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1년] ⑤ 균형 잃은 외교·안보
지난 3월29일 경북 포항 훈련장에서 한·미 해군·해병대 장병이 ‘2023 쌍룡훈련’ 중 ‘결정적 행동’ 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 등장 이후 남과 북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내달리며 단 한번도 접점을 찾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은 우리의 적”이라며 “핵개발을 추진하는 상황에서는 단돈 1원도 줄 수 없다”고 못박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남조선 괴뢰들은 명백한 적”이라 선언했다.
적대관계로 퇴화다. 2018년 세차례 남북정상회담에 기댄 남북관계의 상대적 안정기와 한반도 평화는 가뭇없이 사라졌다. 윤 대통령은 이 시기를 “가짜 평화”라 폄훼하곤 “힘에 의한 평화”를 선언했다. 김 위원장도 “절대로 핵을 포기할 수 없다”며 ‘국가핵무력정책법’(2022년 9월8일)을 만들었다. ‘핵무장의 영구화’ 선언이다. 윤 대통령은 “문제가 더 심각해지면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는 금지선을 넘어서는 발언으로 맞받기도 했다. “힘에 의한 평화”는 윤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유일한 접점이다.
대화와 교류협력의 불씨는 눈에 띄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1년간 남북 당국 대화는 단 한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4월7일엔 군 통신선을 포함한 남북 직통선이 끊겼다. 돌발 상황에 오해가 겹쳐 군사 충돌로 번지는 걸 차단할 긴급 소통 창구마저 닫힌 것이다.
김 위원장은 쉼 없이 탄도미사일을 쏘아대고, 윤 대통령은 미국 전략자산 전개를 포함한 대규모 한-미 군사연습으로 맞받는다. 지난해 10월14일엔 남과 북이 서로 미사일을 쏘아대며 ‘9·19 군사분야 합의’를 동시에 위반했다. 윤 대통령은 ‘북한 무인기 사태’(2022년 12월26일)로 비판 여론이 들끓자 “북한이 영토를 침범하는 도발을 일으키면 9·19 군사합의의 효력 정지를 검토하라”(1월4일)고 공개 지시했다. ‘9·19 군사합의’는 위태로운 한반도 평화의 마지막 안전판으로 불린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에 ‘담대한 구상’(북이 실질적 비핵화로 전환하면 북 경제·민생 획기적 개선 지원)을 북에 공식 제안했으나 3대 남북 경협사업인 금강산·개성·남북철도는 언급하지 않아 진정성을 의심받았다.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은 나흘 뒤 “10여년 전 이명박 역도가 내들었다 동족 대결의 산물로 버림받은 ‘비핵·개방·3000’의 복사판”이라며 바로 거부했다. 그러자 윤 대통령은 지난 3월28일 “북한 주민의 처참한 인권 실상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북한 인권문제의 정치화’를 주문했다. 정부는 북한 인권보고서를 처음으로 공개 발간했다.
북한이 건군절(인민군 창건일) 75주년인 지난2월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을 개최하고 있다. 연합뉴스
남북 정상의 엇갈림은 남북 관계를 넘어선다. 윤 대통령은 “권위주의 세력들의 진영화”와 북핵 대응을 이유로, 미국의 ‘한·미·일 3각 유사동맹 체제’ 구축 노력에 힘을 싣고 있다. 북쪽은 “국제관계 구도가 ‘신냉전’ 체계로 명백히 전환”(김정은)되고 있다며 “로씨야(러시아) 군대·인민과 한 전호에 서 있을 것”(김여정)이라 선언했다. 남북 정상이 서로 다른 이유로 동북아 질서를 한·미·일 대 북·중·러 대립 구도로 퇴화시키는 첨병으로 나선 것이다.
복수의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남북 화해협력은 남북이 미-중 패권경쟁의 희생양이 되지 않고, 한국이 지속적인 경제 발전과 외교 공간 확장을 하는 데 필수 선결과제”라며 “윤석열 정부는 이제라도 남북 대화와 교류협력의 실마리를 찾으려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