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 접경 1334㎞를 가다]
북한의 최대 국경도시 신의주는 지금 “공사 중”이다. 압록강의 모래 운반선 너머 강변 신의주시에 코로나19 국경폐쇄 기간에 완공된 세쌍둥이 아파트(왼쪽)와 한창 건축 중인 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하다. 신의주항엔 이전과 달리 무연탄 대신 모래가 산처럼 쌓여 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가을의 압록강·두만강은 풍요로워 너그럽다. “신냉전을 넘어 열전의 위험이 있다”는 걱정이 나올 만큼 한반도·동북아 정세는 위태롭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경은 평화롭다.
조-중(북-중) 국경은 ‘선’이 아닌 ‘면’이다.
1334㎞에 걸친 긴 국경을 이루는 압록강과 두만강 수면 전체가 국경이다. 조·중 두 나라는 압록강과 두만강을 공유한다. 하천, 수로의 중앙선을 국경선으로 삼는 국제법적 일반원칙과 다른 선택이다. 국경 특유의 ‘분리’보다 협력·교류·융합을 앞세운다. 한반도에서 가장 긴 강(길이 803.3㎞)인 압록강의 수풍·태평만·위원·문악·망강루·운봉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도 두 나라가 절반씩 나눠 쓴다.
남과 북의 완전한 분리·대치선인 휴전선(248㎞·155마일)보다 5.4배나 긴데도, 지금껏 대규모 무장충돌을 포함한 국경분쟁은 한번도 없었다. 중국의 15개 국경 가운데 가장 평화로운 국경이다.
한반도 최대 규모 수력발전소인 수풍댐. 압록강변 평안북도 삭주군 수풍노동자구와 중국 랴오닝성 콴뎬현에 걸쳐 있다. 조·중 두 나라는 한반도에서 가장 긴 강(길이 803.3㎞)인 압록강의 수풍·태평만·위원·문악·만강루·운봉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절반씩 나눠 쓴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중국 국무원이 2016년 1월 ‘초국경관광합작구’로 지정한 단둥시 관광 명소인 압록강단교엔 가을을 즐기려는 중국인 관광객이 붐빈다. 압록강단교는 1950년 10월19일 중국인민지원군이 한국전쟁에 참전한 통로이자 미군 폭격으로 파괴된 역사를 품은 ‘조-중 친선’의 상징이다. 중국 정부가 강조하는 사회주의애국주의 ‘홍색관광’의 대표 관광지인데, 50위안을 내야 단교에 오를 자격을 얻는 ‘자본주의적 관광지’이기도 하다. 신의주를 더 가까이 보려면 30분에 90위안인 유람선 탑승권을 사야 한다.
중국 정부의 속내가 어떻든 대부분의 중국인 관광객은 그저 압록강과 신의주를 배경으로 기념사진 찍기에 열심이다. 배경엔 신의주의 대표 볼거리로 떠오른 거대한 원 모양의 ‘일심단결 아파트’와 세쌍둥이 고층 아파트가 잡힌다. 이 건물들은 모두 2020년 1월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국경폐쇄 이후에도 공사를 계속해 완공됐다. 모래 채취·운반선이 압록강을 바삐 오가고, 신의주항엔 이전과 달리 무연탄 대신 모래가 산처럼 쌓여 있다. 신의주는 지금 “공사 중”이다.
압록강변 평안북도 삭주군 수풍노동자구와 중국 랴오닝성 콴뎬현에 걸쳐 있는 한반도 최대 규모 수력발전소인 수풍댐 밑 수풍호에서 국적을 확인할 수 없는 주민이 압록강에 배를 띄워 낚시를 하고 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신의주만이 아니다. 북한에서 가장 낙후한 지역으로 불리는 량강도(양강도) 압록강변엔 농촌마을 전체를 재개발하는 공사가 한창인 곳이 숱하다. 화려한 색상의 신축 문화주택·아파트와 무너질 듯 낡은 무채색 1층 살림집, 숱한 사람들이 달라붙어 벽돌을 쌓아올리는 마을 재개발 현장 따위가 이어지며 압록강·두만강변 접경마을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
중국 국무원이 2016년 1월 ‘초국경관광합작구’로 지정한 단둥시의 관광 명소인 압록강단교엔 가을을 즐기려는 중국인 관광객이 붐빈다. 압록강단교는 1950년 10월19일 중국인민지원군이 한국전쟁에 참전한 통로이자 미군 폭격으로 파괴된 역사를 품은 ‘조-중 친선’의 상징이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1990년대 초반 이후 20년 넘게 아무런 변화 없이 폐허로 방치되던 고요한 접경마을에 2014년부터 신축·개축 움직임이 포착되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가속·확산 추세다. 고요함이 무기력의 다른 얼굴이라면 변화는 생기의 다른 얼굴이다.
