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란 '일촉즉발'에 국제유가↑…물가 전망이 흔들린다 (2024. 4. 8.)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4-04-09 12:08 조회359회관련링크
본문
지난해 10월 발발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전쟁이 그동안 국내 경제에 직접 미치는 영향이 작았던 이유는 단순하다. 중동에 있지만, 둘 다 산유국이 아니라서다.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한 분석도 ‘중동으로 전쟁이 확전하지 않는다면’이란 전제 아래 이뤄졌다. 그런데 최근 전제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지난 1일(이하 현지시간) 이스라엘이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을 공습하면서다.
공습 직후 모하마드 바게리 이란군 참모총장은 “적(이스라엘)에게 최대한의 피해를 가해,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게 할 것”이라며 “공격 시점과 장소·방법은 이란이 결정한다”고 경고했다. 공격 시점으로는 이슬람 금식월인 라마단의 ‘권능의 밤’이 있는 10일 전후가 거론된다. 이란이 실제 이스라엘 공습에 나설 경우 이란과 미국의 대리전으로 번질 수 있다.
선물로 거래하는 국제유가는 지난주 6거래일 연속 올랐다. 지난 5일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북해 브렌트유 6월 인도분은 배럴당 91.17달러에 마감했다. 같은 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5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86.9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올해 들어 브렌트유와 WTI는 각각 18%, 21% 급등했다. 선물(futures)은 현재 시점에서 미래 특정 시점에 미리 약속한 상품 가격으로 거래하는 방식이다. 선물 가격이 오른다는 것은 그만큼 변동성이 커졌다는 뜻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도 유가 전망에 일제히 경고등을 켰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올해 여름 지정학적 긴장과 석유수출국기구(OPEC) 감산 등을 근거로 유가가 배럴당 95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봤다. JP모건체이스는 오는 8~9월 유가가 100달러에 도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씨티그룹도 연내 배럴당 100달러까지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이란은 OPEC에서 세 번째 큰 산유국이다. 오랜 국제 사회 제재로 세계 석유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대까지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국제유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이란의 원유 생산이 10만 배럴 감소할 때마다 국제유가 전망치가 배럴당 1달러씩 상승한다.
이란은 세계 원유 수송량의 20%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을 낀 나라이기도 하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경우 중동 이외 산유국이 가진 예비 산유량만으로 유가 급등을 막기 어렵다. 유광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이란 참전→중동 확전으로 이어지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국제유가가 10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주장의 근거”라며 “예멘 후티 반군의 공습이 가져온 홍해 발(發) 물류 대란처럼 ‘호르무즈 발 석유 대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국내총생산(GDP) 1만 달러 당 원유 소비량이 5.70배럴로 1위다(2020년 기준). 원유를 전량 수입하는 만큼 중동 불안에 더 취약하다. 최근 3%대로 반등한 물가 상승률도 과일(사과·배 등)과 함께 석유류가 이끌었다. 지난달 석유류 물가는 1년 전보다 1.2% 올랐다. 석유류 가격이 상승한 건 지난해 1월(4.8%) 이후 14개월 만이다. 석유류의 전체 물가 상승률 기여도(0.05%포인트)도 ‘플러스’로 돌아섰다. 물가를 끌어내리던 변수가 3월부터 밀어 올리는 변수가 된 셈이다.
황경임 기획재정부 물가정책과장은 “국제유가는 2~3주 시차를 두고 국내유가에 반영된다. 최근 상승한 국제유가가 4월 물가에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재부가 연초 발표한 ‘경제정책방향’에서 지난해 3.6%였던 물가상승률이 올해 2.6%로 떨어진다고 전망한 근거 중 하나가 국제유가 하락세다. 2022년 22.2% 올라 물가 상승을 부추긴 석유류 가격은 지난해 11.1% 뒷걸음치며 전체 물가를 둔화하는 데 큰 몫을 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하반기 2%대 물가 하락의 전제였던 ‘국제유가 안정’ 전망이 근본부터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