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24일, 광복을 맞이하여 고국으로 돌아가려는 조선인들을 태우고 일본에서 부산으로 향하던 우키시마호(浮島丸)가 폭발로 침몰해 많은 조선인이 수장된 이른바 ‘우키시마호 사건’의 승선자 명단 일부를 우리 정부가 5일 일본 정부로부터 처음으로 입수했다.
외교부는 5일 보도자료를 통해 “외교부는 그간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부를 입수하기 위해 일본 정부와 교섭을 거친 결과 9월 5일 일측으로부터 승선자 명부 일부를 제공 받았다”며 “일측은 내부조사를 마친 자료 19건을 우리측에 우선 제공하였으며, 여타 자료에 대해서도 내부조사가 완료되는 대로 제공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일본 정부는 75건의 자료를 확보하고 있으며, 일본 후생노동성은 이날 오후 주일 한국대사관을 통해 19건의 자료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 명부를 피해자구제 및 우키시마호 사건의 진상파악 등에 활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및국외강제동원희생자등지원위원회’ 심사과정에서 근거자료 부재 등으로 위로금 지급 신청을 기각·각하 당한 희생자 유족에 대한 위로금 지급 재심의 등에 동 명부를 활용할 계획이라는 것.
나아가 명부에는 희생자들의 개인정보를 다수 포함하고 있어 국내법령에 따라 정보를 열람 또는 제공받을 권리가 있는 자에게 제공할 예정이라며, 정부는 우키시마호 사건의 피해자구제 및 진상파악 등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명부 입수, 공개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방한을 하루 앞두고 이루어졌으며, 정부는 ‘한일 관계의 긍정적인 흐름’ 선상에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싶어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오랜 기간 승선자 명부의 존재를 부정해 오다 최근 일본 언론인의 정보공개청구로 공개됐고, 일본 정부도 기존 입장을 번복한 상황에서 기시다 총리의 방한을 앞두고 선심쓰 듯 일부가 제공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이날 일본 측의 명부 제공 사실도 당일 오후에서야 기자들에게 전달됐고, 명부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한일 당국간 협의 과정 등도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
한편,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김영훈)는 지난달 28일 성명을 통해 “사건이 발생한 지 79년이 지났지만 침몰 원인은 물론 피해 규모도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다”며 “한국 정부가 우키시마호 사건의 진실규명을 위하여 승선자 명부를 신속하게 확보하여 이를 공개하고피해자 조사와 함께 일본 정부에게 유해 봉환 등 피해 구제를 요구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힌 바 있다.
사건 발생 직후 일본 정부는 한국인 노동자 3,725명 가운데 524명, 일본인 승무원 255명 가운데 25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지만 생존자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명부에 이름을 올리지 않고 승선한 사람도 많고 희생자 수도 수천 명에 달할 수 있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