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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구 "日 바로잡을 한 번의 기회 더 있다, 바로 북한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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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7-19 14:18 조회3,03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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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구 "日 바로잡을 한 번의 기회 더 있다, 바로 북한 카드"

CBS 김현정의 뉴스쇼 입력 2019.07.19 10:12 수정 2019.07.19 10:15
한일 갈등, 늦게 온 제2의 을사늑약 청구서
1965년 청구권 협정, 배상금 성격 모호해
박정희 취임 당시 日 "아들 출세한 기분"
北, 일본에 식민지 지배 불법성 말해야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한홍구(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지금 스튜디오에는 한홍구 교수가 나와 계십니다. 성공회대 교양학부의 한홍구 교수. 대표적인 근대사학자 중에 한 분이시죠. 벌써 알아보고 반갑다는 문자들을 보내주고 계시는데. 제가 이분을 초대한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 일본의 이 경제 도발의 빌미가 된 게, 명분이 된 게 강제 징용 배상 판결 아니겠습니까? 이 사람들은 말해요. ‘1965년에 한일 청구권 협정에 한국이 사인하지 않았느냐. 그러면서 너희는 모든 청구권을 그때 포기한 거 아니냐. 그런데 왜 이제 와서 돈 달라고 하는 거냐?’ 이게 하나고요.

그리고 일본 우익들이 툭하면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지지난 주에 구로다 논설위원, 산케이신문 구로다 논설위원도 여러분한테 인터뷰에서 그런 말했잖아요. ‘한국, 솔직히 우리 덕분에 잘살게 된 거 아니냐. 일제 강점기 거치면서 일본이 철도 깔아줬고 그것도 65년에 준 돈으로 도로도 깔았고 포스코도 만들고 다 이런 거 아니냐?’라는 말을 뉴스쇼에서 했습니다. 이런 일본 우익의 논리를 들으면 우리는 뭐라고 답을 해야 똑똑한 걸까요. 그 똑똑한 답변을 주시기 위해서 한홍구 교수가 나와 계십니다.

◆ 한홍구> 안녕하십니까.

◇ 김현정> 저는 제가 앞에 쭉 설명을 하면서도 벌써 막 분노가... 요즘 왜 이렇게 연일 우리가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일본의 경제 도발 어떻게 보십니까?

◆ 한홍구> 1965년도에 한일 국교 정상화를 맺을 때 ‘제2의 을사조약이다. 을사늑약을 다시 맺는다.’ 이런 얘기를 했는데 그 밀렸던 게 지금 청구서가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 김현정> 제2의 을사늑약 청구서가 2019년에 온 거다.

◆ 한홍구> 1965년도에 잘못되고 아주 엉터리로 봉합해 놨었던 것이 그 포탄이 지금 터진 것이죠.

◇ 김현정> 그렇게 읽고 계시는군요.

◆ 한홍구> 우리가 청구권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저는 이것도 대단히 문제가 있는 표현인데요. 사실은 우리가 일본한테서 받아야 했었던 건 전쟁 배상금이죠. 강제 지배에 대한 배상금인데 우리가 그 성격을 모호하게 해 놨고 또 특히 정말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그냥 무효다. 무효라는 건 지금 효력이 끝났다.’ 일본 측은 그렇게 해석을 하고 우리는 ‘처음부터 그건 원천 무효였다, 불법이었다’ 하는데 일본은 ‘아니다, 식민지 지배는 합법이었다.’ 이렇게 큰 차이가 있습니다.

◇ 김현정> 합법이었기 때문에 죄가 아니다.

◆ 한홍구> 그래서 전쟁에 대한 배상금,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배상금이 아니고 독립 축하금이라는 거예요.

◇ 김현정> 한국 독립한 거 축하해서 옆 나라에서 잘살게 주는 돈...

◆ 한홍구> 그 유명한 사건이 박정희 대통령이 처음 군사정권에서 민정 이양하고 대통령 취임할 때 일본의 오노라는 사람이 오면서 뭐라고 얘기했냐면 ‘기분이 어떠냐?’라고 물어봤더니 ‘우리 아들이 출세해서 거기에 좋은 일이 있어서 가는 아버지 심경이다’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일본 기자도 깜짝 놀라서 ‘아니, 어떻게 그렇게 그러십니까?’ 했더니 이 양반이 뭐라고 얘기했냐면 ‘아니야, 우리 사석에서는 그렇게 진짜로 불러.’ 그렇게 얘기해서 아주 신문에 크게 났었던.

