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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문정인 칼럼] ‘신냉전’을 만드는 세 개의 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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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8-10 11:41 조회3,91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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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인 칼럼] ‘신냉전’을 만드는 세 개의 악마

등록 :2020-08-09 15:01수정 :2020-08-10 11:19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23일(현지시각) 캘리포니아 요바린다의 닉슨 도서관에서 연설을 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요바린다/로이터 연합뉴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23일(현지시각) 캘리포니아 요바린다의 닉슨 도서관에서 연설을 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요바린다/로이터 연합뉴스

 

 

20세기 이후 미국 대외정책의 강점은 국익과 가치의 절묘한 조화에 있었다. 그러나 이 세 개의 악마가 그 조화를 깨고 신냉전이란 판도라 상자를 열고 있다. 아무리 대선 정국이라 해도 박제된 반공주의를 역사의 관에서 끄집어내고, 위험천만한 외교 행보에 집단적 침묵과 편승으로 일관하는 동시에 이해하기 어려운 오만을 보이는 것. 이건 우리가 아는 미국이 아니다.

 

 

 

 

 

 

문정인│연세대 명예특임교수

 

외교정책에 대한 백악관의 수사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가 있다면 바로 적대국의 ‘악마화’일 것이다. 80년대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규정했고, 조지 부시 43대 대통령도 2003년 연두교서에서 북한, 이라크, 이란을 “악의 축”이라 불렀다. 그리고 올 7월23일,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닉슨 도서관 연설에서 중국을 “프랑켄슈타인”으로 규정하고 사실상 중국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신냉전의 선포인 셈이다.

 

‘악마'와 ‘괴물'이 외교 용어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미국의 지도자들이 이를 반복적으로 사용한 이유는 무엇인가. 레슬리 겔브 전 미국외교협회 회장은 2009년 펴낸 <권력의 규칙들>(Power Rules)이라는 책에서 외부의 악마는 미국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진단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외교정책은 로켓 과학이 아니라 상식이다. 그러나 지나친 원칙과 이념, 고약한 정치, 그리고 권력의 오만이 그러한 상식을 압도하고 있다. 이들 세 개의 악마(demon)가 상식적인 외교정책 선택을 약탈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과도한 원칙과 이념이라는 첫 번째 악마는 자유와 민주주의, 반공과 반테러주의에 대한 지나친 가치지향성의 산물이다. 이들 가치를 신성시하는 워싱턴의 정신적 토양이 선악과 흑백의 이분법적 외교정책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현실 세계를 외면한 과도한 이념은 정책 실패로 귀결된다. 두 번째 악마는 정부의 외교정책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에 침묵하거나 편승하는 고약한 워싱턴 정치 풍토다. ‘숭고한 미국적 가치를 지향하는’ 외교정책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겁쟁이 온건파로 치부되고 오로지 강경파들의 목소리만 거세지는 동안 행정부와 의회는 모두 그에 편승한다. 마지막 악마는 원하는 것은 뭐든지 얻을 수 있다는 오만한 자세다. 외부의 도전에 자신감을 가지는 것은 필요하지만, 극복할 능력이나 자산이 부족한 상황에서 허세를 부리는 것은 자만(hubris)에 지나지 않는다고 겔브는 일침을 놓는다.

 

폼페이오의 연설에는 그가 경고한 세 개의 악마가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낸다. 첫째는 반공주의의 부활이다. 이전의 포용정책이 중국을 변화시키는 데 실패했으며 오히려 중국 공산당의 힘은 더욱 커져 중국 인민뿐 아니라 미국을 포함한 자유세계를 위협하는 괴물이 되었다는 결론이 그렇다. 시진핑을 ‘파산한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의 진짜 신봉자’, 중국을 ‘세계 패권 장악에 나선 새로운 전체주의 독재국가’라 규정하며 전면적 투쟁을 강조하는 대목은 국익 우선을 강조해온 트럼프 행정부의 거래주의와 어울리지 않는다. 반공주의의 부활이라는 이 극단적인 가치 명제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을까.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 때리기’에 대해 미국 내 반응은 편승과 침묵으로 점철돼 있다.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장 정도가 공개적인 비판에 나섰을 따름이다. 트럼프 반대를 외치는 민주당 진영조차 침묵의 동의나 사소한 비판에 그친다. 자유, 민주주의, 인권을 외교정책의 기본으로 삼아 온 민주당 인사들로서는 폼페이오의 가치지향적 연설을 섣불리 비판할 수 없다. 그동안 동맹정책에 무관심했던 트럼프 행정부가 동맹과 우방을 결집해 반중 통일전선을 펴겠다는 구상에 냉소적 태도를 보이는 정도다. 최근의 반중 드라이브가 1950년대 매카시즘을 연상케 하는 이유다.

 

폼페이오 장관은 연설에서 “중국이라는 새로운 독재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고” “우리가 중국을 바꾸지 않으면 중국이 우리를 바꿀 것”이라고 역설한다. 모골이 송연해진다. 중국 공산당을 인민과 분리하고 중국 내 반체제 인사, 홍콩과 대만의 민주화 세력, 나아가 ‘민주주의 국가들의 새로운 동맹'을 결성해 중국 공산당 정권의 교체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선언으로 이어진다. 겔브가 말하는 세 번째 악마, 오만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중국의 정치체제 변혁은 중국 인민들만이 결정할 수 있는 몫이다. 스스로 세계경찰 역할을 포기하겠다고 말해온 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주장할 근거와 명분은 있는가. 그리고 능력은?

 

20세기 이후 미국 대외정책의 강점은 국익과 가치의 절묘한 조화에 있었다. 그러나 이 세 개의 악마가 그 조화를 깨고 신냉전이란 판도라 상자를 열고 있다. 아무리 대선 정국이라 해도 박제된 반공주의를 역사의 관에서 끄집어내고, 위험천만한 외교 행보에 집단적 침묵과 편승으로 일관하는 동시에 이해하기 어려운 오만을 보이는 것. 이건 우리가 아는 미국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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