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 표지에 실린 이재명 대통령. 타임지 제공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 표지에 실린 이재명 대통령. 타임지 제공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 당시 대미 투자 문제 등을 둘러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나친 요구에 “거기에 동의했다간 내가 탄핵될 판이었다”며 합리적 대안을 제시해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뒤늦게 공개됐다. 

 이 대통령은 18일 공개된 미 시사주간지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지난달 열린 한-미 정상회담의 아슬아슬한 막후 협상 상황을 일부 공개했다. 당시 정상회담이 열리기 직전까지 합의에 서명을 압박하는 미국 정부와 우리 정부 사이에 샅바싸움이 이어진 것은 두루 알려진 일이다. 타임지는 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협상 성공으로 지지율을 반등시켰지만, 막후 협상 당시 미국 쪽의 요구는 매우 엄격했고 이 대통령은 “만약 내가 거기에 동의했다면 내가 탄핵됐을 것”이라며 미국 협상팀에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타임지는 “세계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유대를 형성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고 보도했다. 빈곤 가정에서 소년공으로 자라난 이 대통령과 재벌 기업인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이 가진 삶의 궤적과 가치관은 전혀 다르다. 이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우리는 많은 일을 성취하고 싶고, 사람들이 기억할 만한 업적을 남기고 싶어 하는 강한 열망이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다른 사람들같은 주류적 삶을 살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통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트럼프 대통령은 사업가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왔고, 비록 겉으로는 예측 불가능해 보일 수도 있지만 실은 매우 성과지향적이고 현실적인 인물”이라며 “자신이 패자로 보이는 결론을 원하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비합리적인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점 때문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잘 소통할 수 있었다”고도 했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선 북한이 1994년에 중유-경수로 지원을 조건으로 핵 동결에 합의했던 사례를 들며 “단계적 협상(동결-감축-비핵화)을 통해 제재 완화가 필요하다. 트럼프 대통령도 공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북한더러 그저 중단하라고 하면 정말 그들이 프로그램을 멈추겠느냐”며 “현재와 같은 압박 정책을 계속하면 북한은 더 많은 폭탄을 만들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북핵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흔히 선택지를 ‘북한의 핵을 용인할 것인가, 완전한 비핵화를 이룰 것인가’의 양자택일로 생각한다. 하지만 저는 그 중간 지점이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이어 “단기, 중기, 장기 목표를 구분해야 한다”며 “단기 목표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을 중단시키는 것이 필요하고, 이러한 조치들에 대해 일정 부분 보상을 해줄 수 있고, 그 이후에는 군축을 추진하고 마지막에는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해야 할 것”이라고 ‘3단계 비핵화론’을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미·중 사이 줄타기 전략에 대해서도 그간 밝혀온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 대통령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전통적 공식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가 한미동맹에 기반함은 분명하다”면서도 “중국과의 지리적 근접성, 역사적 관계, 경제 및 인적 교류로 인해 중국과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할 수는 없다. 따라서 적정 수준으로 관계를 관리할 필요가 있고, 서구 세계도 이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실용외교’ 노선을 밝혔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