◇ 김현정> 설마요? 누구하고 사석에서요? 박정희 대통령하고요?

◆ 한홍구> 박정희 전 대통령하고 당시 군사 정권의 핵심 요인들하고.

◇ 김현정> 사석에서 아버지와 아들 관계라고?

◆ 한홍구> ‘아버지와 아들 같은 그런 사이야.’

◇ 김현정> 일본이 아버지고 우리가 아들이라고요?

◆ 한홍구> 설마 우리가 아버지였겠습니까? 그런 기사를 저도 보고서 눈을 의심했었는데. 그러니까 일본 기자가 좀 당황해서 ‘말씀이 지나치셨습니다’ 하는 식으로 얘기를 했더니.

◇ 김현정> 일본 기자가요?

◆ 한홍구> 일본 기자가. ‘우리 진짜로 그런 사이야.’ 이렇게 해서 사람을 경악시켰던 적이 있는데요. 일본에서는 이게 돈을 주고 받더라도 돈의 성격을 분명히 해야 할 거 아닙니까?

◇ 김현정> 그렇죠, 그렇죠.

◆ 한홍구> 그러니까 액수를 따지더라도 식민지 지배에 대한 걸로 3억 달러라는 게 그 당시 박정희 정부도 요구하기로는 12억 달러 좀 넘게 요구했었는데 반의 반 정도밖에 못 받는 것이고요. 거기에다가 차관까지 2억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 김현정> 3억 달러 받고 2억 차관 받고.

◆ 한홍구> 그러니까 그건 뭐냐 하면 저하고 앵커님하고 투닥투닥하다가 제가 때려서 다쳤어요. 다쳤는데 치료비가 많이 나왔을 거 아닙니까? 그러면 내가 치료비를 일부 대주고 치료비 모자르다고 했더니 내가 그건 빌려줄게.

◇ 김현정> 그런 셈이네요, 정말.

◆ 한홍구> 거의 비유하자면 그런 식이 돼버린 거죠.

◇ 김현정> 게다가 때린 거에 대해서 잘못했기 때문에 주는 돈이라고 한 것도 아니잖아요.

◆ 한홍구> 사랑의 매.

◇ 김현정> 사랑의 매?

◆ 한홍구> 잘되라고.

◇ 김현정> 아... 너네 잘되라고.

◆ 한홍구> 선의학적이라는 참 희한한 표현을 썼었죠. 그러니까 1965년도에 그렇게 맺으면 안 되는 거였죠. 사실은 피해자들도, 지금 소송을 제기하신 분들도 ‘우리가 돈 몇 푼 더 받으려고 그러냐?’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에 얘기하는 게요. 일본은 저 매춘부들이 돈 몇 푼 받아내기 위해서. 그리고 일본이 경제적으로 잘살게 되니까 지난 수십 년 동안 찍소리 안 하고 가만히 있다가 일본이 잘살게 되니까 이제 와서 돈 내놓으라고 저런다 하는데요. 그 할머니들이 정말 부들부들 떨면서 분노하시는 게 ‘우리가 돈 몇 푼 때문에 그러느냐. 너희가 잘못했다’라는 사과 한마디를 하라는 거죠.

◇ 김현정> 그렇죠, 그렇죠. 그러니까 지금 한홍구 교수님 말씀 들으면 1965년에 일단 그 협정을 맺은 게 잘못했다.

◆ 한홍구> 협정은 맺었어야죠. 협정은 어떻게든 한국과 일본이 불행했던 과거를 털고 앞으로 나아가야 됐는데.

◇ 김현정> 협정 자체는 맺어야 하는데.

◆ 한홍구> 그럼요.

◇ 김현정> 내용이 문제였다. 내용을 명확하게 하지 않고 돈부터 받았다?

