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지 인근까지 산불 확산···대규모 대피 명령
게티 미술관·슈워제네거 자택도 대피령 지역 포함
미국 서부 로스앤젤레스(LA)를 휩쓴 산불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당국의 총력 대응에도 불길이 잡히지 않고 주거지역까지 번지면서 인명피해도 커지고 있다.
11일(현지시간) CNN 등 보도에 따르면 지난 7일부터 서부 해변의 부촌 퍼시픽 팰리세이즈 등에서 발생한 산불이 닷새째 이어지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당국은 이날까지 최소 16명이 숨졌으며, 실종자도 13명 이상이라고 추산했다. 수색 작업이 본격화하면 피해는 더 커질 수 있다. 화재로 파괴된 건물도 1만2000채가 넘는다.
LA에서는 지난 7~9일 최소 7건의 산불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이 중 산불 4건이 이날까지 꺼지지 않고 있다. 가장 규모가 큰 ‘팰리세이즈 산불’은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륙 지역까지 번지면서 24시간 만에 4.7㎢를 불태웠다. 한인들의 주요 거주지 근처에서 발생한 ‘이튼 산불’도 가장 큰 인명피해(10명 사망)를 내며 확산했다. CNN에 따르면 이미 두 산불은 LA 카운티 내에서 가장 큰 피해를 낳은 산불로 기록됐다.
이 밖에 서북부에서 시작된 ‘케네스 산불’과 북부에서 발생한 ‘허스트 산불’도 계속 확대되고 있다. 지난 7일부터 산불 4건으로 소실된 면적을 모두 합하면 156.3㎢에 달한다. 서울시 면적(605.2㎢)의 4분의 1을 넘는 크기다.
산불이 주거지 인근까지 확산한 점도 우려를 키우고 있다. 이날 LA 카운티 내 주민 15만3000명에 대피 명령이 발령됐고, 16만6000명은 언제든 대피할 준비를 하라는 ‘대피 경고’를 받았다. 세계적인 미술품을 보유한 명소 게티 미술관과 할리우드 스타인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자택도 대피령이 내려진 지역에 포함됐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이날 오후에는 팰리세이즈 산불이 동쪽 내륙으로 방향을 틀어 고속도로와 맞닿은 산자락까지 옮겨붙으면서 소방대원 수천 명이 사투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화재 진압률은 여전히 낮다. 특히 규모가 큰 팰리세이즈와 이튼 산불 진압률은 10%대에 머물러 있다. 당국은 소방헬기를 동원해 물과 방염제를 투하하고 캐나다·멕시코로부터 구조대 지원까지 받았지만, 이날 오전부터 최대 시속 75㎞의 강한 바람이 불어 화재 진압에 어려움을 겪었다.
돌풍이 화재 연기를 확산시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이산화질소, 오존 등 유해 물질이 화재 연기와 함께 퍼지면서 건강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보건복지부는 이번 화재로 캘리포니아주에 “짙은 독성 연기”가 발생했다며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정확한 화재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당국은 이번 화재가 번개나 방화로 인해 발생한 것은 아니라고 보고 추가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일부 과학자들은 기후위기가 산불 피해가 키웠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강수량이 급감하고 고온건조한 날씨가 이어지는 등 기상이변이 계속되면서 메마른 나무들이 ‘땔감’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전날 조 바이든 대통령은 화재 피해를 보고받은 뒤 “우리는 이런 끔찍한 경험을 많이 겪어 왔다. 이제 기후변화는 현실이 됐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화재 예방과 초기 대응에 실패한 주 당국의 책임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기상청이 올해 초부터 LA지역에 “화재가 발생할 위험이 매우 크다”는 경고를 여러 차례 내놨는데도 불길이 크게 번진 탓이다. 소방당국도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화재 진화에 나선 지 약 5시간 만에 소화전이 마르기 시작했다며 당국이 저수지 용량 등 관리에 소홀했다고 주장했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이번 산불과 관련해 물 4억4000만ℓ 용량 저수지를 사용할 수 없었던 이유와 소화전 물이 고갈된 원인 등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