 별세하고 일제의 탄압이 계속되면서 1917년경에는 거의 활동이 중단되어 해체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다가 1921년 우리말과 글을 연구하기 위한 학술단체 ‘조선어연구회’가 만들어졌다. ‘국어연구학회’의 불씨가 살아난 것이다. ‘조선어연구회’는 1931년 ‘조선어학회’로 이름을 바꿨으며, 영화에 나왔듯이 잡지 <한글>을 발간하여 보급하였고, <조선어 사전>을 편찬하려고 했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해체될 뻔한 위기를 넘기고 간신히 살아남아 해방 후 1949년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렀다. 그래서 한글학회는 창립을 1908년 ‘국어연구학회’부터로 잡는다.
  
▲ [출처-Daum영화]
영화에 등장하는 조선어 사전 편찬은 1929년부터 시작되었다. 그런데 1942년 기차 안에서 조선말로 대화하던 여학생들이 한 조선인 경찰관에게 발각되고, 이들을 취조하던 중 이들에게 민족적 감화를 준 사람으로 사전 편찬에 연관된 인물의 이름이 나온다. 이를 꼬투리 삼아 그이를 잡아들여 조선어학회가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민족주의 단체라는 자백을 받아냈다.
 
조작의 서막이 오르자 나머지는 일사천리로 전개되었다. 줄줄이 조선어학회 회원들이 검거되어 1943년 4월까지 모두 33명이 검거되었고, 증인으로 불려나와 혹독한 취조를 당한 이도 48명이나 되었다. 검거된 이들은 내란죄란 죄목을 쓰고 16명이 기소되고, 12명은 기소 유예 처분을 받았다. 그리고 재판 중에 이윤재, 한징 2명이 옥사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조선어학회 사건이다.
 
당시 내란죄를 적용한 취지는 이랬다. “고유 언어는 민족의식을 양성하는 것이므로 조선어학회의 사전 편찬은 조선민족정신을 유지하는 민족운동의 형태다…… .” 역으로 이것이야말로 바로 조선어 사전 편찬의 의의이자, 우리가 말을 잃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저들이 잘 가르쳐 주었다.
  
▲ [출처-Daum영화]
  
▲ [출처-Daum영화]
재판은 1945년까지 지속되었다. 영화에서 조선어학회 대표로 나오는 류정환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이극로는 징역 6년, 그리고 외솔 최현배 징역 4년, 일석 이희승 징역 2년 6개월 등이 언도되었다. 이 중 우리에게 좀 낯선 이름인 이극로는 요샛말로 엄친아. 경남 의령의 잘나가는 가문 출신으로, 중국과 독일에서 공부한 유학파이다. 해방 후에 조선어학회 주간으로 조선어사전을 편찬했다. 1948년 김구 선생을 따라 ‘남북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 참석차 평양에 갔다가 그대로 북에 남아 훗날 ‘문화어 운동’을 주도하는 역할을 했다니, 분단은 우리의 인재들을 이렇게 남북으로 갈라놓았다.
 
조선어학회 사건 때 일제 경찰에 압수당한 사전 원고는 어찌 되었을까? 해방이 되면서 석방된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등 당시의 학회원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원고를 되찾는 것이었다. 조사받던 경찰서와 재판받던 법원 등을 백방으로 찾아다녀 보았으나 13년간 공들인 원고는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1945년 9월 8일, 경성역 창고에서 상자 하나가 발견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일본이 서둘러 본국으로 철수하면서 미처 챙겨가지 못한 화물들 사이에 수취인이 고등법원이라고 적힌 상자가 있었는데, 거기 원고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자그마치 400자 원고지 26,500여 장 분량. 기적 같은 일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상자를 열 때 어찌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 [출처-Daum영화]
그렇게 해서 1947년 <조선말큰사전> 1권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영화는 이에서 소재를 취했다.
 
영화는 역사 속에서 끄집어 낸 조선어학회 사건을 통해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사투리까지 빼놓지 않고 기억하고 기록하여 거기 담긴 풍물과 문화와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목숨까지 걸어야 했던 이들의 노고를 재조명한다. 왜 누군가는 그토록 말을 지키려 했고 다른 누군가는 그 말을 반드시 빼앗으려고 했는가. 말이란 무엇인가. 벤또와 도시락이 뭐가 다르냐던 일자무식꾼이 글을 깨쳐 거리의 간판을 읽고 한글 잡지를 읽고 동지라는 글자를 읽고 벤또와 도시락이 같지 않음을 깨우쳐 우리말 지킴이가 된다. 우리말이란 무엇인가.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빼앗긴 것은 되찾을 수 있지만 내어 준 것은 돌려받을 수 없다.” 그런데 지금 우리말의 자리를 다 영어에 내어 준 우리에게 영화는 다시 묻는 듯하다. 말이란 무엇인가. 우리말이란 무엇인가. 언어는 사고와 문화를 재편하고 동화시킨다. 내선일체,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으며 누구에게 동화되고 있는가.
  
▲ [출처-Daum영화]
  
▲ [출처-Daum영화]
이 영화가 주는 또 다른 감동은 평범한 사람들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이다. 친일파 아버지와 다른 길을 걷는 대표 류정환을 비롯하여 민족지사, 기자, 시인, 서점 주인 같은 배우고 각성한 지식인들이 간난고초(艱難苦楚)를 각오하고 앞장을 서지만, 그들의 힘만으로는 사전을 완성시킬 수 없다. 잡범 김판수를 비롯하여 수많은 밑바닥 까막눈들이 스스로 말모이꾼이 되고, 경향 각지에서 평범한 조선어 교사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힘을 보태고, 또한 전국 각지에서 우리말을 지키고자 하는 작은 마음들이 말을 모으고 마음을 모으지 않았다면, 어찌 가능했겠는가.
 
영화의 주인공은 조선어학회가 아니라 이 익명의 수많은 민초들이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으로” 영화는 걷는다.
 
실제 사건의 일화를 섞어 직조한 영화는 이야기가 맛깔난다.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우리’라는 말에 우리 민족의 공동체 의식이 담겼다든가, 사투리를 우리말의 소중한 자산으로 인정한다든가, 표준어를 일방적으로 한 지역의 언어로 정하지 않고 실제 사용빈도를 조사해서 신중하게 정한다든가 등등 우리말에 대한 생각거리도 풍성하게 던져 준다.
 
구수한 숭늉 같은 배우들의 연기에 얹힌 깨알 같은 유머와 코끝이 찡한 감동, 그리고 관객의 마음을 무장 해제시켜 주는 ‘순이’까지 영화는 이 겨울, 마음을 어루만지는 훈풍 같다. 꼭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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