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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동 할머니, 日사죄 못받고 93세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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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1-29 10:37 조회2,01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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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동 할머니, 日사죄 못받고 93세로 별세
2019년 01월 28일 (월) 23:51:38이승현 기자 shlee@tongilnews.com
  
▲ 지난 2017년 3월 29일 서울시 마포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 세워진 동상앞에서 감사 인사를 전하는 김복동 할머니.[통일뉴스 자료사진]

1940년 만 14세의 나이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성노예 피해자가 되었지만 평생을 그에 굴하지 않고 살아 온 인권운동가 김복동 할머니가 28일 오후 10시 41분 별세했다. 향년 93세.

일본군성노예문제해결을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윤미향 이사장은 28일 저녁 김복동 할머니의 부고를 페이스북을 통해 전했다.

1926년 경상남도 양산에서 태어난 김복동 할머니는 만 14살 나이로 전쟁터에 끌려가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를 비롯해 일본군의 침략경로를 따라 끌려다니며 그들의 성노예로 피해를 당하다 1945년 종전 시기에 싱가포르에서 일본군 제16사령부 소속 제10육군병원에서 일본군 간호사로 위장당해 미군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일본군에 끌려간지 8년이 되는 1947년 22살의 나이로 귀향했다.

생애의 후반인 1992년 3월부터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로서의 생활을 공개하면서 활동을 시작해, 이미 생존하지 못했거나 이름을 감추고 살아야만 했던 수많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의 상징으로 살았다.

1992년 8월 제1차 일본군 '위안부'문제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증언한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인권운동가의 삶을 이어간 김복동 할머니는 2000년 일본군 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에 원고로 참여해 실상을 문서로 증언하였으며, 2010년 7월 30일에는 미국 캘리노피아주 글렌데일 시의회로부터 용감한 여성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복동 할머니는 거리에서, 미디어를 통해서 일본의 진정한 사죄와 제대로 된 배상을 요구하며 남은 생을 살았던 인권평화운동가였지만 그에 그치지 않고 무력분쟁 중에 만연했던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고 국가폭력은 물론 자연재해로 어려움을 겪는 피해자들을 위해 스스로 평화나비가 되어 평화운동을 이끌어 왔다.

2011년 3월에는 일본 동북부대지진 피해자 돕기 모금을 제안해 1호 기부를 했고 2012년 3월 8일에는 정대협과 함께 전시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나비기금을 설립했으며,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유엔인권이사회와 함께 미국, 영국, 독일, 노르웨이, 일본 등 매년 수차례 해외 캠페인을 다니며, 전쟁 없는 세상,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이 생기지 않는 세상을 위해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2013년 7월 30일에는 해외에 세워진 첫 평화비인 미국 캘리포니아 글렌데일시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 참석했으며, 2014년 3월 7일에는 베트남 한국군 성폭력 피해자에게 사죄와 지원 메세지를 영상으로 알려 인권활동의 폭을 넓혔다.

이에 대해 국경없는기자회와 AFP는 2015년 5월, 김복동 할머니를 '자유를 위해 싸우는 세계 100인의 영웅'에 선정했으며, 그해 12월 10일 대한민국 국가인권위원회는 그에게 '2015년 대한민국 인권상 국민훈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복동 할머니는 언제나 세상으로부터 받은 것 그 이상을 세상에 다시 내주었다. 2015년 6월 25일 전쟁·무력분쟁지역 아이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5천만원을 나비기금에 기부하였으며, 2017년 7월 6일에는 재일 조선 고등학교 학생 2명에게 김복동장학금을 전달하고 2017년 8월에는 남은 모든 재산을 사후에 기부하는 약정을 했다.

2017년 9월 26일 서울특별시 명예의 전당에 선정되고 그해 11월 25일 정의기억재단으로부터 여성인권상을 수상했으며, 12월 10일 국제여성인권단체인 성평등을 위한 여성 이니셔티브(Women's Initiatives for Gender Justice)가 '성평등 유산의벽‘에 김복동 할머니와 정대협을 선정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지만 김복동 할머니는 포항지진 피해자 돕기에 1천만원을 후원(2017.11.23)하고 여성인권상금 5천만원을 무력분쟁지역 성폭력 피해자 지원 및 활동을 위한 '김복동평화상'제정과 정의기억대잔에 기부하고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에게 김복동장학금을 수여하는 등 아픔을 어루만지는데 전념했다.

지난해 12월 10일 한달 전 5천만원을 기부한 재일조선학교 학생들을 위한 '김복동의 희망' 명예회장에 취임해 올 초에도 바른의인상 수상 상금 500만원을 이곳에 후원했다.

윤미향 대표는 "김복동 할머니는 매주 수요일마다 거리로 나가 학생들을 만나고, 시민들을 만나 모두가 함께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자고 호소해 왔다. 일본에서 오는 활동가들을 향해서도 힘내라고 격려하며, 세계 각지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향해서 전쟁이 없고, 다시는 성폭력 피해자를 만들지 않는 세상을 위해 노력해 줄 것을 호소해 왔다. 이러한 평화를 향한 김복동 님의 끝없는 노력은 그동안 국내외에서 했던 외침 속에 너무나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고 고인의 생을 회고했다. 

김복동 할머니가 앞장선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들의 운동이 전 세계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을 하나로 결속시키고, 그들의 목소리를 더 강하고 더 넓게 확산시켜가 있으며, 국경을 넘어서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의 초국적인 연대는 이 세상을 평화로 만들고, 전시 성폭력 피해의 재발을 막는 데 새로운 희망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빈소는 서울시 서대문구 신촌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 1호실이며, 조문은 29일 오전 11시부터 가능하다. 장례는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시민장'으로 하게 된다.

(사진 추가= 29일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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