‘고난의 행군’이라 불린 1990년대 식량난에 맞선 접경지역 북한 인민들의 처절한 생존투쟁의 현장인 산비탈을 타고 오른 ‘뙈기밭’도 감소 추세가 뚜렷하다. 한 북한경제 연구자는 “코로나19 전인 2019년보다 뙈기밭이 5~10%는 준 것 같다”며 “뙈기밭 경작보다 나은 경제활동이 가능하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압록강·두만강을 따라 조-중 접경 1334㎞를 살피며 만난 많은 이들은,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의 “북한 경제가 3년째 역성장하고 식량난이 심해져 아사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우리 정부가 끝나기 전에 북한이 더 버티기 어려운 시점도 올 수 있다”는 호언을 “실상을 모르는 한심한 얘기”라고 했다.
두만강변 투먼의 농촌마을에서 나고 자란 40대 중반의 조선족 동포는 “가끔 조선(북)에 가보면 형편이 조금씩 나아지는 느낌”이라며 “(김)정일이 때보다 정은이가 그나마 낫다”고 말했다.
그렇더라도 압록강과 두만강이 마냥 평화롭기만 한 건 아니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겨냥한 유엔·미국의 고강도·장기 대북 제재와 ‘대한민국’이라는 변수의 그늘은 짙고 복잡하다.
북한에서 가장 낙후한 지역으로 불리는 량강도(양강도) 압록강변엔 농촌마을 전체를 재개발하는 공사가 한창인 곳이 숱하다. 화려한 색상의 신축 문화주택·아파트와 무너질 듯 낡은 무채색 1층 살림집, 숱한 사람들이 달라붙어 벽돌을 쌓아올리는 마을 재개발 현장 따위가 이어지며 압록강·두만강변 접경마을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신의주 ‘조중압록강대교’는 언제 개통될까?
흔히 ‘신압록강대교’라 불리는 ‘조중압록강대교’는 중국 최대 국경도시 단둥과 북한 최대 국경도시 신의주를 잇는다. 중국 정부가 22억2천만위안(3억4천만달러)을 들여 건설한 4차선 대형 현수교(길이 3016m)로 두 나라를 잇는 최장·최신 인도교다. 2009년 10월 원자바오 중국 국무원 총리의 방북 때 건설에 합의했다. 2010년 5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 때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합의한 ‘(압록강 하구) 황금평·위화도 경제지대’ 창설과 함께 “김정일의 중국식 개방 결심의 상징”(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다. 죽음을 앞둔 말년의 김정일 위원장이 후계자인 ‘아들 김정은’한테 넘겨준 국가생존전략이 중국식 개방임을 상징하는 물리적 실체다.
그러나 조중압록강대교는 2015년 가을 완공되고도 8년여가 흐른 2023년 10월에도 개통되지 못하고 있다. 방치는 아니다. 대교 남단 신의주 쪽에 10층짜리 아파트 10여개 동이 신축됐고, “가끔 공무차량이 대교를 오간다”고 단둥의 소식통이 전했다. 4년 만에 이곳을 살펴본 한 북한 연구자는 “변하고 싶어 하지만 변하지 못하는 북한을 보여주는 듯하다”고 말했다. 조중압록강대교의 개통 여부는 북한 개방의 시금석의 하나다.
