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점령지 인정 ‘쟁점’
푸틴, 돈바스 편입 요구 중
우크라 빠진 논의에 비판도
트럼프 ‘중재’ 방향 주목

오는 15일(현지시간) 미국 알래스카에서 개최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휴전 또는 종전의 돌파구가 마련될지 주목된다. 미·러 정상의 담판 결과에 따라 3년6개월가량 지속해온 우크라이나 전쟁은 분수령을 맞게 된다. 다만 우크라이나가 배제된 채 이뤄지는 미·러 정상회담에서 근본 해법이 마련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미·러 정상의 대면 회담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1년 전인 2021년이 마지막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이 얼굴을 맞대는 것은 2019년 이후 처음이다. 쟁점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점령한 영토를 어디까지 인정하느냐다. 푸틴 대통령은 2014년 강제병합한 크름반도와 도네츠크·루한스크 등 돈바스 전역의 러시아 영토 편입을 인정해야 휴전에 동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최근 방러한 스티브 위트코프 미 중동특사에게 우크라이나군이 일부 통제하고 있는 도네츠크에서 철수할 것을 휴전의 선결 조건으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우크라이나와 유럽은 휴전에 앞서 영토 교환 문제를 논의하는 것 자체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도 우크라이나 영토 보존 원칙은 우크라이나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면서 이를 변경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우크라이나와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주요국은 9일 영국을 방문 중인 J D 밴스 미 부통령과 회의를 열고 휴전에 관한 자체 청사진을 제시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이 제안은 러시아의 도네츠크 양보 요구를 거부하는 내용으로 우크라이나가 일부 지역에서 철수할 경우 러시아도 다른 지역에서 철수해야 한다는 ‘상호성 원칙’을 바탕으로 한다. 또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영토 일부를 양보할 경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 등 확실한 안전보장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엑스에서 “우크라이나의 미래는 3년 넘게 자유와 안보를 위해 싸워온 우크라이나인들을 배제한 채 결정될 수 없다”며 “유럽인들도 자신들의 안보와 직결된 사안인 만큼 반드시 해결책 일부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회담의 성패는 트럼프 대통령이 양측의 입장차를 어떻게 ‘중재’하고, 특히 러시아를 얼마나 강하게 압박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평화 협상에 소극적인 푸틴 대통령에게 휴전에 동의하지 않으면 러시아와 거래하는 나라들에 2차 관세를 부과하고, 러시아 은행 등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겠다고 경고해왔다. 실제로 지난 6일 러시아산 석유 구매를 이유로 3주 후부터 인도에 25%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영토 문제에 대해 “일부는 돌려받고, 일부는 교환할 것”이라고 언급한 것에서 미국이 돈바스를 러시아에 넘겨주되 러시아가 장악한 헤르손, 자포리자의 통제권을 우크라이나에 반환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미·러 정상의 휴전 담판은 전쟁 당사자인 우크라이나가 빠진 채 열리게 된다는 점에서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다만 백악관은 3자 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도 여전히 열어뒀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회담 장소인 알래스카가 지닌 상징성도 주목받고 있다. 알래스카는 1867년 미국에 매각하기 전까지 제정 러시아의 일부였다. 푸틴 대통령이 알래스카를 강대국 간 영토 거래의 역사를 환기하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유엔 헌장의 주권 존중 및 영토 보존 원칙 침해 등 국제법 위반 행위로 보는 국제사회 시각을 반박하기 위한 무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샘 그린 킹스칼리지런던대 교수는 워싱턴포스트에 “정상회담을 알래스카에서 여는 것은 국경이 바뀌고 영토가 사고팔릴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듯한 끔찍한 상징성을 지닌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