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금지조약’ 발효와 남북, 그리고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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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1-01-28 09:09 조회1,965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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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금지조약’ 발효와 남북, 그리고 미국
- 이장희
- 승인 2021.01.27 15:22
[칼럼] 이장희 한국외대명예교수
핵무기 없는 세상 외치는 미국의 이중성을 폭로하라
핵무기금지조약(Treaty on the Prohibition of Nuclear Weapons: TPNW)은 2017년 7월 7일 유엔총회에서 193개 회원국 중 122개국 찬성으로 채택돼 2020년 10월 24일 50번째 국가의 비준으로 조약 공식발효 조건이 충족되었다. 그 후 90일 이후인 2021년 1월 22일 공식 발효되었다.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5개 핵무기보유국은 빠졌고, 물론 남북한은 비준국·서명국 양 명단에 모두 없다. 동 조약은 기존의 핵무기비확산조약(NPT)을 대체하기 위하여 전면적으로 핵무기를 조약 당사국에게 금지한다. 조약 당사국은 핵무기나 핵폭발장치를 개발.실험.생산.제조.획득.보유.비축.이전.사용 또는 위협하거나 영토에 핵무기나 학폭발장치의 주둔, 설치 혹은 배치를 허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또한 핵무기 관련 활동에 참여하도록 지원하거나 촉진하거나 유도하는 것 역시 금지하고 있다.
핵무기보유국의 강한 반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핵무기금지조약 UN총회 채택을 유도하여 비준, 발효에 이르기까지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AN)’이라는 국제시민단체가 국제사회의 여론과 공감대를 만들어 설득하고 움직이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이 핵무기금지조약을 추진한 스위스의 NGO인 국제시민단체 ICAN은 2007년 호주에서 처음 활동을 시작하여 “핵무기없는 세상”을 지향하며 2017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1990년대 이후 2021년 현 시점, 얄타체제가 무너지고 탈냉전이 된지 30년이 넘었지만 국제사회는 국가이기주의에서 출발한 제국주의적 지역패귄 싸움이 더욱 치열하다. 더구나 국제핵체체인 핵무기비확산체제(NPT)는 핵보유국에게 권리만을, 비핵국가에게는 의무만을 규정한 불평등한 체제이다. 1996년 국제사법재판소(ICJ)조차도 핵보유국을 의식하여 핵무기 사용의 국제법적 정당성 판단에 대해서 매우 애매한 입장을 취하였다.
이러한 불평등하고 정당성 없는 국제핵규범질서 하에서 핵무기금지조약은 포괄적핵금지협약(CTBT)과 더불어 암흑 속에서 ‘핵없는 세상’을 향한 희망의 불빛이라고 본다. 핵무기금지조약은 불평등하고 애매모호한 국제핵규범질서에 국제법적으로 확실하고 정당한 근거를 제공한다.
동시에 핵없는 세상을 말로만 외치는 미국을 비롯한 핵보유국들의 도덕적 이중성의 치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더구나 미국 국무부는 2020년 10월 27일 핵무기금지조약에 대해서 “어떤 나라의 안보도, 그리고 국제평화와 안정도 항상시키지 못할 것이다”, “...핵무기보유국을 포함하지 않는 조약을 통한 핵무기금지는 실효성이 없다...”라고 혹평하였다. 이는 미국의 비핵화 진정성을 명백히 의심케 한다.
뿐만 아니라 국제군축조약의 대표격인 대인지뢰금지협약,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 그리고 집속탄금지조약 등 국제군축조약에 미국을 비롯한 주요 강대국은 참가나 비준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더구나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1987년 합의한 미-러 중거리핵감축조약(INF) 탈퇴를 2018년 10월 20일 선언하였다.
미국과 핵보유국들은 말로만 핵무기 없는 세상과 국제평화만 외치고 실제로는 힘의 외교에 바탕을 둔 독점적, 기득권적 핵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이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정글의 법칙이 강하게 지배하는 속에서도 그동안에 국제시민사회단체가 주도적으로 모든 국가이기주의를 초월하여 국제여론을 움직여 UN에서 핵무기금지조약을 2017년 10월 24일 채택시켜 50개국 이상의 비준을 얻어 조약발효 요건을 갖추게 한 것이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국제사회 집단지성의 의미있는 큰 승리이다. 또 이것은 핵무기 사용으로 인한 인류의 재앙을 막으려는 국제인도주의정신에 기여하였다. 나아가 핵없는 세상을 향한 국제군축조약의 국제법적 토대 마련에 큰 일보를 딛게 한 것이다.