흔히 ‘신압록강대교’라 불리는 ‘조중압록강대교’는 중국 최대 국경도시 단둥과 북한 최대 국경도시 신의주를 잇는다. 중국 정부가 22억2천만위안(3억4천만달러)을 들여 건설한 4차선 대형 현수교(길이 3016m)로 두 나라를 잇는 최장·최신 인도교다. 2009년 10월 원자바오 중국 국무원 총리의 방북 때 건설에 합의했다. 2010년 5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 때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합의한 ‘(압록강 하구) 황금평·위화도 경제지대’ 창설과 함께 “김정일의 중국식 개방 결심의 상징”(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다. 그러나 조중압록강대교는 2015년 가을 완공되고도 8년여가 흐른 2023년 10월에도 개통되지 못하고 있다. 조중압록강대교의 개통 여부는 북한 개방의 시금석의 하나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지안의 북한식당 ‘묘향산’과 ‘압록강 궈먼징루(國門景樓)’의 한국인 출입금지
중국 국무원은 2016년 1월 지린성 옌볜(연변)조선족자치주를 단둥시와 함께 ‘초국경관광합작구’로 지정했다. 지린성의 압록강·두만강 접경도시인 지안시·창바이현·투먼시·훈춘시는 관광객 유치에 열심이다. 그런데 접경 관광지에서 한국인 관광객에 대한 ‘통제’는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지린성 지안시의 유일무이한 북한식당인 ‘묘향산’은 부유한 중국인과 조선족이 즐겨 찾는 인기 식당이다. 중국 대도시의 많은 북한식당이 ‘평양음식’을 내놓는 데 비해 ‘묘향산’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지안시와 마주한 자강도의 도청 소재지인 강계에서 온 이들이 ‘강계음식’으로 차별화 전략을 펼친 덕분이다. 하지만 한국인은 ‘묘향산’의 강계음식을 즐길 수 없다. ‘출입금지’다. ‘묘향산’의 여성 직원들이 공연 때 즐겨 부르는 북한 노래 “반갑습니다 동포 여러분 형제 여러분”의 ‘동포’와 ‘형제’에 조선족 동포는 포함되지만 한국인은 아니다.
압록강 중류 접경 도시인 중국 지린성 지안시와 북한 자강도 만포시를 잇는 국경통과지점에 있어 철교·인도교와 만포시 전경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압록강궈먼징루’에도 한국인은 오를 수 없다. 지안시 정부가 ‘외국인’의 이곳 출입을 불허한 탓이다. 이곳을 자주 오간다는 지안시 택시기사는 “입장료 60위안을 내고 궈먼징루에 올라 만포를 보고 싶어 할 외국인이 한국인 말고 또 누가 있겠냐”고 되물었다. 옌볜에서 오래도록 여행업을 해온 조선족 동포는 “이게 다 윤석열 대통령 때문”이라며 짜증을 냈다.
지안~만포 철교는 중국이 한국전쟁에 참전을 공식 결정하기 전인 1950년 10월11일 정찰부대가 북쪽에 먼저 들어간 역사를 품고 있다. ‘압록강궈먼징루’가 “항미원조 제1도”(抗美援朝 第一渡)를 관광객을 이끌 구호로 내건 배경이다. ‘만포 인도교’는 해방 뒤 조-중 접경에 북한이 건설한 유일한 교량인데, 김정일·김정은 두 최고지도자 시기에 공사가 이어져 2016년 완공됐다.
자강도의 압록강변 철로로 북한의 화물열차가 지나고 있다. 화물열차 뒤로 ‘식량난’의 상징인 뙈기밭과 조림한 지 오래지 않은 나무들이 어우러져 있다. 조-중 접경 답사 경험이 많은 이들은 “접경에서 화물열차와 자동차 운행이 전보다 눈에 띄게 많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압록강·두만강변의 철조망
2023년 9월 조-중 접경의 가장 눈에 띄는 풍경은 압록강과 두만강 접근을 가로막는 철조망이다. 2020년 1월 말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국경폐쇄 이후 더 촘촘해지고 더 높아졌다. 중국 쪽엔 녹색, 북쪽엔 무채색 철조망이 끝 간 데 없이 이어진다.
