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윤석열 대통령이 밝힌 대규모 경제 지원 구상에 북한 정권 호응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미국의 경제 전문가들이 전망했습니다. 북한에 대한 대규모 지원보다 개혁개방을 촉구하는 방식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도 나왔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어봤습니다.
북한 경제 전문가인 메릴랜드 대학의 윌리엄 브라운 교수는 17일 VOA에, 윤석열 한국 대통령이 최근 북한에 제의한 ‘담대한 구상’에 대해 기대보다 우려가 크다고 말했습니다.
전임 한국 정부들의 대북 경제 지원 구상과 별 차이가 없는 “잘못된 제안”으로, “대규모 지원이 (오히려) 북한의 수출에 타격을 준다”는 겁니다.
[녹취: 브라운 교수] “The problem though, as an economist looking at it, it's the wrong kind of offer. North Korea has received so much aid in the past. And it's not done any good. It's probably harmed the North Korean economy. Too much aid is a bad thing. And I think North Korea in a way a victim of too much aid. So the problem with giving too much aid is that it hurts the country's exports,”
북한은 과거 옛 소련과 중국, 일본, 유럽, 한국과 미국으로부터 많은 원조를 받았지만 어떤 유익한 결과도 없었고 북한 경제에 해를 주는 등 북한이 오히려 너무 많은 원조로 인해 피해자가 됐다는 겁니다.
브라운 교수는 북한의 안정적인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한국과 타이완, 중국처럼 뛰어난 수출국이 되어야 한다면서, 너무 많은 지원은 이런 수출의 필요에 둔감하게 만드는 “잘못된 접근”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윤석열 한국 대통령은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그 단계에 맞춰 북한의 경제와 민생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담대한 구상을 제안한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윤석열 대통령] “북한에 대한 대규모 식량 공급 프로그램, 발전과 송배전 인프라 지원, 국제 교역을 위한 항만과 공항의 현대화 프로젝트, 그리고, 북한 농업 생산성 제고를 위한 기술 지원 프로그램, 병원과 의료 인프라의 현대화 지원, 국제투자 및 금융 지원 프로그램을 실시하겠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경제 전문가들은 이런 제안이 한국 정부의 도덕적 명분에는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북한의 호응을 기대하긴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미 당 대회 등을 통해 핵무력을 확고하게 틀어쥐고 가겠다고 선언했으며, 북한 관영 매체들은 최근 박진 한국 외교장관의 비슷한 발언에 대해 비난 공세를 퍼부었다는 겁니다.
실제로 박진 장관이 이달 초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해 북한이 실질적 비핵화로 전환할 경우 북한 경제와 주민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담대한 계획’을 준비해 나갈 것이라고 밝히자 북한 매체 ‘통일신보’ 등은 이를 이명박 전 정부의 ‘비핵·개방 3000’에 비유하며 “빛도 보지 못하고 휴짓조각이 돼 역사의 쓰레기통에 박힌 것을 10년이 지나 다시 꺼내 들었다”고 비난한 바 있습니다.
브라운 교수는 집권 후 10여 년 동안 핵무력 증강 외에 딱히 내세울 게 없는 자존심만 강한 김정은이 “담대한 구상을 모욕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녹취: 브라운 교수] “Yeah, it's patronizing. Yeah. Trying to sell patronizing. Kim probably takes it as a snub. Yeah, I'm gonna give you some potato chips. You know, if you do what I want, kind of like the way you treat a puppy you know, if I gave you some potato chips, you'll stop barking, right? It's a little bit like that. It's kind of treating North Korea like you would treat,”
북한 지도자에게는 ‘담대한 구상’이 마치 한국 정부가 잘난 체하며 강아지가 짖는 것을 멈추면 감자칩을 주겠다는 느낌 또는 북한을 아프리카의 빈곤국처럼 취급하는 모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겁니다.
아울러 북한이 설령 이를 수용한다고 해도 과거 수많은 합의를 파기하고 차관도 돌려주지 않은 북한 정권을 어떻게 믿고 인프라 구축에 수많은 투자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한국 통일부는 지난달 발표한 자료에서 북한 정부가 한국에 빌려 간 차관이 지난 5월 기준 원금과 연체 이자를 모두 합해 8억 8천만 달러에 달하지만 아무 설명 없이 상환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었습니다.
브래들리 뱁슨 전 세계은행 고문은 담대한 구상이 경제와 보건 문제 모두 위기에 놓인 북한에 본질적으로 유익한 제안이자 좋은 출발점일 수 있다면서도 “협력과 투자 통로를 어떻게 찾을지 의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담대한 구상은 “비핵화에 대한 북한 부분과 대북 지원을 어떻게 결합시킬지에 대해 잘 정의되지 않은 결의”로 보인다는 겁니다.
[녹취: 뱁슨 전 고문] “I would say not very well-defined commitments on North Korea's part to denuclearization and how you put those two things together. And of course, there is no mention of sanctions relief and how that would be part of all of this and there's no way that North Korea is going to be able to deal with any of these issues unless there's meaningful sanctions relief.”
담대한 구상 속에 제재 완화 언급이 없는 만큼 제재에 관해 의미 있는 내용이 없다면 북한 정부가 호응할 여지도 없을 것이란 겁니다.
