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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협력 진전 위해 워킹그룹에서 ‘약자의 협박’ 외교술 펼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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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3-04 08:58 조회4,46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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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협력 진전 위해 워킹그룹에서 ‘약자의 협박’ 외교술 펼쳐야”

등록 :2020-03-03 16:39수정 :2020-03-04 02:09

 

[고명섭 논설위원의 직격 인터뷰]
정세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남북협력, 개별관광으로 시작해 점차 폭 넓혀가야
철도 현대화는 2032 공동올림픽 개최와 표리관계
공동올림픽 유치 위해 올해부터 남북 함께 움직여야

워킹그룹을 미국에 ‘북핵 해법’ 교육시키는 장으로
결핵 만연한 북한, 코로나19도 취약…보건협력 필요
방위비 인상 압박, 트럼프 시대 미국의 타락 보여줘

 

북-미 협상이 장기 교착에 빠진 가운데 코로나19 확산으로 남북관계마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당장 앞이 안 보인다고 해서 남북관계 개선을 포기할 수는 없다. 이미 연초에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에 남북협력 사업을 잇달아 제안한 바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을 만나 남북협력 추진 방안과 북-미 협상 교착 해법에 대해 들어보았다.

 

정 수석부의장은 코로나19 확산이 수습되는 대로 우리 정부가 제안한 ‘개별관광’에서 시작해 남북 철도·도로 현대화 사업으로 협력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미 관계에서는 미국에 끌려다니지 말고 국민 여론을 믿고 ‘약자의 협박’이라는 외교술을 과감하게 써야 한다고 역설했다. 미국의 허락만 기다리는 외교로는 남북관계도 북-미 관계도 풀어가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인터뷰는 지난달 28일 민주평통자문회의 수석부의장실에서 했으며, 2일 전화로 추가 인터뷰를 했다.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2월28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집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2월28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집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문재인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남북이 감염병에 함께 대응하자고 제안했는데요. 북한은 2일 동해상으로 초대형 방사포를 쐈습니다.

 

“북한이 지난해 연말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미국의 압박에 맞서 새로운 전략무기를 선보이겠다고 예고한 바 있는데, 이번 방사포 발사는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보수세력은 북한의 방사포 발사를 문 대통령의 보건협력 제안에 대한 거부로 해석하지만, 이런 해석은 무리가 있습니다. 이번 발사는 북한의 무기개발 시간표에 따른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남북관계와는 큰 관련이 없습니다. 북한은 12월부터 3월까지 동계훈련 기간입니다. 그 훈련의 일환으로 방사포 발사를 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일단 북한의 동계훈련이 끝나면 남북관계에 변화의 계기가 생길 것으로 봅니다. 북한도 사실 코로나19 때문에 경제의 숨통이 막혀 있는 상황이라 우리가 대북 제안을 가지고 얘기를 시작하면 대화 가능성이 있습니다.”

 

―북한도 코로나19 차단에 진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19에 북한이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짐작하게 해주는 것이 결핵입니다. 북한에 결핵이 굉장히 많이 퍼져 있거든요. 결핵이란 게 약을 먹다 끊으면 내성이 커지는데, 약이 없어 중간에 치료가 중단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 사람을 치료하려면 음압병실을 써야 합니다. 북한이 2차 감염 때문에 음압병동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인데도 유엔 대북제재 때문에 지원을 못하고 있습니다. 철강재가 군사적으로 전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못 가져가게 해요. 결핵 퇴치 사업 하는 유진벨재단이 2017년 이후 2년 동안 음압병동을 지으려고 했는데 미국이 막아서 못 지었습니다. 결핵이 만연한다는 것은 북한 사람들 면역력이 떨어져 있다는 뜻이죠. 그래서 코로나19에도 쉽게 감염될 수 있습니다. 보건협력이 필요합니다.”

 

―한·미가 최근 상반기 한-미 연합훈련을 무기한 연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애초 한-미 연합훈련을 3월9일부터 19일까지 하기로 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사실상 취소된 것 같습니다. 훈련 취소가 남북관계 개선에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문 대통령이 연초에 밝힌 개별관광, 남북 철도·도로 연결·현대화, 2032 하계올림픽 서울-평양 공동 개최를 위한 남북협력, 이런 것들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합니다. 코로나19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대통령이 다시 한번 북쪽에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북한이 지난달 대북 개별관광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북한의 이런 반응에 대해 ‘지금 우리보고 나오라는 휘파람 소리’라고 진단하신 바 있는데요.