◆ 한홍구> 내용과 형식에서 다 문제가 있었죠.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30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이춘식씨(94) 등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한 전원합의체 판결을 내리기 위해 착석하고 있다.
◇ 김현정> 그러면 우리가 일단 그 부분에서 잘못한 게 있어요, 그 당시 정부가. 그런데 일본이 지금 주장하는 데 대해서는 그럼 뭐라고 해야 돼요? 일본이 ‘아니 어쨌든 그때 돈 받았잖아. 청구권 부분에 대해서는 그때 다 끝났는데 다 끝났는데. 더 이상 돈 안 주겠다. 민간이든 정부든 다 끝난 거라고 해 놓고 어쨌든 너희 대통령이 사인해 놓고, 너희 정부에서 사인해 놓고 왜 이제 와서 우리한테 기업들이 또 따로 배상하라고 하는 거야?’라고 하는데요.

◆ 한홍구> 그건 그 당시에도 이게 모호하게 가다 보니까 모호하게 갔는데 거기서 아주 확실하게 못 박은 게 ‘청구권을 이걸로 완전히 최종적으로 끝났다.’ 이렇게 못을 박았는데 그것을 해석을 하는 게 또 다릅니다. 국가 간의 청구권은 소멸된 것으로 보는데 한국 정부도 이의를 달지 않아요. 그러나 개인 청구권이라는 게 있죠. 그래서 한국 정부나 또는 국제적으로나 어떻게 보고 있냐면 한국 개인이 일본한테 청구할 때 한국 정부는 나서지 않겠다. 그러나 이건 개인이 일본 정부를 상대하는 데 어떤 외교적인 보호 조치를 한국이 행사하지는 않지만 이건 개인이 해야 할 문제다. 해결해야 할 문제다라고. 일본도 그 점은 인정해 왔습니다.

1990년대까지는 개인 청구권은 살아 있는 것으로 다 인정을 해 오다가 2000년대에 들어와서. 그러니까 2000년대에 들어왔다는 건 뭐냐면 전 세계적으로는 냉전이 끝나고 각 나라에서 군사 독재 정권이 퇴진을 하고 개인이 권리가 신장이 되고 권리 의식도 높아지면서 과거에 수십 년 동안 억눌려 있다가 일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 시작을 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일본이 개인 청구권을 인정했었던 중요한 이유는 뭐냐면 일본 사람들도 미국에 대해서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개인 청구권을 한국을 향해 부인해 버리면 이것도 사라져버리니까.

◇ 김현정> 자기들의 개인 청구권도 사라져버리니까.

◆ 한홍구> 국가 대 개인의 청구권을 일본이 샌프란시스코 평화 조약을 통해서 전부 다 사라져버렸지만 일본 개인이 각 나라에 대해서 갖고 있었던 거. 그러니까 청구권 문제에 대해서도 우리가 들으면 황당하지만 일본 사람들 밑바닥에는 뭐가 깔려 있냐면요. 청구권이라는 건 두 나라가 같이 섞여 있다가 분리가 될 때 서로 그 재산을 정리하는 문제 아니겠습니까? 일본 사람들 입장에서는 한국에다가 일본이 두고 간 재산이 훨씬 많다. 그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 김현정> 이렇게 이야기가...

◆ 한홍구> 그게 바로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겁니다.

◇ 김현정> ‘우리 덕에 잘살게 되지 않았어. 36년 동안 우리가 깔아준 철도와 우리가 신문물 넣어준 것 때문에 지금 잘사는 거 아니야?’ 이게 깔려 있군요.

◆ 한홍구> 그렇게 얘기한다면 우리는 또 이렇게 얘기할 수가 있죠. 사실 일본이 전쟁에서 완전히 폐허가 되지 않았습니까? 완전한 폐허에다가 원자폭탄까지 떨어지고 기진맥진한 상태였는데 정말 45년에서부터 50년 사이에 일본에 대한 기록을 보면 처참하기 이루 말할 수 없거든요. 그런데 그 일본이 어떻게 해서 부활했습니까? 바로 한국 전쟁. 전쟁 특수라는 걸 통해서 일본이 부활하게 된 거고 그리고 또 더 거슬러 올라가면 사실은 유럽에서는 독일이 분단됐습니다. 왜 분단됐습니까? 전쟁을 일으킨 책임이거든요. 그리고 다시 유럽 지역의 평화를 위협해서는 안 된다라고 했는데 똑같은 논리가 적용된다면 어디가 분단됐어야 했을까요? 사실은 그러니까 일본이 우리에게 주고 간 가장 나쁜 유산은 식민지 지배도 있지만 분단입니다. 그러면 분단의 책임. 그것 때문에 우리는 전쟁을 치르게 돼서 정말 수백만이 죽고 다치고 그런 비극을 겪었는데 일본은 ‘그게 하늘이 준 축복이다.’

