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14∼15일(현지시간) 이뤄진 미국 상원의 트럼프 2기 행정부 각료 인사 청문회에서는 외교·안보 분야 요직 후보자들의 대북 인식이 일부 드러났다.
주목할 대목은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지명자,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지명자, 존 랫클리프 중앙정보국(CIA) 국장 지명자 등 외교안보 분야 3인방 중 누구도 '북한 비핵화'를 취임시 추진할 정책 목표로 거론하지 않은 점이다.
비핵화를 포기한다고 언급한 사람은 없었지만 위협의 '근본 원인 제거'보다는 '위기관리' 쪽에 무게를 둔 발언이 두드러졌다.
우선 헤그세스 지명자는 북한의 '핵보유국(nuclear power) 지위'를 거론했다.
북한 비핵화를 추구한 역대 미국 정부의 당국자들이 쓰기를 자제해온 '핵보유국'이라는 용어를 쓴 것은 한국, 일본 등에서 논란을 불렀다.
이는 대선 선거운동 기간 "(집권 1기 때) 핵무기를 가진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과 잘 지냈다"고 '자랑'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인식을 반영한 것일 수 있었다.
'인정하지 않는다고 없어지지 않는' 북한의 핵무기를 '실체'로서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토대 위에서 대북정책을 펼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었다.
또 루비오 지명자는 "우리가 남북한, 어쩌면 일본, 그리고 궁극적으로 미국을 포함하는 우발적 전쟁의 위험을 낮추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나라들이 각자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추구하도록 자극하지(encourage) 않으면서 위기를 막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자문한 뒤 "이것이 우리가 찾는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이는 결국 한국, 일본 등의 독자 핵무장에 선을 긋는 동시에, 한반도와 동북아에서의 전쟁 위험을 낮추기 위한 위기관리 쪽에 무게를 실은 발언으로 볼 수 있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수개월은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검토 기간을 거쳐 윤곽을 드러낼 것이나 이번 청문회에서 드러난 관계자들의 인식은 '비핵화 지상주의'나 '비핵화 원칙론'과는 거리가 있었고, '현실적 위험관리' 쪽에 가까웠다.
향후 상황에 따라 정상회담을 포함한 북미간 '톱다운(하향식) 식 외교'가 추진될 경우 북한 비핵화가 현실적 목표로 견지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하는 대목이었다.
작년 대선을 앞두고 발표된 미국 민주·공화 양당의 정강·정책에서 북한 비핵화가 빠지면서 거론됐던 우려가 좀 더 현실성을 갖는 형국인 것이다.
인사청문회장의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 지명자
[워싱턴 EPA=연합뉴스.재판매 및 DB금지]
동시에 트럼프 외교안보 라인 후보자들은 대중국 매파의 본색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헤그세스 지명자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공산당이 이끄는 중국의 공세를 억지하기 위해 파트너 및 동맹국과 함께 일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군사적) 자원 배분의 우선순위를 설정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책임 있게 전쟁들을 끝낼 것이며, 더 큰 위협에 맞서도록 자원을 조정할 것"이라고 말해 우크라이나전쟁을 조기에 종결한 뒤 중국 견제에 역량을 집중한다는 구상을 시사했다.
루비오 지명자는 중국에 대해 "가장 강력하고 위험하며, 미국이 지금까지 직면한 적 가운데 거의 대등한 적국(near-peer adversary)"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에 대해 "대만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비용이 너무 높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과 같은 균형에서의 극적인 변화가 없다면 우리는 이번 10년(2020년 1월~2029년 12월)이 끝나기 전에 이 문제에 대응해야 할 것"이라며 긴박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또 랫클리프 지명자는 "중국 공산당은 경제, 기술, 군사적으로 세계를 지배하려 한다"며 "CIA는 중국과 중국 공산당의 위협에 계속 집중해야 하고 그 강도를 높여야 한다"고 했다.
중국이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를 바꿀 의지와 능력을 갖춘 유일한 존재라는 점은 현 바이든 행정부 인사들도 강조해온 부분이지만 트럼프 2기 요인들은 중국의 군사적 역량과 대미 도전 의지를 한층 선명한 언어로 부각했다.