 

“그게 뜬금없이 나온 거예요. 우리가 개별관광에 대해 얘기를 꺼낸 뒤에 정부 차원에서 아무런 조처도 안 하고 있었거든요. 물론 북한의 발표 내용이 ‘개별관광 문제를 왜 구태여 미국에 가서 협의하느냐, 우리 민족끼리 해야 할 일 아니냐’ 하는 비판이었지만, 그 말 속에는 협의할 용의가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봐야 합니다. 코로나19가 수습되고 우리 쪽에서 개별관광을 타진할 경우 응답이 올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다만 정부 차원에서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개별관광은 어차피 관광회사가 나서야 해요. 남쪽의 현대아산과 북쪽 관광회사가 접촉하는 방식으로 하는 게 좋을 것입니다.”

 

―개별관광을 낙관적으로만 보기 어려운 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대선을 앞두고 점점 강경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압박과 제재를 통해 북한이 자진해서 협상에 나오게 하겠다는 아주 어리석은 정책을 고집하고 있는데, 미국 정부 입장이 바뀌지 않으면 개별관광을 시작할 때 어려움이 따를 수도 있습니다. 동해안 육로를 통해서 금강산으로 들어가려면 비무장지대 철문을 유엔사가 열어줘야 합니다. 만약 유엔사가 문을 안 열어주면 도리없이 중국으로 우회해야 합니다. 그럴 경우 금강산을 꼭 고집할 필요는 없습니다. 묘향산도 좋습니다. 단둥으로 가서 북한으로 들어가는 거죠. 또 연길공항을 통해 백두산으로 가는 길도 있습니다. 만약 개별관광이 성사된다면 남북관계의 다른 사안에서도 북한이 우리의 대북 제안에 협조할 용의가 있다고 봐도 좋습니다. 그렇게 해서 물꼬를 터놓으면 철도·도로 연결 사업도 추진할 수 있습니다.”

 

―문 대통령이 평화경제 이야기를 반복해서 하고 있는데, 남한 경제 역동성을 살리자면 남북경협 말고는 딱히 길이 없는 상황 아닙니까?

 

“현실적으로 그 길밖에 없습니다. 남북 간에 군사적 긴장이 완화돼야만 우리 경제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남북 간 경제협력이 구조화되면, 경제협력이 깨질 경우에 생기는 손실 때문에 북한이 군사적으로 위협을 못합니다. 경제협력과 긴장완화가 함께 가는 것이죠. 문 대통령의 평화경제론은 북한에 대한 메시지이기도 하지만 미국에 대한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미국이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수 있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겁니다.”

 

―말씀하신 대로 미국의 대북정책은 여전히 제재와 압박에 있는 것 같습니다.

 

“무력시위와 경제제재로 북한을 굴복시키겠다는 것이 미국의 북핵 정책의 핵심입니다. 과거 미국과 싸웠던 베트남도 그렇지만, 북한은 제국주의에 희생당한 식민지 피지배 경험이 있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미국은 이 나라들의 민족주의적 저항성에 대해 개념이 없어요. 사실 베트남도 그걸로 버틴 거예요. 미국은 북한이 지디피(GDP) 총액이 한국의 국방비 액수도 안 되는 나라라고 얕보면서, 위협하고 압박하면 굴복할 거라는 착각 속에서 제재를 풀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명심해야 할 것은 큰 나라에 대한 북한의 저항성입니다. 압박과 제재를 가하면 결국은 손들고 나올 거라고 믿는데, 그렇게 안 될 겁니다.”

 

 

―그런 점을 우리 정부가 미국 관리들에게 잘 알려줄 필요가 있겠네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미국을 교육시켜야 합니다. ‘베트남에서 맛본 실패가 북한에서 되풀이될 수 있다’, ‘작은 나라라고 찍어누를 수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하고 이해시켜야 합니다. ‘미국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를 더 키워 나가려면 북한과 수교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논리로 그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미-소 냉전 때 미국이 중국에 접근해 소련을 견제했듯이, 지금 미-중 헤게모니 경쟁에서는 미국이 북한을 끌어들여야 우위에 올라설 수 있습니다. 평양에 미국 대사관이 있는 경우와 서울에만 있는 경우, 중국에 대한 압박의 강도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런 이야기로 미국을 설득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미 워킹그룹이 남북관계에 족쇄 구실을 하고 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워킹그룹이 2018년 11월 한-미 간에 합의됐다는 말을 듣고는 또 당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하자면 원칙의 굴레를 쓴 겁니다. 남북관계와 북핵 문제를 아주 조화롭게 풀기 위해서 한-미 간에 긴밀하게 조율하자는 것이 워킹그룹 아니에요? 그런데 김영삼 정부 이래로 그런 한-미 공조가 결국 우리 정부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쨌든 워킹그룹이 만들어졌고 조만간 사라질 상황도 아니니까 이걸 역이용해야죠. 북한을 다루려면 미국이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과외공부’를 시키는 그런 장으로 워킹그룹을 활용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워킹그룹을 어떤 식으로 운용해야 할까요?