◇ 김현정> 하늘이 준 축복이다. 원자폭탄의 비극으로부터 우리를 다시 서게 할 수 있었던 건 한국 전쟁이다. 한국전에 무기 팔고 이래가지고. 그런데 그때 일본이 그렇게 우리에게 무기를 막 팔아서 돈을 벌 수 있었던 건 미국이 자기네 무기를 갖고 오기에는 너무 멀어서 그랬던 거예요?

◆ 한홍구> 아니, 무기보다는 전쟁 물자죠.

◇ 김현정> 전쟁 물자들. 여러 가지 물자들.

◆ 한홍구> 여러 가지 물자들이고. 그다음에 미국의 정책이 바뀌게 된 데에는 중국이 공산화되고 이런 상황들이 벌어지면서 입장이 바뀌었는데. 일본이 철도 깔아주고 어쩌고 저쩌구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일본이 일제 시기에 한국에서 일종의 근대화라고 할까요. 그런 것들이 이루어진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느냐.

◇ 김현정> 그때 철도 깐 게 진짜 한국 국민을 위한 거였냐.

◆ 한홍구> 그게 아니라...

◇ 김현정> 조선인들을 위한 게 아니었잖아요.

◆ 한홍구> 더 잘 수탈하고 더 대륙을 침략해 들어가서 거기서 대일본제국을 크게 만들기 위해서 그 초석을 깐다고 생각을 하고서 조선과 만주를 그렇게 투자했던 것이지, 그것이 조선 사람들을 위한 것은 결코 아니었죠.

◇ 김현정> 이렇게 답하면 되겠군요. ‘어쨌든 36년 동안 신문물을 우리가 쫙 넣어줘서 너희들 잘살게 된 거 아니냐?’라고 누군가 뉴라이트 사관을 가진 어떤 한국인이라든지 혹은 일본 우익이 얘기를 하면 여러분, 그렇게 답하시면 되겠습니다. ‘그 철도 깔아서 뭐 했느냐? 수탈하려고 깐 거 아니냐. 침략 전쟁 더 용이하게 하려고 깐 거 아니냐. 그게 조선인을 위해서 깐 거냐?’

◆ 한홍구> 그렇습니다.

◇ 김현정> 이렇게 말하면 되겠군요.

◆ 한홍구> 그리고 또 더군다나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진짜 우리 다 초토화되지 않았습니까?

◇ 김현정> 초토화됐죠.

◆ 한홍구> 거기서부터 우리가 다시 새롭게 일어난 것이죠.

◇ 김현정> 맞아요, 맞아요. 그러면 그 얘기할 때는 뭐라고 해야 돼요? ‘1965년에 받은 3억 달러와 2억 차관으로 포스코도 만들고 그걸로 도로도 깔고 이래서 또 일어선 거 아니냐. 한국 전쟁으로 초토화됐던 거.’

◆ 한홍구> 아니, 그 돈을 우리가 잘 아껴서, 아껴서 잘 써서 우리가 이룬 것에 대해서 무슨 얘기를 합니까? 그거는 일본이 상관할 바가 아닌 거죠. 다만 그런데 거기서 중요한 부분은 하나가 있습니다. 뭐냐 하면 그 돈을 받았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사인한 게 잘못됐지만 사인한 것도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사실은 포스코나 그런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돈으로 건설한 거에 대해서는 거기서 나오는 수익이라든가 그런 거는 태평양전쟁의 강제 동원 피해자들에게 우선적으로 돌아갔어야 하는 건데.

◇ 김현정> 그 당시에.

◆ 한홍구> 그런데 그걸 안 했죠.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헌법 재판소에서도 2011년도에. 그러니까 이 판결이 아마 대법원 판결을 끌어내는 데 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이 되는데. 일단 한국 정부가 받았기 때문에 그 책임이 한국 정부에게도 상당 부분이 넘어왔는데 한국이 원폭 그다음에 일본군 위안부, 사할린 피해자. 이거는 사실은 1965년 한일 협정에서는 얘기도 안 됐었단 말이에요. 특히 일본군 위안부 같은 경우는요. 그런데 그걸 일본으로부터 그렇게 포괄적으로 국가 대 국가의 책임을 받아놓고서 그걸 이 사람들을 위해서 아무것도 안 한 것은.