뱁슨 전 고문은 또 북한이 이런 한국의 독자적인 약속을 신뢰하기 힘들 것이라며 담대한 구상이 힘을 얻으려면 옛 6자회담 합의처럼 “중국과 러시아, 미국, 일본 등의 공개적이고 집단적인 지지”와 함께 한국 국내의 지지도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 노동당 39호실 산하 고위 직책을 지낸 엘리트 출신으로 워싱턴에서 대북 정책 자문 활동 등을 하는 리정호 씨는 17일 VOA에, “김정은이 담대한 구상에 호응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고 일축했습니다.
김씨 정권은 “핵을 포기하고 병진의 길을 바꾸는 것은 하늘이 무너져도 있을 수 없다”고 할 만큼 확고하며, 과거 남북경협을 통해 인민이 한국에 우호적인 생각을 했던 악몽이 있기 때문에 윤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란 겁니다.
[녹취: 리정호 씨] “남한과 경제협력이 진행되고 지원이 들어오게 되면 (주민들이) 남한 사회를 동경하게 되는데, 이것을 가장 두려워합니다. 사실 김정일 때도 남한 상품을 다 차단하지 않았습니까? 지금도 차단하고. 절대 김정은은 이런 것(담대한 구상)을 발표해도 김정은은 반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리 씨는 과거 한국의 김대중, 노무현 정부와 경협을 하면서 발생한 북한 내 심각한 문제에 대해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내린 지시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회고했습니다.
[녹취: 리정호 씨] “북한 주민들 속에서 한국이 더 잘 산다. 이렇게 한국 쪽으로 민심이 쏠리게 됐었습니다. 이것은 지금의 김씨 정권 유지에 아주 위험한 요소입니다. 그래서 김정일이 직접 지시를 내렸습니다. 남조선에 대한 환상을 가지지 마라. 남조선 상품을 파는 것들은 다 잡아들이라. 남조선 상품 반입을 아예 다 금지시켰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담대한 구상을 갖고 지원해 주겠다는 것을 북한 독재자가 받아들이겠는가?”
실제로 당시 북한 39호실 산하 은하무역국 소속으로 8년간 개성공단과 다른 남북 경협에 직접 관여했던 허강일 씨는 이날 VOA에, 북한 관리들이 돈맛을 그때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허강일 씨] “2000년 초반에도 북한의 시스템이 정말 한심했죠. 그런데 한국과 협력하면서 원조가 들어오고 기술이 들어오고 교류가 되면서 진짜 잘사는, 그때 북한 엘리트들이 한국 덕분에 돈맛을 알았죠. 실제로 그때 한국이 잘 살고 돈이 많다는 것을 북한 사람들이 현실로 느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당연히 알죠. 이렇게 잘 살 수 있는 길이 있는데, 부질없는 핵무기, 미사일을 실험해 제재를 당하는지 속상하고요”
허 씨는 이런 경험을 했거나 해외 파견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윤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이 좋다는 것을 알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에 모두가 동의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허강일 씨] “북한 정권은 죽어도 한국에 절대로 머리를 숙이지 않습니다. 더구나 보수 정권과 절대 타협한 적도 없고. 북한은 자기네 방식으로 한국이 끌려오는 것을 원하지 한국의 방식에 자기들이 끌려가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그래서 이 대담한 구상은 정말 좋지만 북한 상류층 엘리트들은 이것이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겁니다.”
메릴랜드 대학의 브라운 교수는 이런 이유 때문에 윤석열 정부가 자신의 구상을 북한 주민들에게 직접 알리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브라운 교수] “I think it's very important to try to talk to the North Korean people. West and South Korea the US should make huge efforts to get good solid information into North Korea. I think that's what President Yoon is talking about talking to trying to talk to the people in North Korea.”
한국과 미국 등 서방 세계가 유익하고 확실한 정보를 북한에 보내 북한의 경제가 만성적으로 열악한 이유를 정확히 주민들에게 설명하고, 윤 대통령이 직접 경제 지원 구상을 북한 주민들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브라운 교수는 김정은 정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은 미국이나 한국보다 북한 주민들이라며, 향후 북한이 도발하면 군사적 대응이 아닌 대북 정보 유입을 대대적으로 늘리는 게 훨씬 더 유익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경제적으로는 농업 분야가 유엔의 제재 대상이 아닌 만큼 한국이 이에 대한 독자 제재를 풀어 북한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방식을 추진할 경우 북한이 수용할 여지가 좀 더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리정호 씨는 중국처럼 북한에 개혁개방을 지속해서 촉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리정호 씨] “중국이 담대하게 북한에 투자하는 것 봤나요? 절대 없습니다. 중국 정부는 사회주의 시스템을 알기 때문에 너희가 개혁 개방하지 않으면 우리가 얼마를 퍼 주어도 밑 빠진 항아리에 물 붓기란 것을 안단 말입니다. 북한은 개혁 개방하면 망한다고 생각하는데, 왜 망하나? 그렇게 자신감이 없나? 너희 체제가 그렇게 불안한가? 이런 말을 남한 정부가 해야 합니다. 전 세계가 다 개혁 개방하는데, 북한은 사상강국, 정치강국 군사강국이라고 하면서 그런 강국이 뭐가 두려워 개혁 개방 못 하는가?”
전문가들은 또 북한이 한국의 제의를 신뢰하도록 정부가 바뀌더라도 지속가능한 협력을 보장하도록 정치권의 공개적 합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