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군이 강도 높은 공격을 퍼붓고 있는 가자지구 최대 도시 가자시티 전체에 소개령을 내렸지만 이전과 같은 ‘대탈출’ 행렬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지난 9개월간 반복된 토끼몰이식 대피령과 이어진 공격에 지친 주민 일부는 “차라리 집에서 죽겠다”며 피란을 포기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10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은 가자시티 전체 주민들을 대상으로 ‘안전한 경로’를 따라 중부 데이르알발라로 전원 대피할 것을 명령하는 전단을 살포했다. 이스라엘군이 가자시티 전체를 대상으로 소개령을 내린 것은 지난해 10월 전쟁 발발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가자지구 북부에는 주민 약 30만명이 남아 있으며, 이 가운데 대다수가 가자시티에 머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성명을 내고 “이미 수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여러 차례 집을 떠나 피란민이 됐다”면서 “(대피령은) 이들의 고통을 더욱 가중시킬 뿐”이라고 비판했다. ‘대피령’이란 말이 현 상황을 반영하기에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스라엘군이 ‘안전지대’로 설정해 주민들에게 이주를 명령한 지역을 반복적으로 공격했기 때문이다. 전쟁 발발 후 이스라엘군은 하마스를 뿌리 뽑겠다며 비좁은 가자지구 안에서 주민들을 상대로 토끼몰이식 소개령·대피령을 반복해왔다.
파괴된 도시에 머물던 주민들 상당수가 다시 길을 떠나고 있지만, 일부는 떠나기를 거부하고 있다. AP통신은 “이전과 같은 대규모 대피 행렬은 보이지 않는다”면서 “계속되는 전쟁으로 많은 주민들이 가자지구엔 ‘안전지대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47세 주민 아브라힘 알바르는 “이스라엘 미사일은 남쪽과 북쪽을 구별하지 않는다”면서 “죽음이 우리 가족의 운명이라면, 집에서 존엄하게 죽을 것”이라고 BBC에 말했다.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이들도 있다. 많은 주민들이 부상을 입은 데다, 설명과 달리 안전한 대피로가 확보되지 않으면서 탈출을 포기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일부는 남쪽이 아닌 북쪽으로 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군이 제시한 이동 경로인 살라 알딘 도로를 통해 남쪽으로 가려면 이스라엘군 검문소를 지나야 한다. AP통신은 “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이 검문소에서 군인들에게 체포되거나 굴욕을 당할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