◇ 김현정> 개인에게 안 줬어요.

◆ 한홍구> ‘그것은 한국 정부의 책임이다. 그 부작위 행위에 대해서는 그건 위헌이다’라고 헌법 재판소에서 판시를 했고 그런 것들이 한국 사회 분위기에서, 과거사 문제를 바라보는 분위기에 또 일정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 김현정> 알겠습니다. 여러분, 이제 정리가 되셨죠? ‘36년 동안 우리가 신문물 줘서 한국 잘살게 되지 않았느냐?’에 대해서는 그렇게 아까 답하시면 되고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끝났다’라는 얘기에 대해서는 ‘그건 일단 명확히 무슨 돈인지도 밝히지 않고 준 거고. 그건 그렇게 받은 건 우리 정부의 책임도 있고. 어쨌든 그 당시 그걸로 배상 끝난 거 아니다.’

◆ 한홍구> 아닙니다.

◇ 김현정> 너네 죄 지었다는 거 그때 인정 안 하지 않았느냐. 이 얘기를 하면 되는 거고.

◆ 한홍구> 또 하나는 정말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인가가 참 어려운 문제인데.

◇ 김현정> 어렵죠.

◆ 한홍구> 상당히 장기적인 걸 각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일본이 수출 규제한 데서도 보면 김상조 정책실장이 한 말씀하셨다가 총리가 나서서 또 좀 하셨는데. 롱리스트가 있다는 말씀을 했잖아요.

◇ 김현정> 한 100여 개 리스트 준비하고 있다.

◆ 한홍구> 그러면 보통 외교 관계에서 기분이 나쁠 때나 그 100개의 리스트가 있으면 그중에서 73번째 거나 81번째 거를 먼저 꺼내서 쓱 하면서 ‘우리 기분 나빠.’ 이렇게 그걸 보이는 거죠. 가령 하노이 회담에서 끝난 다음에 김정은이 미국에 대해서 굉장히 기분이 나빴을 거 아닙니까? 그런데 거기서 기분 나쁘다고 표시를 하되 판을 깨는 건 아니죠. 그러니까 그건 기분 나쁘다는 걸 충분히 표시하면서.

◇ 김현정> 시그널만 주는 거죠, 판은 안 깨고.

◆ 한홍구> 판을 유지해 나가는. 그러면서 다음 번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는 게 많은데 이건 리스트의 1번, 2번, 3번이거든요.

◇ 김현정> 여러분, 김상조 실장이 얘기한 리스트. 그러니까 한 100개 정도 우리의 제일 치명적인 거부터 1, 2, 3, 4, 100개가 있는데 일본이 이번에 제일 치명적인 1, 2, 3번을 타깃팅했다. 이 얘기한 거죠.

◆ 한홍구> 그러니까 바로 이거는 초장부터 살수를 쓴 거죠. 한번 탐색전을 한 게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장기전으로 갈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그러니까 이렇게 일본이 강경하게 나온 근본적인 이유가 저는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 김현정> 뭡니까?

◆ 한홍구> 1965년에 한일 협정을 잘못 맺었는데 이게 국가 대 국가에서 맺었으니까 이걸 바로잡는 게 정말 어렵죠.

◇ 김현정> 어렵죠.

◆ 한홍구> 2015년 박근혜와 아베 사이에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서 한일 합의를 했다고 하는데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거 아닙니까?

◇ 김현정> 말도 안 되죠.

◆ 한홍구> 그리고 아베가 사과했다고 하는데 할머니들 중에 사과받은 분은 단 한 분도 없고 전화도... 박근혜한테 뭐라고 사과했는지도 일본 의회에서조차 밝히지를 않았죠. 그렇게 했는데 이거를 바로잡는 것도 국가 대 국가가 사인을 해 놓은 거니까 참 힘든 거거든요. 그런데 우리한테는 한 번의 기회가 더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 김현정> 뭡니까?

◆ 한홍구> 조일 수교죠.

◇ 김현정> 조일 수교요?

