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국이 “지난 시기 북남관계 개선과 평화통일을 위한 연대기구로 내왔던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북측본부, 민족화해협의회, 단군민족통일협의회 등 우리 관련단체들을 모두 정리하기로 했다”고 노동신문이 13일 보도했다. 신문이 거론한 북쪽 단체들은 1990년대 이후 탈냉전기에 남북 민간교류에 관여해온 조선노동당의 ‘외곽기구’들이다.
노동신문은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서 역사적인 당중앙위 8기9차 전원회의에서 제시하신 대남정책 전환 방침을 철저히 관철하기 위한 대적 부문 일군들의 궐기모임이 12일에 진행됐다”며 이렇게 전했다. 신문이 언급한 “대적” 부문이란 기존의 “대남” 부문의 달라진 표현이다.
노동신문은 ‘대적 부문 일군 궐기대회’에서 △“공화국의 대적 투쟁사를 (새롭게) 써나갈 데 대한 문제” △“괴뢰족속들을 완전히 소멸해야 할 우리의 주적이라는 확고한 관점에서 통일정책을 새롭게 정립하며 대남부문의 투쟁원칙과 방향을 근본적으로 전환할 데 대한 문제” △“남반부의 전 영토를 평정하려는 우리 군대의 강력한 군사행동에 보조를 맞추어 대사변 준비를 예견성 있게 추진해나갈 데 대한 문제” 따위가 “강조됐다”고 보도했다.
이 ‘궐기모임’은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가 연말 전원회의에서 “북남관계는 동족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관계”라며 “통일전선부를 비롯한 대남 사업 부분의 기구들을 정리·개편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한 데 따른 후속 조처로 보인다.
범민련 북측본부는, 범민련이 독일 베를린에서 결성(1990년 11월20일)된 직후인 1991년 1월25일 만들어졌다. 범민련의 해외본부는 90년 12월17일, 남측본부는 95년 2월25일 결성됐다. 범민련 남측본부는 1997년 대법원의 ‘이적단체’ 판결을 받았다. ‘3자 연대 통일운동’을 표방한 범민련의 활동은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크게 위축됐다. 범민련은 고 문익환 목사가 1989년 3월 방북해 당시 김일성 주석과 두 차례 회담을 한 뒤 그해 4월2일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고문 문익환’ 자격으로 북쪽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허담’과 합의·발표한 9개항의 공동성명에 뿌리를 두고 있다.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는 2000년 6월 첫 남북정상회담 이후 만들어졌고, 해외위원회와 남측위원회가 따로 있다. 2000년대 들어 위상·활동이 약화된 범민련을 사실상 대체하며 2000년식 ‘3자 연대 통일운동’의 주도체로 활동해왔으나 남북 당국관계의 변화에 따라 부침을 겪어왔다. 민족화해협의회는 1998년 만들어져 남북 사회문화교류와 대북 인도적 지원의 북쪽 협상 창구로 활동해왔는데 몇해 전부터는 ‘해체된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활동이 없었다.
한편 북쪽 매체는 아직 공개 보도하고 있지 않지만, 중국에 서버를 두고 있다고 알려진 북쪽의 대남 선전 매체인 ‘우리민족끼리’ ‘통일의메아리’ ‘류경’ ‘조선의오늘’ ‘려명’ 등의 누리집에 지난 11일부터 접속이 안 되고 있다. 대남 기구 ‘개편·정’리 작업에 따른 누리집 폐쇄 가능성이 제기된다. 아울러 북쪽의 대남 국영 방송인 ‘평양방송’이 지난 12일 오후부터 남쪽에서 신호가 잡히지 않고 있다고 연합뉴스가 13일 보도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