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김효정 기자 = 미국 정부 고위당국자가 한국 반도체 기업의 중국 내 공장에서 일정 기술 수준 이상의 반도체를 생산하지 못하도록 한도를 설정하게 될 것이라고 밝혀 국내 반도체 업계가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이런 언급은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堀起)를 막겠다는 제재 차원이지만, 중국에 진출한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의 사업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앨런 에스테베스 상무부 산업안보 차관은 23일(현지시간) 한국국제교류재단(KF)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워싱턴DC에서 개최한 한미 경제안보포럼에서 삼성과 SK에 제공한 대중(對中) 반도체 수출통제 1년 유예가 끝나면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에 "앞으로 어떻게 할지 기업들과 협의하고 있다. 기업들이 생산할 수 있는 반도체 수준에 한도(cap on level)를 둘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일정 기술 수준 이상의 첨단 제품은 생산할 수 없도록 규제를 두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런 규제가 현실화하면 중국에 반도체 공장을 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사업에 부정적 영향이 생길 수밖에 없다.
다만 국내 업체들은 아직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 나온 것은 아니라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아직은 정부 관계자의 코멘트일 뿐이고 구체적 가이드라인이 나온 것은 아니다"며 "구체적인 영향을 판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정부가 국내 기업에 피해가 없도록 미국과 협상을 잘 이끌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목표는 중국의 첨단 반도체 개발을 막는 것이지 동맹국인 한국의 반도체 업체를 괴롭히는 것은 아닐 것"이라며 "좀 더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생산과 관련한 규제가 생기면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공급망 이슈가 불거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에스테베스 차관의 발언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는 설명자료를 내고 "한미 정부 간 미래 기술수준 한도 설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한 바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한미 양국은 중국 내 우리 반도체 기업이 현재 운영 중이거나 투자 진행 중인 생산을 저해하지 않는다는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며 "이를 바탕으로 정부는 미국 측과 반도체 장비 포괄허가의 연장과 미래 기술수준 설정 논의를 긴밀히 진행해 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외교부 당국자도 "미측에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 내 우리 반도체 공장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우리 기업의 원활한 활동과 불확실성 해소를 위해 미측과 계속 협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과 쑤저우에서 각각 낸드플래시 생산 공장과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공장을 운영 중이다.
SK하이닉스는 우시 D램 공장, 충칭 후공정 공장, 인텔로부터 인수한 다롄 낸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또 자국 내 반도체 생산을 장려하기 위해 기업에 지급하는 총 390억달러(약 50조원) 상당의 보조금에 대한 신청을 다음 주부터 받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보조금을 신청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 테일러시에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으며, SK하이닉스도 첨단 패키징 공장과 연구개발(R&D) 센터 건설 계획을 밝힌 상태다.
다만 역시 중국이라는 변수가 있다. 보조금을 받는 기업은 향후 10년간 중국 등 우려국에서 반도체 생산능력을 확대하지 않기로 상무부와 협약을 체결해야 한다.
다만 범용(legacy) 반도체를 생산하는 기존 시설 운영은 제한하지 않는다. 문제는 범용 반도체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국내 반도체 업계는 보조금을 받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범용 반도체의 정의가 아직 명확하진 않지만, 국내 기업들이 현재 중국에서 생산하는 제품 가운데 최첨단 기술을 적용한 제품은 없다"며 "보조금을 받는 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다양한 외교 채널을 통해 미측에 우리 기업의 수혜 방안 및 관련 우려 사항에 대해 계속해서 협의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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