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소식


소식

홈 > 소식 > 새소식
새소식

침몰 우키시마호 승선명부 없다더니…총리 방한 전날 제공한 日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4-09-06 11:38 조회250회

첨부파일

본문

정부,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단 일부 첫 입수


  •  김치관 기자
  •  
  •  승인 2024.09.05 21:56
 

기시다 총리 방한 압두고 졸속 공개...75건중 19건만

1945년 8월 24일, 광복을 맞이하여 고국으로 돌아가려는 조선인들을 태우고 일본에서 부산으로 향하던 우키시마호(浮島丸)가 폭발로 침몰해 많은 조선인이 수장된 이른바 ‘우키시마호 사건’의 승선자 명단 일부를 우리 정부가 5일 일본 정부로부터 처음으로 입수했다.

우키시마호 희생자들을 위한 상징물. [자료사진 - 통일뉴스]
우키시마호 희생자들을 위한 상징물. [자료사진 - 통일뉴스]

외교부는 5일 보도자료를 통해 “외교부는 그간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부를 입수하기 위해 일본 정부와 교섭을 거친 결과 9월 5일 일측으로부터 승선자 명부 일부를 제공 받았다”며 “일측은 내부조사를 마친 자료 19건을 우리측에 우선 제공하였으며, 여타 자료에 대해서도 내부조사가 완료되는 대로 제공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일본 정부는 75건의 자료를 확보하고 있으며, 일본 후생노동성은 이날 오후 주일 한국대사관을 통해 19건의 자료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 명부를 피해자구제 및 우키시마호 사건의 진상파악 등에 활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및국외강제동원희생자등지원위원회’ 심사과정에서 근거자료 부재 등으로 위로금 지급 신청을 기각·각하 당한 희생자 유족에 대한 위로금 지급 재심의 등에 동 명부를 활용할 계획이라는 것.

나아가 명부에는 희생자들의 개인정보를 다수 포함하고 있어 국내법령에 따라 정보를 열람 또는 제공받을 권리가 있는 자에게 제공할 예정이라며, 정부는 우키시마호 사건의 피해자구제 및 진상파악 등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명부 입수, 공개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방한을 하루 앞두고 이루어졌으며, 정부는 ‘한일 관계의 긍정적인 흐름’ 선상에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싶어한 것으로 보인다.

2016년 8월 ‘일제 강제징용 조선인노동자 상 제막식 및 합동추모제’ 대표단이 우키시마호 침몰 현장을 찾아 헌화하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2016년 8월 ‘일제 강제징용 조선인노동자 상 제막식 및 합동추모제’ 대표단이 우키시마호 침몰 현장을 찾아 헌화하고 있다. [자료사진 - 통일뉴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오랜 기간 승선자 명부의 존재를 부정해 오다 최근 일본 언론인의 정보공개청구로 공개됐고, 일본 정부도 기존 입장을 번복한 상황에서 기시다 총리의 방한을 앞두고 선심쓰 듯 일부가 제공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이날 일본 측의 명부 제공 사실도 당일 오후에서야 기자들에게 전달됐고, 명부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한일 당국간 협의 과정 등도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

한편,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김영훈)는 지난달 28일 성명을 통해 “사건이 발생한 지 79년이 지났지만 침몰 원인은 물론 피해 규모도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다”며 “한국 정부가 우키시마호 사건의 진실규명을 위하여 승선자 명부를 신속하게 확보하여 이를 공개하고피해자 조사와 함께 일본 정부에게 유해 봉환 등 피해 구제를 요구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힌 바 있다.