◆ 한홍구> 북한하고. 그러니까 왜냐하면 지금 아베 정권이 저렇게 정말 깜짝 놀랄 정도의 강수를 두고 있는 중요한 이유는 단지 이번 참의원 선거만을 바라보고 있다라기보다는 이게 아베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 우경화를 하고 평화 헌법을 고치고 전쟁을 할 수 있는, 일본식 표현으로 보통 국가를 향해서, 정상 국가를 향해서 간다라고 하고 거기에서 가장 큰 가상 적은 북한이었다는 말이죠. 그런데 지금 트럼프하고 김정은이 손을 잡고 군사 분계선을 왔다 갔다 하고 거기에 문재인 대통령까서 같이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은 동아시아에 엄청난 변화가 오고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 변화는 아베의 어떤...

◇ 김현정> 가상의 적이 흔들리고 있어요?

◆ 한홍구> 보통 국가 구상하고는 완전히 사라지게 되니까 거기에 대한 위기감과 초조감이 있고요. 그다음에 또 하나는 뭐냐면 동아시아 정서가 어떻게든 바뀌게 되면 조일 수교를 해야 할 거 아닙니까, 일본도. 그런데 여기서 보면 완전히 재팬 패싱이 되고 있는 거죠.

◇ 김현정> 북한은 일본 쳐다보지도 않아요, 지금.

◆ 한홍구> 지금 쳐다보지도 않고 있고. 가령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하고 손잡고 그 휴전선을 넘은 것은 미국 대통령이 그거 한번 해 보고 싶어서 쇼를 한 거 아닙니까? 문재인 대통령이 왔다 갔다 하는 걸 보고서. 그래서 그걸 보고 저는 제일 부러웠을 사람은 시진핑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아베는 꿈도 못 꿀 겁니다. 아베는 그런 광경을 남북의 지도자가 연출을 했는데 아베하고는 절대로 연출을...

◇ 김현정> 할 일이 없죠 뭐.

◆ 한홍구> 안 할 거 아니에요. 그렇게 일본이 배제됐다는 것도 있지만 또 하나는 일본 입장에서 아주 현실적으로 조일 수교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생기는 문제는 뭐냐 하면 일본은 1965년에 박정희 정권하고 한 거 이상을 절대 안 하려고 할 것이고, 북한은 여태까지 버텼는데 그리고 거기서 원칙적인 문제를 세우려고 할 겁니다.

◇ 김현정> 북한은 그러니까 우리 같은 그런 마무리 협정 같은 걸 한 적 없어요.

◆ 한홍구> 가령 일본 육사 출신의 친일 경력을 가진 사람이 지도자가 아니라 항일 무장 투쟁의 신화에서부터 딱 버티고 있고 ‘일본군하고 우리는 당당하게 싸웠었다’ 하는 입장에서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가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고 남북 공조가 거기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 김현정> 그래서 북한을 이용해서 우리가 활용해서 뭔가 이 상황을 뚫어볼 수 있지 않을까.

◆ 한홍구> 북한과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는 조일 수교고 그걸 위해서 우리가 남북 공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김현정> 북한이 뭘 요구해야 돼요, 일본한테? 우리가 뭘 좀 요구해서 이걸 풀어달라고 말을 해야 돼요, 북한한테?

◆ 한홍구>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

◇ 김현정> 불법성을 거기서 북한하고 협정 맺을 때 인정이 되면 우리까지 영향을 미치는 겁니까?

◆ 한홍구> 당연하죠. 그렇게 되면서 우리가 1965년도에 잘못됐었던 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 김현정>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지금 사실은 저희가 화제의 인터뷰가 준비가 돼 있었는데 질문들이 너무 많이 막 쏟아져 들어오고 있어서 조금 더 화제의 인터뷰를 월요일로 미루고 조금만 더 가자는 주문이 들어왔는데. 일단 교수님 괜찮으세요?

◆ 한홍구> 네.

◇ 김현정> 강제 징용 배상 판결이 사실은 일본이 지금 경제 보복 조치하는 것에 빌미가 됐는데요. 강제 징용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일본 기업들은 뭐라고 그러냐면... 미쓰비시라든지 신일철주금이라든지 거기서 뭐라고 그러냐면 ‘그때 우리 임금 주긴 줬다. 너네들도 사인하고 가져간 거 아니야, 월급 주는 거에?’ 이렇게 얘기해요. 그건 뭐라고 답해야 됩니까?

◆ 한홍구> 임금을 주기는 줬지만 그것이 일본으로 가게 된 것 자체가 자발적으로 간 사람들도 있고 또 강제 동원돼서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 김현정> 뭐라고 하면서 데려간 거예요, 그럼?

