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대 역사학부 연구진이 이룩한 고구려역사 연구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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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1-08-09 09:00 조회1,802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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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대 역사학부 연구진이 이룩한 고구려역사 연구성과
- 이계환 기자
- 승인 2021.08.07 10:55
최근 김일성종합대학 역사학부의 학술연구집단이 고구려역사를 해명하는데서 큰 의의를 가지는 연구성과를 거두었다고 북한 [노동신문]이 7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이들 연구진은 1991년부터 평양시 대성구역 림흥동 일대에 대한 발굴조사사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했다.
당시 역사학부 채희국 강좌장과 인류진화발전사연구실 전제헌 연구사를 비롯한 유능한 연구진들이 이곳에서 여러 해 동안 발굴사업을 진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처음으로 4세기경의 고구려시기의 관청, 별궁 급으로 보이는 건물터와 유물들을 찾아냈다.
1997년에는 남일룡 교수를 비롯한 연구진들이 두 번째 발굴을 진행했는데, 그때 대성구역 청호동 일대에서 고방산성에 대한 조사발굴을 진행하고 이 일대가 4세기 고구려의 임시수도가 자리 잡고 있던 곳이라는 사실을 확증하게 되었다.
또한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리광희 교수를 비롯한 연구진들이 진행한 발굴과정에 수많은 유물들과 함께 2개의 우물, 벽돌로 축조한 지하구조물 등의 유적들을 찾아냈다.
신문은 “여러 차례에 걸쳐 진행된 발굴과정에 평양지역에서 처음으로 1세기-3세기경의 고구려주민지구를 찾아냈다”면서 “새로 발견된 각이한 유적, 유물들을 통하여 평양지역이 1세기경부터 고구려의 영토였으며 평양성으로 수도가 옮겨진 이후인 6세기-7세기에도 림흥동 일대에서 주민들이 계속 살면서 발전된 문화를 창조하여왔다는 사실을 확증하였다”고 평했다.
또한, 신문은 “고구려문화의 독자성과 우수성도 밝혀낼 수 있었다”고 알렸다.
이 연구성과는 김일성종합대학 역사학부 고고학강좌를 비롯하여 학부의 학술연구집단 성원들이 년대를 이어가며 수십 년 간에 걸친 고심어린 탐구와 노력으로 이룩한 소중한 열매라는 것.
특히, 신문은 “발굴과정에는 위험을 동반할 때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즉, 고구려시기의 우물을 발굴할 때에는 우물이 너무 좁아 작업조건이 어려웠고 무너질 위험성도 있었지만, 연구진들은 그 속에 주저 없이 뛰어들어 유물을 하나하나 들어내고 실측을 하였으며 세부들에 대한 촬영도 하고 시료채취도 했으며, 찾아낸 유물들의 파괴와 부식을 막는 사업도 동시에 진행했다는 것.
아울러, 신문은 “발굴에 못지않게 어려운 것은 유적유물들에 대한 고증사업”이라며 “이들은 민족유산을 주체적 입장에서 계승 발전시킬 데 대한 당정책을 심장에 새기고 고구려유적유물들에 대한 연구사업을 꾸준히 진행해나갔다”고 알렸다.
그 결과 이 유적유물들에 대한 발굴고증사업은 2017년에 마무리할 수도 있었지만, 학술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연구사업을 더 진전시켜 국제적으로 이름 있는 한 학술연구기관에 시료분석을 의뢰하여 탄소동위원소측정법에 의한 연대측정을 진행함으로써 과학적이며 객관적인 결과도 얻어낼 수 있었다는 것.
신문은 “고구려의 역사, 평양의 역사를 과학적으로 더 깊이 있게 해명하고 고구려문화의 우수성과 독자성 그리고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발전에서 고구려가 논 역할을 더욱 뚜렷이 보여주는 귀중한 연구성과를 안아올 수 있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