무츠만을 빠져나온 배는 부산항을 향하는 직항로를 택하지 아니하고 일본 본토를 따라 남하하다가 마이즈루만으로 들어갔다. [자료 출처 - 우키시마호폭침진상규명회]
무츠만을 빠져나온 배는 부산항을 향하는 직항로를 택하지 아니하고 일본 본토를 따라 남하하다가 마이즈루만으로 들어갔다. [자료 출처 - 우키시마호폭침진상규명회]

사건 발생 직후 일본 정부는 한국인 노동자 3,725명 가운데 524명, 일본인 승무원 255명 가운데 25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지만 생존자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명부에 이름을 올리지 않고 승선한 사람도 많고 희생자 수도 수천 명에 달할 수 있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일측 제공 자료 목록(19건)]

[자료 제공 - 외교부]

80년전 한국인 태우고 침몰한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부 일부 확보(종합)


송고시간2024-09-05 21:03

일본, 명부 등 자료 19건 우선 제공…정부, 피해자 구제·진상 파악 활용

日 군함 우키시마마루
日 군함 우키시마마루

<저작권자 ⓒ 2006 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상현 기자 = 일본 정부가 80년 가까이 은폐해 온 우키시마마루(浮島丸·이하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의 피해자 명부 일부를 우리 정부에 제공했다.

외교부는 5일 "그간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부를 입수하기 위해 일본 정부와 교섭을 거친 결과 일측으로부터 승선자 명부 일부를 제공받았다"고 밝혔다.

일본은 확보한 75건의 자료 중에서 내부 조사를 마친 19건을 우선 주일한국대사관을 통해 제공했다.

정부가 이날 제공받은 자료의 목록명은 ▲ 승선 명부 1945년 8월 24일 승선 ▲ 승선자 명부의 건 보고 ▲ 승선 반도 노무자 명부 1945년 8월 ▲ 우키시마마루 승선자 명부 ▲ 우키시마마루 승선 조선인 명부 1945년 8월 22일 ▲ 우키시마마루 조난자 명부 1945년 8월 24일 ▲ 사망자 명부 등이다.

이들 자료에 전체적으로 몇 명의 사망자·생존자 등 개인 정보가 담겼는지는 추가 확인이 필요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일부 자료에는 성명은 물론 생년월일과 본적 등 비교적 구체적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으로부터 강제징용 노동자 명부를 입수한 것은 지난 2007년 '한반도 출신 구(옛) 군인·군속의 공탁서 정본의 사본'을 받은 이래 17년 만이다.

일본은 다른 자료들도 내부 조사가 완료되는 대로 제공할 예정이라고 외교부는 전했다.

우키시마호는 1945년 광복 직후 귀국하려는 재일 한국인들을 태우고 부산으로 향한 일본의 해군 수송선이다.

1945년 8월 22일 아오모리현 오미나토항을 출발해 이틀 뒤인 24일 교토 마이즈루항에 기항하려다 선체 밑부분에서 폭발이 일어나 침몰했다.

탑승자들은 대부분 강제노역 피해 노동자들로 알려졌다.

일본은 우키시마호가 해저 기뢰를 건드려 폭침했고 승선자 3천700여명 중 524명이 숨졌다고 발표했으나, 유족들은 일본이 고의로 배를 폭파했고 승선자 7천500∼8천명 중 3천명 이상이 숨졌다고 주장했다.

일본은 사고 후 수년간 선체를 인양하거나 유해를 수습하지 않아 의혹을 키웠고 지금까지도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지 않았다.

외교부는 일본의 자료를 모두 넘겨받으면 사건의 진상 및 사망자·생존자 규모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는 이번에 확보한 자료를 피해자 구제에 활용할 예정이다.

특히 근거 자료 부재로 과거 정부 차원의 위로금 지급 신청을 기각·각하 당한 희생자 유족에 대한 위로금 지급 재심의에 명부를 활용할 계획이다.

과거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 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를 통한 위로금 지급 당시 우키시마호 승선 피해자는 자료 부재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외교부는 "명부는 희생자 분들의 개인 정보를 다수 포함하고 있다"면서 "국내 법령에 따라 정보를 열람 또는 제공받을 권리가 있는 자에게 제공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한국 정부와 유족들의 거듭된 공개 요구에도 불구하고 승선자 명부가 우키시마호 침몰로 상실됐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일본은 최근 일본 언론인의 정보공개 청구에 응해 명부 3개를 공개한 데 이어 미야자키 마사히사 후생노동성 부대신(차관)이 지난 5월 국회에 출석해 "승선자 등의 '명부'라고 이름 붙은 자료가 70개 정도 있다"고 밝히면서 더 이상 한국의 명부 제공 요구를 외면할 수 없게 됐다.

