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자치정부 ‘ICC 압박설’ 주장
“체포영장 발부 시 보복해 무너뜨릴 것”
팔 자치정부 붕괴 시 미 ‘전후 구상’ 차질 노린 듯
이스라엘이 국제형사재판소(ICC)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비롯한 이스라엘 지도자들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할 경우, 이에 대한 ‘보복’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를 무너뜨리겠다고 미국 정부에 경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 매체 악시오스는 1일(현지시간) 2명의 이스라엘 당국자와 미 당국자들의 말을 인용해 이스라엘 정부가 이런 입장을 최근 미국 정부에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ICC 체포영장이 발부되면 그 책임이 PA에 있다고 간주할 것이며, 이에 대한 ‘강력한 보복 조치’를 단행해 PA를 붕괴시키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가자지구 전후 구상과 관련해 현재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통치하는 PA가 종전 이후 가자지구 역시 통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최근 ICC가 가자지구 전쟁과 관련해 수많은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사망케 하고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을 방해한 혐의로 네타냐후 총리를 비롯해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 헤르지 할레비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에 대한 체포영장을 곧 발부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며 이스라엘 정치권에선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이에 네탸냐후 총리는 지난달 28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미국이 ICC의 체포영장 발부를 막아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한 이스라엘 고위 관리는 체포영장을 발부하겠다는 ICC의 위협은 ‘실제적’이라며, 영장 발부가 현실화된다면 이스라엘 내각은 PA를 ‘처벌’하기로 공식 결정해 이들을 붕괴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PA가 이스라엘 지도자들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하도록 ICC 기소 검사를 압박하고 있다고 미국 측에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PA를 겨냥한 이스라엘의 ‘보복 조치’로는 이스라엘이 PA를 대신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걷는 세금을 PA로 이전하지 않는 방안이 거론된다. 이스라엘이 세수를 전달하지 않으면 PA는 파산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ICC 체포영장에 대한 ‘PA 압박설’을 제기하며 미국 측에 ‘요청’을 넘어 사실상 ‘협박’에 가까운 보복을 거론하는 것은 PA가 붕괴될 경우 미국의 가자지구 전후 구상에 큰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팔레스타인 주권을 인정하는 이른바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해 왔고, 가자지구 전쟁이 끝나면 과도기를 거쳐 궁극적으로는 PA가 가자지구 통치 세력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반면 이스라엘은 이에 반대하며 가자지구 전후 구상을 두고 미국과 입장 차를 보여 왔다.
다만 이스라엘의 최대 지원국인 미국은 ICC의 체포영장 발부 건과 관련해서도 이스라엘을 적극 비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 당국자들은 바이든 정부가 체포영장 발부는 ‘실수’가 될 것이며 미국은 이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ICC에 비공개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한 당국자는 “우리는 ICC에 체포영장을 발부하지 말 것을 조용히 권고하고 있다”면서 “그런 행위는 모든 것을 날려버릴 것이며, 이스라엘은 PA에 보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ICC에 이스라엘 지도부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하라는 압력이 존재하지만, 이스라엘이 생각하는 것 만큼 상황이 긴박하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네타냐후 총리와의 통화에서도 미국이 이스라엘에 대한 ICC 조사에 반대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본부를 둔 ICC는 전쟁 범죄, 민간인 대량 학살 등의 반인도주의 범죄를 저지른 개인을 처벌하는 상설 국제재판소다. ICC가 국가원수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한 사례는 2011년 사망한 리비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 2019년 숨진 오마르 알바시르 수단 전 대통령, 우크라이나 전쟁을 치르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