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모인 정상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표현이 빠진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다만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각국의 견해차 때문에 합의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던 애초 예상과 달리 공동선언문을 내놓은 것은 성과로 꼽힌다.
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올해 G20 의장국인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G20 정상회의 첫날인 이날 정상들이 공동선언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모디 총리는 이날 뉴델리에 모인 정상들에게 “모든 팀들의 노력을 바탕으로 우리는 G20 정상회의 공동선언에 대한 합의에 도달했다”면서 “나는 이 선언이 채택됐음을 발표한다”고 말했다.
공동선언문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우리는 모든 국가가 영토 보전과 주권, 국제적 인도주의 법률,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는 다자간 시스템을 포함한 국제법의 원칙을 지킬 것을 촉구한다”고 명시했다.
공동선언문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유엔 헌장에 따라 모든 국가는 영토 보전, 주권 또는 정치적 독립에 반하는 영토 획득을 위한 무력 위협이나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면서 “핵무기의 사용 또는 사용 위협 핵무기의 사용 또는 위협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동선언문이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강하게 규탄하며 러시아에 대해 완전하고 무조건적인 철수를 촉구한다”고 명시한 것과 달리, 이번에는 ‘전쟁 규탄’이나 ‘군대 철수’ 등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점을 직접 거론하는 표현이 사라졌다. 이번 공동선언문은 “우리는 전 세계의 전쟁과 분쟁으로 인한 엄청난 인류의 고통과 악영향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명시하는 데 그쳤다.
다만 예상을 깨고 공동선언문이 채택된 것은 성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인도는 이번 정상회의를 앞두고 몇 달간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합의를 공동선언문에 담기 위해 몇달 간 노력했으나 전쟁에 대한 러시아·중국과 서방의 갈등이 더욱 깊어지면서 이번에는 G20 정상회의 사상 최초로 공동선언문이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됐다.
한 유럽연합(EU) 고위 관리는 AP통신에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문구가 서방 지도자들이 원하는 만큼 강력하지 않았지만 중요한 것은 모두가 공동선언문에 서명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한 관리는 파이낸셜타임스에 “G20이라는 플랫폼과 조직을 유지해야 한다”면서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 타협은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AP통신은 인도가 이번 정상회의에서 개발도상국들의 필요를 해결하는 데 더 많은 주의를 기울였으며 우크라이나 전쟁이 정상회의 의제를 장악하지 않도록 노력했다고 전했다.
제이크 설리반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기자들에게 “우리 관점에서 볼 때 공동선언문은 어떤 국가가 무력을 사용하여 영토 획득을 추구하거나 다른 국가의 영토 보전 및 주권 또는 정치적 독립을 침해할 수 없다는 원칙을 아주 잘 옹호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기자들에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언급한 공동선언문에 서명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공동선언문에 대해 “균형 잡힌 관점”이라며 환영했다.
반면 올레그 니콜렌코 우크라이나 외무부 대변인은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비판이 사라진 것과 관련해 페이스북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과 관련해 G20은 자랑스러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서 “우크라이나가 이번 회의에 참석했다면 참석자들이 상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발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는 초대받았으나 올해는 초대받지 못했다.
이번 정상회의에서는 아프리카 연합(AU)이 G20에 합류했다. 모디 총리는 이날 개막사에서 이 같은 사실을 밝혔다. 지역 단체가 G20에 가입한 것은 EU에 이어 AU가 두번째다.
AU에는 아프리카 전체 55개국이 가입해 있으며 인구로는 14억명에 달한다. AU의 G20 가입이 승인됨에 따라 조만간 G20 명칭을 변경하는 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공동선언문은 이외에 “연속적인 위기”를 거론하며 세계 경제를 지지하기 위한 거시경제 정책의 조율을 촉구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개혁 필요성도 언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