중국 지방정부 등은 강변 곳곳에 “조화로운 국경을 구축하자”며 안내판을 세워뒀다. 중국 당국이 보기에, “문명화된 국경주민”이 지켜야 할 사항은 이렇다. “비법밀매밀수, 아편을 파는 위법범죄활동을 금지한다” “조선 측에 물품을 던지지 못하게 한다” “관광객들이 조선 군인들을 향해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한다” “국경지역에서 월경하지 못하게 한다”….
옌볜의 훈춘시 팡촨(방천) 등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유명 접경 관광지엔 “여기는 국경지역입니다. 국경 너머로 도발하거나 촬영을 하지 마시오”라거나 “변경지역에서는 무인항공기 등 공중부양체를 띄우지 못합니다”라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강폭이 좁아지는 접경 농촌마을 들머리엔 “불법월경 인원을 신고하면 2천~2만위안”을 준다는 신고 독려 펼침막이 걸려 있다.
요컨대 중국 쪽 철조망은 탈북과 (대북제재 위반) 밀수·밀매뿐만 아니라, 강 건너 북녘을 촬영해 자극적으로 편집한 동영상으로 북한을 정치적으로 비난하거나 돈벌이 수단으로 삼으려는 한국·중국 유튜버 등의 접근을 막으려는 다목적 차단장치다. 옌지(연길)의 조선족 사업가는 “접경지의 밀수 단속이 아주 엄격하다”고 전했다. ‘더 높고 더 많은 철조망’은 전통적으로 북한의 ‘후방’이던 중국 동북지역이 1992년 8월 한-중 수교 이후 “정치적으로 위험지대가 됐다”며 단속을 요구해온 북한의 위험 인식에 중국 정부의 공감 폭이 넓어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압록강·두만강변 조-중 접경지역에서 한국인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존재’다.
북한에서 가장 낙후한 지역으로 불리는 량강도(양강도) 압록강변엔 농촌마을 전체를 재개발하는 공사가 한창인 곳이 숱하다. 화려한 색상의 신축 문화주택·아파트와 무너질 듯 낡은 무채색 1층 살림집, 숱한 사람들이 달라붙어 벽돌을 쌓아올리는 마을 재개발 현장 따위가 이어지며 압록강·두만강변 접경마을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탑산공원과 취안허의 유료 망원경
압록강·두만강을 포함한 조-중 접경의 모든 것을 관광자원화하려는 주체가 중국의 중앙·지방정부만은 아니다. 접경지의 중국인들도 ‘돈’을 벌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압록강 상류 백두산 남쪽 산록에 깃든 지린성 창바이조선족자치현에는 발해 때 벽돌탑 ‘령광탑’(1988년 중국 국무원 지정 ‘전국문화유물중점보호단위’)이 있는 탑산공원이 우뚝하다. 이곳에선 강 건너 양강도 도청소재지인 혜산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당연하게도, 탑산공원에서 혜산시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고성능 망원경 3대를 세워두고 20위안을 내면 한대를 15분간 쓸 수 있게 장사를 하는 이가 있다. 사람이 많이 몰리면 망원경 사용료는 부르는 게 값이다. 자본주의적 셈법이다.
압록강 상류 량강도(양강도) 도청소재지인 혜산시. 강변엔 낡은 살림집과 창고가, 언덕엔 새로 지은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조·중의 두만강변 최대 교역 창구인 훈춘시 취안허 국경통과지점 옆 중국인 노점상도 망원경 5대를 철조망 옆에 두고 1대에 3위안씩 사용료를 받는다. 강 건너 북녘 나선시 원정리를 자세히 보고 싶으면 ‘돈’을 쓰라는 것이다. 취안허~원정리를 잇는 4차선 도로는 중국 국무원 지정 ‘변경경제합작구’인 훈춘과 조·중 정부 공동개발관리 경제특구인 ‘나선경제무역지대’를 잇는 유일한 국경 통로다.