사실 미국 조야에서 중국의 군사·경제적 성장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초당적 공감대가 존재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러나 현 조 바이든 행정부만해도 미중관계의 경쟁과 협력 양 측면을 동시에 강조하는 쪽이었다.
'디리스킹'(de-risking·위험제거·핵심 기술 공급망에서의 중국 배제를 의미)을 표방하며 중국 견제에 박차를 가하는 동시에 중국과 협력 가능한 영역에서는 협력하며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한 대화 채널 유지에 공을 들였던 것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도 출범 이후 좀 더 현실적인 대중국 접근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예상도 나오지만 현재까지는 역대 어느 행정부보다 선명하고 강경한 대중국 정책을 예고하는 양상이다.
그리고 대중국 강경 기조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누차 거론한 대중국 고율 관세와, 대중국 군사적 억지력 강화 등을 통해 경제와 군사 두 전선에 걸쳐 포괄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피터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 지명자가 14일(현지시간)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으로 지칭하며 북한 핵·미사일 및 사이버 역량이 세계적 위협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오는 20일 출범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국방정책을 총괄할 것으로 보이는 인사가 북한 핵보유를 기정사실로 인정하는 듯한 언급을 하면서 차기 미 행정부의 대북 접근 방향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또한 동맹국의 방위비용 분담 및 역할을 늘려야 한다고도 밝혀 한국 등 동맹을 상대로 한 방위비 증액 등의 요구가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헤그세스는 이날 상원 군사위원회의 인준 청문회에 앞서 제출한 서면 답변에서 “북한의 핵보유국으로서 지위, 핵탄두를 운반하는 미사일 사거리 증가에 대한 집중, 사이버 역량 증대는 한반도와 인도·태평양 지역, 나아가 전 세계의 안정에 위협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피터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 지명자(사진)는 북한의 위협 억제를 위해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보유고 확장을 막기 위한 노력에 더해 특히 (미국) 본토를 위한 미사일방어(MD) 시스템 개선”이 중요하다고도 밝혔다.
그가 이날 사용한 ‘핵보유국’ 표현은 그동안 미 당국자들이 공식적으로 쓰지 않아온 것이다. 이는 자칫 북한의 핵보유를 용인하는 데서 나아가 국제 비확산체제를 약화할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핵확산금지조약(NPT)상 핵보유국은 5개국(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이며, 비공인 핵보유국은 이스라엘·인도·파키스탄이다.
국제안보 이슈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 헤그세스의 언급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건 섣부른 측면이 있다. 다만 트럼프 당선인이 북·미 대화 추진 의향을 드러내왔고 미국 내 비핵화 회의론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차기 행정부가 비핵화를 정책 목표로 유지할지 아니면 핵 군축 협상의 틀이 대두할지가 대북정책의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헤그세스는 자신이 인준되면 “국방부에 지시해 건강한 동맹과 파트너 관계를 어떻게 발전시키고 있는지에 대해 재평가하게 할 것”이라며 “동맹과 파트너의 국방비 지출 증대와 부담 공유는 우리의 관계가 일방적이지 않게끔 하는 데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한국은 머니머신(현금인출기)”이라며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을 예고한 상황에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 요구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는 청문회 모두발언에서 미국의 억제력을 다시 확립하겠다고 강조하며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공산당이 이끄는 중국의 공세를 억지하기 위해 파트너 및 동맹국과 함께 일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인도·태평양을 포함한 전 세계에 배치된 미군 전력 태세 재검토에 착수하겠다고 밝혀 주한미군 규모·수준·역할과 관련한 논의가 본격화할 수도 있어 보인다.
폭스뉴스 진행자를 지냈고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전에 참전한 육군 소령 출신의 헤그세스는 지명 후부터 전문성·자질 논란과 성폭력 및 극단주의 추종 등 각종 의혹이 제기됐다. 헤그세스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회원국들을 말해보라는 질문에 머뭇거리다가 “한국, 일본, 오커스(미국·영국·호주 안보동맹) 등이 속해 있다”고 답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한국 외교부는 15일 입장문을 통해 “북한 비핵화는 한·미를 비롯한 국제사회가 일관되게 견지해온 원칙”이라며 “미 백악관도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음을 확인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