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일 100주년을 맞은 일본의 간토 대학살에 대해 “일제 살인마들이 감행한 조선인 대학살 만행은 그 규모와 잔인성, 야수성에 있어서 동서고금에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가장 극악한 반인륜범죄”라고 비난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대지진으로 하여 입은 피해와 손실의 책임을 재일 조선인들에게 넘겨씌워 일본인들의 반정부 감정을 무마하고 저들이 처한 사회정치적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음흉한 목적으로부터 일본 정부와 군부가 주도하고 총동원되여 감행한 범죄였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피에 주린 야수들의 살인만행으로 하여 대진재가 발생한 때로부터 열흘 남짓한 기간에 2만3000여명의 조선 사람들이 학살당하였다”며 “실로 그것은 일본 반동들의 체질적인 민족배타주의와 섬나라 사무라이 고유의 잔인성과 야만성이 혼탁되여 빚어낸 대유혈참극이였다”고 밝혔다.
신문은 “일본은 범죄행위에 대해 성근하게 사죄하고 배상할 대신 사건 발생 당시부터 지금까지 한세기가 되도록 시종일관 그 진상을 가리우고 책임을 회피하려고 간특하게 놀아대고 있다”고 일본 정부를 비판했다.
신문은 “사건 발생 당시부터 오늘까지 일본 정부는 의연 ‘학살에 관여한적도, 사과할 생각도 없다’는 철면피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며 “일본 당국자들은 간또 조선인 대학살 사건에 대해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없다’고 외면해왔으며 지어 ‘간또 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명할 계획이 없다’라는 후안무치한 망발까지 늘어놓았다”고 비난했다.
마쓰노 히로카즈 일본 관방장관이 지난달 30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간토 대학살 관련 질문에 “정부 조사에 한정한다면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답변한 내용을 지적한 것이다.
신문은 “오늘도 일본 당국자들은 간또 조선인 대학살 사건과 관련하여 ‘여러가지 견해가 있다’느니 ‘역사가들이 풀어야 할 문제이다’느니 하면서 그에 대한 국가적 책임을 부정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일본의 외면, 한국의 무관심 속에 100년 맞은 ‘간토 대학살’
재난 상황 속 일탈 아닌 조직적인 국가 범죄
일본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발뺌
한국도 사과 요구 등 적극적 조치 없어
무고한 조선인들이 무참히 희생된 간토(關東)대학살이 1일로 꼭 100년이 된다. 100년 동안 일본 정부는 한번도 자신들의 무자비한 만행을 인정하거나 사과한 적이 없다. 한국 정부조차 진상 규명이나 희생자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 간토대학살의 진실은 사실상 방치돼왔다. 그나마 한·일 양국의 의식있는 시민단체, 역사학계 등 민간에서 힘들게 진상 규명을 이어왔다.
1923년 9월 1일 일본 도쿄를 포함한 간토 일대에 진도 7.9의 강진이 발생했다. 도쿄의 44%가 소실될 정도로 괴멸 상태가 됐다. 거대한 재난의 불똥은 무고한 재일 조선인들에게 번졌다. 지진이 발생한 지 한 시간쯤 뒤부터 ‘조선인이 방화하고 있다’, ‘우물에 독을 풀었다’ 같은 유언비어가 퍼졌다. 그리고 이날 저녁부터 조선인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학살이 시작됐다.
간토대학살은 재난 상황에서 이성을 잃은 시민들의 범죄가 아니라 조직적인 국가 범죄였다. 유언비어를 단속해야 하는 일본 정부는 오히려 조장했다. 계엄령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조선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당시 고토 후미오 내무성 경보국장은 ‘조선인들의 방화로 힘든 상황이어서 계엄령을 내렸으니 각지에서 엄중하게 단속하라’는 전보는 각 지방에 보냈다. 조선인들에 대한 악감정을 끓어오르는 중요한 요인이 됐다. 군인, 경찰, 자경단원들이 현장에서 조선인들을 제압하고 학살에 가담했다. 중국인, 공산주의자들도 희생됐지만 조선인들의 피해가 특히 심했다. <독립신문>은 학살된 조선인 피해자들이 6661명이라고 보도했다. 약 750명으로 추산되는 중국인 피해자들에 비해 월등하게 많다.
일제 만행 중에서도 간토대학살은 철저히 가려진 역사다. 일본이 100년 동안 한결같이 책임을 발뺌하며 진실을 덮어왔기 때문이다. 일본의 변호사협회와 민간단체들이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밝히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지난 30일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에 대한 정부 입장을 알려 달라는 질문에 “정부 조사에 한정한다면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피해갔다.
일본 정부의 부정에도 불구하고 간토지진 관련 기록은 끊임없이 발견돼왔다. 앞서 2012년 도쿄 주재 한국 대사관이 이전하는 과정에서 381명의 간도 대지진 학살 피해자 명단이 발견되는 등 당시 기록들이 계속 발굴되고 있다.
일본 언론에서도 비판이 나온다. 도쿄신문은 31일 “부의 역사를 직시하지 않으면 비판을 부를 것”라고 비판했다. 지난 6월 보수우파 성향의 요미우리 신문은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각지에 결성된 자경단이 일본도와 도끼로 무장하고 조선인을 닥치는 대로 죽였다”고 간토대지진을 묘사했다.
한국 정부 역시 침묵하는 일본에 사과를 요구하지 않고 있다. 2014년과 4월 ‘관동대지진 조선일 학살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안’을 제출하는 등 국회 내 움직임이 있었지만 법안은 계류되다 폐기됐고, 2015년과 2016년 나온 비슷한 법안도 통과되지 못했다.
정부가 간토 대학살의 진상 규명에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31일 정례브리핑에서 관련 입장을 요구받고 “정부는 그간 다양한 계기에 일본에 대해 과거를 직시할 것을 촉구한 바 있으며 관동 대지진 관련, 일본 측에 진상조사 필요성을 제기하고 진상 규명을 위한 자료 제공을 요청한 바 있다”면서 “앞으로도 정부 차원의 필요한 조치를 검토해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필요한 조치’의 구체적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는 간토대지진을 포함해 과거사 문제는 덮고 미래로 가자며 선제적 양보를 하고 일본을 ‘안보와 경제의 협력 파트너’라고 추켜세우고 있다. 그러는 동안 일본은 강제동원 현장인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정치인들은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있다.
양국 정부가 다른 방식으로 침묵하는 동안 한국과 일본의 시민 단체들이 연대해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40여개 시민단체가 지난 7월 ‘간토학살 100주기 추도사업 추진위원회’를 발족했고, 일본에서는 전문가 192명과 시민단체 130여곳이 ‘간토대지진 조선인·중국인 학살 100년 희생자추모식 실행위원회’를 조직해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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