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현지시간) 중동지역 전역에 흩어진 팔레스타인인들이 ‘나크바’의 날을 맞아 거리로 나왔다. 지난해 10월 가자지구 전쟁 발발 이후 숨죽여 지내야 했던 이스라엘 북부 거주 팔레스타인인 3000여명도 나크바를 기억하는 거리 행진에 나섰다.
전 세계 유대인들이 ‘독립기념일’로 축하하는 이스라엘 건국일(5월14일) 다음날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겐 나크바, 즉 ‘재앙의 날’이다.
아랍어로 ‘대재앙’을 뜻하는 나크바는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팔레스타인인 약 70만명이 고향에서 쫓겨난 사건을 의미한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 건국일 다음날을 ‘나크바의 날’로 정해 지금은 이스라엘 영토로 변한, 파괴된 옛 고향 마을을 찾아 기억하는 행사를 열어왔다.
유엔 통계에 따르면 약 600만명에 이르는 강제 이주 희생자와 그 후손들이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의 난민 캠프에 살고 있다.
강제 이주 후 76년이 흘렀지만 가자지구에선 ‘나크바’가 계속되고 있다고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말한다. 1948년 강제 추방됐던 70만명의 갑절이 넘는 인구가 지난해 10월 전쟁 발발 이후 집을 잃었다. 지난 7개월간 가자지구 전체 인구(약 230만명)의 약 85%가 피란민이 됐고, 3만5000여명이 넘게 목숨을 잃었다.
최근 이스라엘군이 주민 소개령을 내리며 군사 작전을 개시한 가자지구 ‘최후의 피란처’ 라파에서도 대규모 피란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유엔은 지난 6일 이스라엘의 대피 명령 후 약 일주일간 60만명이 라파를 떠났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이스라엘군이 재차 군사작전을 개시한 가자지구 북부에서도 10만명의 주민이 탈출했다. 가자지구 전체 인구의 약 3분의 1이 불과 며칠 만에 피란민 신세가 된 것이다.
북부 가자시티의 집을 떠나 중부 데이르 알발라의 난민촌에서 생활하고 있는 움샤디 세이크 칼릴은 “우리에게 나크바는 단 한 번의 사건이 아니다”라며 “우리는 이미 여러 번 ‘나크바’를 겪었다”고 AP통신에 말했다. 라파의 난민촌 텐트에 살고 있는 80세 주민 움 모하메드도 로이터통신에 “이번 사태보다 더 심한 나크바는 없었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나크바로 베르셰바에서 쫓겨나 가자지구로 이주했다는 그는 “아이들도, 집도 재산도 모두 잃었고 우리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면서 “우리에게 울어야 할 무언가가 남아 있나”라고 반문했다.
이스라엘군은 국제사회의 거듭된 반대에도 지난 7일 탱크를 동원해 라파로 진격했고, 현재 주거지역 등 중심부까지 밀고 들어간 상태다.
이곳에서 시가전이 본격화되면 대형 참사가 벌어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으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미 50만명이 대피했다며 “군사 작전에 따른 인도적 재앙은 일어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유엔은 피란민들에게 배포할 식량과 텐트가 바닥났다며 가자지구 남부가 “재앙적인 상황”이라고 밝혔다. 가자지구에는 지난 9일 이후 구호품 공급이 수일째 끊긴 상태다. 이스라엘은 구호 차질이 이집트가 구호 통로를 봉쇄했기 때문이라고 책임을 돌리고 있다.
국제앰네스티, 옥스팜 등 20개 국제인권단체들은 이날 공동성명을 내고 “이스라엘의 라파 공격이 인도주의적 재앙을 초래하는 상황에서도 세계 지도자들이 행동에 나서지 않고 있다”며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심각한 국제인도법 위반 행위를 종식시키기 위해 긴급히 행동하고 책임을 추궁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