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노동자의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법이 시행된다. 호주 노동자들은 퇴근한 뒤나 주말에 직장 이메일 및 전화로 업무 지시 받는 것을 무시할 수 있게 됐다.
2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호주에서 이날부터 ‘연결되지 않을 권리’ 법안이 시행되면서 근무 시간 외 고용주의 연락을 확인하거나 답변하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노동자를 처벌할 수 없게 됐다.
만약 법을 어기면 직원은 최대 1만9000호주달러(약 1700만원), 기업은 최대 9만4000호주달러(약 8439만원)의 벌금을 부과받을 수 있다. 지난 2월 제정된 이 법은 이날부터 대기업과 중견기업을 상대로 발효됐다. 직원 15명 미만 소기업은 내년 8월부터 시행 대상이다.
다만 노동자가 연락을 거부하는 것이 부당한 경우 예외적으로 노동자를 징계를 할 수 있다. 비상상황이나 근무시간이 불규칙한 업무 등이 이에 해당한다. 연락 거부가 부당한지는 호주 산업 심판관인 공정 노동 위원회(FWC)에서 판단한다. 위원회는 해당 직원의 역할, 연락이 이뤄진 방식과 이유 등을 고려하게 된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이 법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직장과 집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노동자들이 사적 영역을 침해당하는 현상이 점점 심화하자 일과 삶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 도입됐다. 호주연구소 미래연구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호주 노동자들은 지난해 평균 281시간 무급으로 초과 근무를 했다. 이에 따른 노동의 금전적 가치는 1300억호주달러(약 116조7542억원)로 추산됐다.
존스 홉킨스 스윈번 공과대 조교수는 “디지털 기술이 생기기 전에는 (사적 영역에 대한) 침해가 없었다”며 “(당시) 사람들은 근무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갔고, 다음날 근무 시간이 돌아올 때까지 어떤 연락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이제 전 세계 노동자들이 휴가 중일 때조차 업무 연락에 답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여겨진다”고 했다.
호주 노조와 인권단체 등은 법안 시행을 환영하고 있으나, 고용주들이 모인 호주 산업단체는 법안 적용 방식이 모호해 노동자와 고용주에게 혼란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산업단체는 지난 22일 입장을 내고 “법안이 엉뚱하게 만들어졌으며 실질적 효과에 대한 최소한의 협의도 없이 도입됐다”며 “고용주들이 준비할 시간도 거의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호주 노동조합 협의회 미셸 오닐 회장은 “법에 포함된 단서 조항을 보면 업무상 합리적 요청까지 막진 않을 것”이라며 “경영진의 계획 부족으로 노동자들이 대가를 치르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법안은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과 미주 대륙 약 20여 개국에서 이미 시행 중이다. 2017년 이 법을 도입한 프랑스에선 이듬해 직원들에게 항상 휴대전화를 켜두도록 요구한 해충 관리 회사 ‘렌토킬 이니셜’에게 6만유로(약 88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