창바이현의 조선족 택시기사는 “혜산시가 먼저 열렸으면 그쪽 사람들이 우리보다 잘살았을 것”이라며 “일찌감치 개혁개방을 택한 중국 정부에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돈’이라 불리는 ‘기회’를 대하는 이 차이가 압록강·두만강을 경계로 중국의 울창한 산과 풍요로운 접경마을, 북녘의 헐벗은 산과 궁색한 접경마을을 극적으로 대비시키는 풍경을 빚는 동력의 하나일 터다.
조·중의 두만강변 최대 교역 창구인 훈춘시 취안허 국경통과지점 옆 중국인 노점상은 망원경 5대를 철조망 옆에 두고 1대에 3위안씩 사용료를 받는다. 강 건너 북녘 나선시 원정리를 자세히 보고 싶으면 ‘돈’을 쓰라는 것이다. 취안허~원정리를 잇는 4차선 도로는 중국 국무원 지정 ‘변경경제합작구’인 훈춘과 조·중정부 공동개발관리 경제특구인 ‘나선경제무역지대’를 잇는 유일한 국경 통로다.
팡촨, 조·중·러 3국의 복잡한 셈법
서해에 접한 압록강 하류에서 시작한 조-중 국경 1334㎞는 동해에 이르지 못하고 두만강 하류 팡촨과 두만강리에서 멈춘다. 중국이 동해에 이르려면, 북한 두만강리와 러시아 하산을 잇는 ‘조-러 우호교(철교)’ 너머 조-러 접경 두만강을 15~17㎞ 남짓 더 타고 나가야 한다. 중국은 1860년 베이징조약으로 제정러시아에 60만㎢에 이르는 연해주를 빼앗긴 뒤로 지금껏 동해로 가는 길을 열지 못하고 있다.
나선시 두만강리(북)와 훈춘시 팡촨(중), 하산(러) 앞을 흐르는 두만강의 한가운데(북위 42도25분, 동경 130도38분11.9초)에 있다는 조·중·러 국경 교차지점만큼이나 3국의 셈법은 복잡하고 미묘하다. 러시아는 물론 북한도 동해 항구를 중국에 내주지 않고 있다. 북한은 과연 난핑과 함경북도 청진을 잇는 4차선 고속도로(84㎞)를 건설하겠다는 중국 허룽시의 계획에 호응해 동해항에 이르는 길을 중국에 열어줄까? 이 또한 조중압록강대교의 개통만큼이나 조-중 관계와 북한 개방의 가늠자가 될 터다.
1334㎞에 이르는 조-중 접경의 동쪽 끝 중국 지린성 훈춘시 팡촨의 용호루에서 바라본 두만강과 조·중·러 3국 국경 교차지점. 나선시 두만강리(북)와 훈춘시 팡촨(중), 하산(러) 앞을 흐르는 두만강의 한가운데(북위 42도25분, 동경 130도38분11.9초)에 있다는 조·중·러 국경 교차지점만큼이나 3국의 셈법은 복잡하고 미묘하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9월13일) 다음날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만난 한 러시아 사업가는 “이제 우리 친구는 너희(한국)가 아니라 북한”이라며 “김정은이 친구라니 영화보다 더 극적이고 비현실적인 상황 전개”라며 냉소했다. 옌지에서 만난 중국인 국제정치학자는 “김정은은 군사협력은 러시아와, 경제협력은 중국과 하려는 새로운 병진노선을 택한 듯하다”고 평했다. 그는 “북·중·러 3각 협력의 현실화 여부는 근본적으론 중국의 선택에 달린 문제”라며 “중국은 아직은 미국과 전면 대결을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3각 협력에 대한 중국의 셈법이 복잡하다는 얘기다.
이 와중에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0일(현지시각) 78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러-북 군사거래는 대한민국 안보와 평화를 직접 겨냥한 도발”이라고 비난했다. ‘외국’ 러시아보다 ‘동족’ 북한을 더 뒤에 부르는 방식으로 대북 적대감을 강조한 셈이다. 중국과 갈등하고 러시아를 ‘적’ 대하듯 하고 북한은 ‘주적’이라며 지난 30년간 북방정책 성과를 스스로 허무는 윤석열 정부한테 한반도 평화와 남북 공동번영의 방책을 기대하는 건,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짓만큼이나 부질없어 보인다.
단둥 훈춘/글·사진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