◆ 한홍구> 그러니까 큰 구조는 어떻게 되냐면 태평양전쟁 말기에 가면 일본군 숫자가 700만 가까웠거든요. 노동력을 가진 사람은 다 전선에 투입이 된 거예요. 그렇게 되니까 그 부족한 부분을 조선 사람들을 데려다가 메우게 됐는데. 조선 사람들 입장에서는 다 집안에서 농사 짓던 가장인데 내가 거기 끌려가면 누가 농사를 짓습니까? 걱정이 많이 되니까 탈출하는 사람도 많고 이렇게 된 상황인데 끌려가서는 우리 군함도 영화에서도 짧지만 아주 강렬하게 묘사가 됐듯이 어마어마한 고생을 하면서 했고. 또 그다음에 그 과정에서 희생돼서 돌아오지 못한 분들이 30만 정도 잡습니다. 그러니까 요즘 유해 송환도 하는 데서 일부 단체에서는 100만까지 주장을 하고 있고.

◇ 김현정> 그 당시 인구에서 30만, 100만이면 지금...

◆ 한홍구> 30만이라면 어떤 숫자냐 하면 일본에 끌려간 분들 중에 10명 중에 1명 이상이 희생됐다는 얘기예요. 그러니까 그만큼 환경이 열악했죠. 그런데 거기에 대한 ‘그런 열악한 환경에 대해서 충분한 보상이 되었느냐?’와 그다음에 또 문제는 뭐냐 하면 그분들이 일본에서 노동을 했지 않습니까? 그래서 돌아오지 못해서 재일 동포로 남은 분들도 있고. 그런데 그 당시에 미국 최고사령부죠. 미군의 정책이 일본 내에서 조선 사람들이 돈을 갖고 나오질 못하게 했어요.

◇ 김현정> 그나마도.

◆ 한홍구> 그러니까 지금 돈으로 치면 한 5만 원에서 10만 원 정도. 사실 말이 안 되는 거죠.

◇ 김현정> 진짜 조금의 돈인데 그것도 못 갖고 가게 했어요?

◆ 한홍구> 60만이 남게 된 중요한 이유입니다. 일본에 있었던 재산을 처분해서 갖고 올 수가 없었기 때문에.

◇ 김현정> 그래서 그렇게 많이들 남아계시는 거예요, 동포들이?

◆ 한홍구> 그 다음에 또 일본 내에서 문제가 되는 건 바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재일 동포 문제까지 나오게 되는데 재일 동포 문제라는 게 일본에서는 굉장히 큰. 그러니까 일본의 극우파가 볼 때는 정말 아주 극도의 불안 요인인데 일본은 천황의 나라 그다음에 우리는 그런 의식이 많이 지금 약해졌습니다마는 지금 일본에서는 아직도 단일 민족이라는 신화가 있는데 조선 사람들이 걸리는 거 아니에요?

◇ 김현정> 방해예요.

◆ 한홍구> 그런 데다가 가령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 인식이 한국 사회도 있습니다마는 일본에서는 ‘조선인들이 범죄를 많이 저지른다.’ 그런 식으로 보고 있는데 진짜 문제는 일본의 선거 제도가 소선거구제 아닙니까. 소선거구제이다 보니까 각 선거구마다 500표, 1000표 차이가 되는데 재일 조선인에게 참정권이 부여가 되면 그게 다 뒤집힌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이런 문제도 있기 때문에 조선인 문제를 이렇게 극도로 민감하게 보는 거죠.

◇ 김현정> 이게 지금 교수님하고 이 이야기를 쭉 다 풀어가자면 1시간도 부족할 것 같은데. 일단 오늘 여기까지. 여러분, 어떤 배경 지식들 얻으셨을 거라고 보고. 일본의 우익이 주장하는 그 어이없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답을 해야 되는지도 얻어가셨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교수님, 감사드리고요.

◆ 한홍구> 감사합니다.

◇ 김현정> 다음에 또 한 번 시간 내서 더 긴 이야기들 풀어주시면 좋겠어요.

◆ 한홍구> 감사합니다.

◇ 김현정> 고맙습니다. 성공회대학교 한홍구 교수였습니다. (속기=한국스마트속기협회)

[CBS 김현정의 뉴스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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