 

“외교에서 가장 큰 힘은 외교관의 세 치 혀가 아니라 국민 여론입니다. 외교 관리들이 워킹그룹에서 이야기할 때 ‘남북협력 사업을 미국이 허락 안 해주면 한국에 반미 여론이 일어나게 생겼다’ 하는 식으로 협박 아닌 협박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해요. ‘미국이 못하게 해서 우리 국민들이 분개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압박을 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외교에서는 ‘약자의 공갈’이 더 무섭습니다. 약자의 공갈이란 게 제 말이 아니고 1960년대 미-일 안보조약 문제가 심각했을 때 일본에서 만들어낸 말입니다. 그때 모든 언론이 미국이 너무 심하게 한다고 비판하니까 일본 외무성이 이 여론을 믿고 밀어붙여 일본 뜻대로 한 사례가 있어요. 우리도 그런 걸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문 대통령이 연초에 남북관계에서 운신의 폭을 넓혀 나가겠다고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밝혔습니다. 대통령의 외교안보통일 참모라면 미국을 향해 ‘남북관계 개선은 국민 절대다수의 뜻이다, 단순히 대통령의 생각이 아니다’ 하면서 밀어붙일 줄 알아야 합니다.”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2월28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집무실에서 &lt;한겨레&gt;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2월28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집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정부가 2032년 서울-평양 공동올림픽을 추진하겠다고 국무회의에서 의결했습니다. 민주평통자문회의도 지난달 ‘서울-평양 공동올림픽 유치 지원 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는데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올림픽 개최 경쟁을 붙이느라고 10년 전부터 논의할 수 있도록 만들어놨다고 합니다. 그러니 올해와 내년 사이에 남북이 공감대를 형성해서 같이 움직여야 합니다. 공동올림픽 개최를 남북 정상 간에 합의했으면 남북이 함께 움직여야지 남쪽만 해서는 안 되잖아요. 서울-평양 공동올림픽이 성사된다면, 평창올림픽이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왔듯이 동북아에 평화를 가져올 겁니다. 공동올림픽이 동북아 평화를 위한 것이라는 걸 명분으로 앞세우고 다른 나라들, 특히 미국의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공동올림픽이 열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동북아에서 미국의 헤게모니가 커진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알려야 합니다. 이와 함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공동올림픽이 성사되려면 서울-평양 간 철도 현대화 사업을 앞서 시작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올해 안에 남북 철도·도로 현대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겠네요.

 

“그렇죠. 서울-평양 공동올림픽은 철도·도로 현대화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습니다. 4·27 판문점 회담에서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에 합의를 했는데, 핵심은 현대화입니다. 고속철도를 놓자는 거예요. 북한 철도는 시속 40㎞, 빨라야 50㎞입니다. 선수 수송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어떻게 공동 개최가 가능하겠어요. 서울~평양이 직선거리로 200㎞가 안 됩니다. 고속철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습니다. 북한은 현대화를 우리더러 해달라는 건데, 그 경우 우리 자재·장비가 군사분계선을 거쳐 올라가려면 미국이 협조를 해줘야 합니다. ‘철도·도로 건설 자재·장비는 우리가 가져가서 우리가 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군사적으로 전용될 일이 없다, 그리고 이것이 당장 북한에 경제적 수익을 올려주는 것도 아니다, 결국 올림픽에 참가할 때 미국 선수들도 타고 가야 할 거니까 협조하라’ 그런 논리로 미국을 설득해야 합니다. ‘올림픽이 열리면 동북아에서 미국의 국가이익도 엄청나게 커지게 된다’는 논리도 동원해야 합니다. 워킹그룹은 이렇게 미국을 설득하고 교육하는 데 써야 합니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문제로 미국의 압박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미국이 너무하는 겁니다. 완전히 스스로를 용병화시키고 있잖습니까. 지금보다 다섯 배, 여섯 배 늘리겠다면 빨리 전시작전통제권이라도 돌려주고, 스스로 용병으로 내려가든지 해야죠. 우리에 대해 지휘권은 지휘권대로 행사하면서 돈은 돈대로 내놓으라는 건 말이 안 됩니다. 돈 안 내면 군무원 무급휴직 시키겠다고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건 미국답지 못한 겁니다. 트럼프 시대에 와서 미국이 많이 타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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