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리 결의 구속력 놓고 갑론을박
이스라엘, 라파 지상 공격 앞당길 수도
가자지구 주민들 “낙관하지 않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25일(현지시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즉각 휴전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지난해 10월7일 개전 이후 처음으로 채택했지만 실제 평화 정착까진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권표를 던진 미국은 결의에 대해 “구속력이 없다”며 몸을 사렸고, 이스라엘도 결의를 이행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들도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이날 결의안 채택 후 “우리는 이 구속력 없는 결의의 중요한 목표 가운데 일부를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어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소통보좌관도 브리핑에서 “다시 말하지만, 이것(결의)은 구속력이 없다”며 “하마스를 쫓는 이스라엘 능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에 미국이 즉각 휴전을 촉구하는 국제사회 눈치를 보면서도 사실상 이스라엘에 면죄부를 부여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안보리 결의는 반드시 이행돼야 한다”며 “실패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보리 결의의 구속력 여부는 오랜 논쟁거리다. 일반적으로 안보리 결의는 유엔 헌장 25조에 따라 모든 회원국이 준수해야 한다고 여겨진다. 유엔 헌장 25조는 ‘유엔 회원국은 이 헌장에 따라 안보리의 결정을 수용하고 이행하는 데 동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결의의 문구를 각각 따져 구속력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앞서 국제사법재판소(ICJ)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1차 세계대전 당시 나미비아 점령 문제와 관련해 1971년 자문 의견을 내면서 “안보리 결의 문구의 구속적 효과에 대해 결론을 내기 전 조심스럽게 분석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결의의 경우 안보리는 ‘즉각적인 휴전을 요구한다’는 문구를 채택했는데, 미국은 해당 문장에 ‘결정’이라는 표현이 쓰이지 않아 구속력이 없다는 논리를 폈다.
뉴욕타임스(NYT)는 “결의는 국제법으로 간주하고 정치적·법적 중요성이 크지만, 안보리는 이를 집행할 수단이 없다”며 “이사회는 결의 위반자에 대해 제재 등 징벌적 조처를 할 수도 있지만, (상임이사국이) 이에 거부권을 행사하면 이마저도 방해받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2016년 팔레스타인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정착촌 확장을 중단하라는 안보리 결의를 지금까지 무시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번에도 결의를 따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 지상군 투입 논의를 위해 미국에 대표단을 파견하려던 계획을 취소한 데 이어 이와 별도로 미국을 방문한 요아브 갈란드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이날 “우리는 아직 가보지 않은 곳을 포함해 모든 곳에서 하마스에 맞서 작전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오히려 라파 지상 작전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결의 내용 자체에 허점이 있다는 비판도 있다. 안보리가 ‘즉각 휴전’을 라마단 종료(4월9일) 전까지 달성하라고 요구했는데, 약 2주밖에 남지 않은 데다가 라마단 종료 이후엔 결의의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주를 이룬다.
가자지구 주민들도 유엔 등 국제사회를 신뢰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피난민 비랄 아와드는 로이터통신에 “미국이 힘으로 이스라엘을 막지 않는다면 미국의 결정은 종이 위 잉크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셈 무카다드도 “이스라엘이 이번 결정에 동의하리라고 낙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