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개월간 무력 충돌을 이어온 이스라엘과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27일 오전 4시(현지시간)를 기해 60일간의 일시 휴전에 돌입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전날 늦은 오후 영상 연설을 통해 안보 내각이 휴전안을 승인했다고 밝히며 “레바논에서의 휴전은 이란의 위협에 집중하고, 우리 군을 쉬게 하고, 하마스를 고립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후 프랑스와 함께 양측 간 휴전을 중재했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휴전 협상 타결 소식을 공식 확인했다. 나지브 미카티 레바논 총리도 바이든 대통령과 통화하며 협상 타결을 환영했다고 레바논 총리실이 밝혔다.
지난 9월 이스라엘이 레바논에서 ‘북쪽의 화살’ 작전을 시작하고, 18년 만에 지상전에 돌입하는 등 공세를 강화한 시기부터 따지면 약 두 달여 만에 포성이 멈추게 됐다.
미국이 제안한 휴전안은 이스라엘군과 헤즈볼라가 60일간 휴전하고 레바논 남부 국경지대에서 철수하는 것이 골자다. 2006년 채택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701호를 이행하는 것이 핵심 내용으로, 헤즈볼라가 국경에서 약 30㎞ 떨어진 리타니강 북쪽으로 철수하고 이스라엘도 레바논 영토에서 철군해 국경지대에 레바논 정부군과 레바논 주둔 유엔평화유지군(UNIFIL)만 남긴다는 구상이다.
휴전안에는 국경지대에 레바논 정규군 수천 명을 추가 투입하고, 휴전 이행 여부를 감시할 미국 주도의 국제관리위원회를 구성하는 내용도 포함됐으나 세부 사항은 알려지지 않았다.
휴전 성사는 전쟁 당사자 양측의 내부적인 요인에 더해 미국의 강한 압박이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지난 9월부터 이스라엘이 공세 수위를 끌어 올리며 지도부를 연이어 잃은 헤즈볼라는 조직 궤멸 위기에 내몰렸고, 휴전에 전향적인 입장을 보이기 시작했다. 여기에 강경한 전쟁 기조로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아온 네타냐후 총리는 최근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전쟁범죄 혐의로 체포영장까지 발부되며 국제적 입지가 크게 흔들렸고, 이런 상황에서 정권교체를 앞둔 미국 정부가 휴전안 수용을 강하게 압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가까스로 휴전이 성사됐으나 분쟁이 재개될 수 있는 불씨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장 네타냐후 총리는 휴전 시작 전부터 ‘합의 파기’ 및 ‘전쟁 재개’ 가능성을 거론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은 미국의 완전한 이해 속에 레바논에서 완전한 (군사) 행동의 자유를 유지할 것”이라며 “헤즈볼라가 합의를 깨고 재무장을 시도하면 우리는 다시 공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가 휴전 협정을 위반했다고 판단될 경우 레바논을 공격할 권리, 즉 ‘군사행동의 자유’가 이스라엘에 있으며 이것이 휴전협정의 일부라고 강조했다. 반면 레바논 정부와 헤즈볼라는 이는 레바논에 대한 주권 침해이며 미국이 제시한 휴전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미국과 이스라엘 간 온도 차도 감지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합의된 휴전 기간은 60일이지만 “이것은 적대 행위의 영구적 종식을 위한 것”이라며 ‘종전’에 방점을 찍은 반면, 네타냐후 총리는 “휴전 기간은 레바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며 여전히 재공격 가능성을 열어뒀다.
미 매체 악시오스는 미국이 이스라엘의 요구에 따라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로부터 위협을 받을 경우 국제법에 따라 이스라엘이 군사행동을 할 자유가 있다’는 내용의 서면 보증을 해줬다고 보도했다.
다만 군사행동을 촉발할 만한 ‘위협’을 어느 수준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선 추후 해석을 두고 논란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미국 관리는 “이스라엘이 레바논에서 원하는 대상을 언제든 공격할 수 있다면 휴전 협상은 성사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악시오스는 “휴전은 어렵게 이룬 외교적 성과지만, 휴전 파기를 막는 것이 더 어려울 수 있다”면서 “정권 교체기 미국이 더 어려운 임무를 맡게 됐다”고 짚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휴전 성사로 중동 확전의 급한 불은 껐다는 분석도 있다. 당장 헤즈볼라를 지원해온 이란과 이스라엘의 직접 충돌 가능성이 줄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란은 헤즈볼라와 하마스를 모두 지원하고 있으며 올해 들어 두 차례 이스라엘과 직접 공격을 주고받았다. 이란은 이날 이스라엘의 공격 중단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제사회도 일제히 휴전을 환영했지만, 이스라엘군은 휴전 합의 발표 후에도 휴전 발효 시점까지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등에 대규모 폭격을 퍼붓는 등 막판 공세를 강화했다. 이날 하루 동안 레바논 전역 180곳이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받아 최소 42명이 숨졌다.
지난해 10월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전쟁이 벌어진 후 이스라엘·레바논 국경지대는 ‘제2의 전선’이 됐다. 양측은 국경지대에 국한해 산발적인 공격을 주고받았으나, 이스라엘이 지난 9월17일 이른바 ‘삐삐(무선호출기) 연쇄 폭발’ 공격을 시작으로 레바논 전역에 공세를 강화하고 18년 만에 지상군까지 투입하며 전쟁이 확대됐다.
레바논 보건부에 따르면 지난 13개월간 양측의 전쟁으로 인해 최소 3823명이 숨졌고 1만5859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망자 가운데 대다수인 3500여명은 지난 9월 이후 숨졌으며, 사상자 다수가 민간인이었다. 이스라엘군이 ‘북쪽의 화살’ 작전을 시작한 후 레바논 인구의 4분의 1이 넘는 120만명이 피란길에 올랐다. 이스라엘에선 13개월간 군인과 민간인 140명이 사망했고 북부 지역 주민 6만여명이 피란길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