일본이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한국 방문을 하루 앞두고 자료를 제공한 것은 최근 한일관계 개선 흐름의 성과가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일본 측이 오랜 세월 자료를 사실상 은폐해 오다가 일부 명부가 공개되면서 뒤늦게 안팎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5일 외교부에 제공한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부 관련 자료
일본 후생노동성이 5일 외교부에 제공한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부 관련 자료

[외교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hapyry@yna.co.kr


침몰 우키시마호 승선명부 없다더니…총리 방한 전날 제공한 日


송고시간2024-09-05 19:55

79년 만에 명부 일부 한국에 전달…한일 관계 개선 영향 준 듯

한국인 수천명 희생 추정…유족 "일본이 고의로 배 폭파" 주장

(도쿄=연합뉴스) 박성진 특파원 = 한국 정부가 5일 일본 정부에서 받은 우키시마마루(浮島丸·이하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 승선자 명부는 일본 정부가 79년 동안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해 온 것이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명부 존재 자체를 사실상 은폐했으며 명부 존재 사실이 밝혀진 뒤에도 한국 정부의 제공 요청에 소극적 태도를 보여 왔다.

하지만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방한 전날 명부 일부를 제공했다. 이는 한일 관계 개선 흐름을 이어가고자 하는 뜻을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영화 '우키시마호'
영화 '우키시마호'

[메이플러스 제공]

◇ 일본 언론인의 힘으로 명부 세상에 공개…日정부 "'명부' 자료 70개 정도 돼"

한국인 수천 명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진 1945년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의 명부는 올해 한 일본 언론인의 정보 공개로 사건 발생 79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우키시마호 유족들의 국가배상청구 소송에서 승선자 명부를 '승선 시 작성해 배에 비치한 것'으로 정의하면서 침몰로 상실됐다고 주장했고 명부와 유사한 문서의 존재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한 프리랜서 언론인의 정보 공개 요청에 일본 후생노동성은 올해 5월 일본 해군과 일본통운 등 기업이 작성한 문서 3종류를 공개했다.

이 가운데 하나인 아오모리현의 오미나토(大湊) 해군시설부 '승선명부' 표지에는 "(1945년) 8월 24일 승선, 총원 2천429명"이라고 적혀 있다.

이 명부의 직종, 성명, 생년월일, 본적지가 기록된 부분은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가려진 채로 공개됐다.

일본통운 오미나토 지점이 남긴 '우키시마마루 승선 조선인 명부'에는 144명, (1945년) 8월 22일로 기록돼 있다.

미야자키 마사히사 후생노동성 부대신(차관)은 문서 공개 직후 중의원(하원) 외무위원회에 출석해 "승선자 등의 '명부'라고 이름 붙은 자료가 70개 정도 있다"고 밝혔다.

미야자키 부대신은 "모두 구 해군이 보유하고 있던 자료로 후생노동성의 전신 조직부터 계속해 보유하고 있었다"며 "법령에 근거한 승선자 명부가 아니라 승선을 예정하고 있었던 사람이 기재돼 있다"고 설명했다.

우키시마호는 1945년 광복 직후 귀국하려는 재일 한국인들을 태우고 부산으로 향한 일본의 해군 수송선이다.

1945년 8월 22일 아오모리현 오미나토항을 출발해 이틀 뒤인 24일 교토 마이즈루항에 기항하려다 선체 밑부분에서 폭발이 일어나 침몰했다.

일본은 우키시마호가 해저 기뢰를 건드려 폭침했고 승선자 3천700여명 중 524명이 숨졌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한국인 유족 등은 일본이 고의로 배를 폭파했고 승선자 7천500∼8천명 중 수천 명이 숨졌다고 주장하며 일본 정부에 진실규명을 요구했다.

일본은 사고 후 수년간 선체를 인양하거나 유해를 회수하지 않아 의혹을 키웠다.

생존자와 유족들은 1992년 일본 정부의 안전관리 의무 위반을 문제 삼아 일본 법원에 소송을 냈지만 2004년 패소가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