식민지 잔재와 냉전으로 빚어진 한국전쟁 그리고 이어진 70년이상 분단체제하에 신음하는 한반도의 우리 민족은 일본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국민이 핵무기로부터 피폭당하고 현재도 핵전쟁 위험성이 가장 높은 상태에 놓여있다.
그런데 한국은 한미동맹에 발이 묶여 미국의 강한 반대로 핵무기금지조약과 대인지뢰금지조약에 가입하지 않고 있는 것은 모순이고 너무 안타깝다. 남북한이 긴밀하게 협력하여 어떻게 국제사회의 이 정글의 법칙을 넘어서 ‘핵무기 없는 한반도’로 나아갈 것인가?
남북한은 이미 4.27판문점선언과 91.9평양공동선언에서 완전한 핵폐기를 통해 핵없는 한반도를 약속한 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가장 큰 장애물인가? 가장 큰 장애물은 70년 이상의 고착된 분단체제하에 기생해온 국내외적 기득권이다. 국내적 장애물은 6.25를 통한 북한에 대한 피해의식만을 고수해온 기득권층의 대북 냉전의식이다. 분단체제를 극복하는데 가장 큰 국제적 장애물은 동북아에서 고착된 한미일을 한 축으로 하는 3각 신냉전구조이고, 이 신냉전구조 속에서 군산복합체에 포위되어 자국이익만 고집하는 미국 정부가 그 중심에 있다.
우리는 미국을 설득시켜 국제적 보편적 규범과 남북한의 특수성을 조화시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로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정답은 양자주의가 아닌 다자주의이다. 남북한을 포함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6자의 다자동북아평화회의 설립이다.
미국은 국가 간의 관계를 유독 아시아에서 양자주의 틀속에 묶어서 외교,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미국 국익 우선주의를 독식한다. 한국이 미국의 대중국 봉쇄전략에 편승하여 사드 배치를 묵인하고 쿼드(QUARD)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이러한 미국의 패권적 인도·태평양전략 체제를 깨뜨리고, 유럽안보협력회의(OSCE) 같은 중국과 러시아가 포함되는 6자 동북아다자평화회의에서 한반도 평화통일문제를 의논해야 한다.
우리는 핵문제 해결책으로 2005년 4차 6자회담에서 9.19공동선언을 채택한 귀한 경험을 하였다. 이 속에서 핵문제, 무역문제 등 모든 국제적 현안이 미국 중심주의가 아닌 국제적 보편규범을 준수하지 않을 수 없다.
누가 주도할 것인가? 정부와 시민단체가 같이 나서서 역할분담을 해야 한다. 우선 미국이 명백하게 국제규범에 어긋난 일을 하고, 쿼드(QUARD), 인도·태평양 공동체 같은 신냉전 진영논리에 참가를 요청하더라도 우리 정부는 용기있게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한 예로 비무장지대 평화적 이용에 꼭 필요한 대인지뢰금지조약(1999.2. 발효)도 군산복합체를 고수하는 미국의 의사에 구애받지 않고 남북한이 동시가입을 의논하고 가입할 수 있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남북이 이구동성으로 미국이 핵무기금지조약에 가입한다면 남북한도 핵무기금지조약에 동시가입하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이행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제안해 보라. 미국은 ‘NPT체제라는 불평등한 핵질서를 고수할 것인가? 핵무기금지조약에 가입할 것인가?’하는 양자택일의 진퇴양난에 빠질 것이다.
핵무기금지조약의 발효는 핵군축조약에도 기여할 뿐만 아니라, 핵없는 세상을 외치면서도 NPT체제 같은 현행 불평등한 핵질서를 고수하는 미국의 도덕적 이중성의 치부를 국제사회에 극명하게 폭로하는 무서운 경고가 될 것이다. 미국은 불평등한 핵질서인 NPT체제만 고수하고, 핵없는 세상을 국제법적으로 합의한 다자조약인 핵무기금지조약을 언제까지 외면할 것인가? 핵무기금지조약 채택에 참가도, 서명도, 비준도 하지 않으면서 핵없는 세상을 외치는 미국은 과연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만 계속 요구할 수 있는 국제법적 도덕적 정당이 있는가?
2018년 4.27판문점선언과 9.19평양공동선언의 정신인 자주와 평화의 정신에 따라 국제보편적 핵질서 가입을 외면하는 미국의 핵정책의 모순에 대해서 당당히 “NO!”라고 할 수 있는 한국 정부의 입장이 이제 나와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도 가열차게 진척될 수 있다고 본다.
미국이 핵무기금지조약과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에 가입한다면 남북 양 정부도 동시에 양대 조약에 가입할 수 있다고 조건부로 용기 있게 미국 정부에 제안해 볼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