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러시아 닮은 꼴’ 언론·시민단체 통제 법안에 반발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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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3-03-10 13:38 조회976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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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러시아 닮은 꼴’ 언론·시민단체 통제 법안에 반발 커져
구소련 국가 조지아가 외국 지원을 받는 언론·시민단체를 통제하는 법안을 추진하면서 국내외 반발에 부딪혔다.
로이터통신·BBC 등에 따르면, 7일(현지시간) 저녁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의 국회의사당 앞에 시위대 수천명이 모여 조지아 국기와 성조기, EU 깃발을 흔들며 ‘외국 대리인’(foreign agent)법 반대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러시아 법에 반대한다”, “당신들은 러시아인이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돌과 화염병을 투척했다. 경찰이 물대포와 최루 가스를 사용해 시위대를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부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조지아 정부는 8일 현재 66명을 구금했다고 밝혔다.
이날 조지아 집권당 ‘조지아의 꿈’은 외국 대리인법 1차 심의를 마쳤다. 이 법에 따르면 해외에서 최소 20% 자금 지원을 받는 언론 매체나 비정부기구(NGO) 등은 ‘외국 영향을 받는 대행기관’으로 등록해야 한다. 등록하지 않은 단체나 개인은 벌금과 최대 5년 이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이 법이 제정될 경우 특히 미국과 유럽의 자금 지원을 받는 독립 언론과 시민단체가 주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조지아의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권위주의로 회귀하는 신호탄이 되리란 관측도 나온다.
특히 이 법안이 러시아가 2012년 제정한 외국 대리인법과 골조가 같다는 점이 우려를 키운다.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재집권하면서 이 법을 제정해, 해외 자금을 받고 정치활동에 참여하는 단체를 외국 대리인으로 등록하고 엄격한 규제를 적용했다. 이후 러시아 당국은 지난해 12월 법을 개정해 외국 대리인의 범위를 ‘당국이 외국을 이롭게 한다고 규정한 단체’로까지 확대했다. 외국 대리인으로 지정되면 모든 국가 지원이 중단된다.
한 시위 참가자는 “우리는 다시는 러시아의 일부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조국을 지키고자 시위에 참여했다”고 로이터에 말했다. 또 다른 참가자 역시 “외국 대리인법은 모두가 알다시피 러시아법이다. 우리는 유럽연합(EU), 친서방이 되고 싶지 구소련의 한 부분이 되길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1990년대 러시아가 조지아 내 분리주의 세력을 지원한 이후 조지아에서는 러시아에 대한 반감이 크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법안 반대 측에선 외국 대리인법이 통과될 경우 조지아가 EU에 가입할 기회가 더 멀어진다고 우려한다. 조지아는 1991년 옛 소련에서 독립한 뒤 EU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을 추진했으며 이는 헌법에도 명시됐다. 지난해 6월 EU 가입 신청서를 제출할 당시 12만명 이상이 거리에 나와 ‘우리는 유럽이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가입 지지 시위를 벌였다. 조지아를 유럽이라 생각하는 조지아인이 80%가 넘는다고 BBC는 전했다.
실제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외국 대리인법 초안이 EU의 가치 기준과 양립하지 않는다”며 “EU에 가입하고자 하는 조지아의 명시적 목표에 반하며 이를 최종 채택하면 우리 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EU 집행위원회는 조지아에 후보국 지위를 부여하며 국내 정치적 양극화 해소, 사법·선거제도 개혁 등 민주주의 진전을 요구한 바 있다.
조지아 주재 미 대사관 또한 성명을 내 “조지아 민주주의에 어두운 날”이라며 “크렘린에 영향을 받은 이러한 법안은 유럽 통합과 민주주의 발전을 향한 조지아 국민들의 갈망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살로메 주라비쉬빌리 조지아 대통령 또한 “여러분이 조지아의 자유를 대표한다. 나는 여러분과 함께한다. 조지아의 미래는 유럽에 있다”며 시위대에 지지 의사를 밝혔다. 그는 이 법이 의회를 통과하더라도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혔으나, 조지아 의회는 대통령의 거부권도 뒤집을 수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주라비쉬빌리 대통령은 무소속으로 대선에 출마해 ‘조지아의 꿈’의 지지를 받았으나 현재는 거리를 두고 있다.
반면 법안 지지 측에선 외국 대리인법이 ‘누가 누구의 지원을 받는지’를 알게 함으로써 정치적 투명성을 보장한다고 주장한다. 이라클리 가리바슈빌리 조지아 총리는 법안을 지지하며 이 법이 “유럽과 국제 표준에 부합한다”고 밝혔다.
역사적으로 조지아와 러시아에서 ‘대리인’이란 표현은 ‘간첩’, ‘배신자’ 등 시민사회 활동에 대해 부정적 함의로 사용돼왔다고 BBC는 전했다. 국가와 사회가 아닌 외세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러시아와 유사한 외국 대리인법을 가진 구소련 국가는 벨라루스, 타지키스탄과 아제르바이잔이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