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소식


소식

홈 > 소식 > 새소식
새소식

외교부 ‘2023일본 개황’ 과거사 왜곡자료 삭제 이유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4-06-03 10:07 조회461회

본문

외교부 ‘2023일본 개황’ 과거사 왜곡자료 삭제 이유


  •  한승동 에디터
  •  
  •  승인 2024.06.01 11:00
 

역사왜곡 발언 모두 들어낸 2023판 일본 개황

“3번 다시 일어나 38도선을 압록강 바깥으로!”

사와다 렌조 한일회담 일본대표 발언 오역 게재?

검정 교과서 역사왜곡 자료 22개 항목도 삭제

한일 유착을 위한 전략적 D데이 2023년 3.1절

외교부 발간 '2023 일본 개황'. 일본 주요 인사들의 과거사 왜곡과 반성 발언 사례들 항목이 모두 삭제됐다.   외교부  누리집 촬영
외교부 발간 '2023 일본 개황'. 일본 주요 인사들의 과거사 왜곡과 반성 발언 사례들 항목이 모두 삭제됐다.   외교부  누리집 촬영

1951년 9월 미국 주도 아래 도쿄에서 시작된 ‘한일회담’의 일본쪽 대표들의 ‘망언’ 중에서 ‘압권’은 1958년 6월 재개된 제4차 회담 일본대표였던 사와다 렌조의 입에서 나왔다. 사와다는 6월 1일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3번 다시 일어나 38도선을 압록강 바깥으로!”

“우리는 3번 (다시) 일어나 38도선을 압록강 너머로 밀어내지 않으면 선배들에게 면목이 없다. 이것은 일본외교의 임무다.”

이 말은 그때까지도 한반도를 일본의 영토 내지 속지 정도로 생각하고 있던 일본 우익들이 한반도 전체, 나아가 만주까지 다시 장악하지 못하면, 조선(한반도)을 식민지배하고 중국을 침탈해 만주국까지 세웠던 그들의 선배(아베 신조 전 총리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만주국 총무청 차장 등)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는 얘기다. 한일회담을 진두지휘한 일본쪽 대표가 공개적으로 한 얘기다. ‘3번’ 다시 일어선다는 건 임진왜란, 근대 식민침탈 뒤 패전으로 무너졌지만, 이제 다시 일어나 세 번째 한반도 정복에 도전해야 한다는 이야기일까.

그런데 이 사와다 렌조의 말이 한국 외교부가 2018년까지 펴낸 ’일본 개황‘의 파트 6 ’한일관계‘속 ’일본의 과거사 반성 역사왜곡 언급 사례‘(247-283쪽)에는 잘못 인용돼 있다. 외교부가 공개한 2018년 일본 개황의 해당 항목에는 “38도선을 압록강까지 밀어올리지 않는다면 조선에 대하여 면목이 없으며, 이것이 일본 외교의 임무임”이라고 인용돼 있다.

오역 아니면 의도적 개작?

이것은 사와다의 발언을 터무니없이 왜곡한 오역이다. 아니면 의도적인 개작이거나.

사와다 발언의 원문은 “われわれは三度起って38度線を鴨緑江の外に押し返さねば先逹に申し訳ない.これは日本外交の任務である”(‘일한조약의 무효성을 둘러싼 논의에 대하여’日韓諸条約の無効性をめぐる議論について, 한계옥)이고 이는 “우리는 3번 일어나 38도선을 압록강 바깥으로 밀어내지 않으면 선배들에게 면목이 없다. 이것은 일본외교의 임무다”로 번역돼야 한다. 그런데 외교부가 공개한 ’일본 개황‘은 ’압록강 바깥으로‘(鴨緑江の外に)를 ’압록강까지‘로, '선배(先逹)'를 엉뚱하게도 ’조선‘으로 옮겨 놓았다. 이렇게 되면 의미가 전혀 달라진다.

나중에 일본의 초대 유엔대사까지 한 사와다가 면목이 없다고 한 대상은 자신들의 선배, 즉 조선과 민주까지 지배한 그들의 일본육사 및 제국대학 또는 일본군 선배들이다. 그래서 그들 선배처럼 한반도 전체와 만주까지 다시 쳐들어가 지배하지 못하면 그 선배들에게 면목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한일회담에서 한국대표들과 마주앉은 일본대표들의 속내였다.

그 선배(先逹)를 도대체 왜 ’조선‘으로 옮겨놨을까. 2018년 일본 개황의 파트 6 ‘한일관계’ 제6항 ‘참고자료’의 ‘일본의 과거사 반성·역사왜곡 언급 사례’ 중 ‘역사왜곡 언급 사례’ 3번째 항목에 분명히 그렇게 나와 있다. 선배를 조선으로 옮겨 놓으면, 마치 자신들(일본) 때문에 한반도가 분단이 됐으니 그 책임을 지고 한국을 도와 남북통일을 하지 않으면 한국사람들에게 면목이 없다는 ‘선한 반공주의자’의 말쯤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사와다는 전혀 그런 의도로 그 말을 한 게 아니다. 애초에 그럴 인물이 아니다.

이것이 단순한 오역인지, 아니면 일본쪽 심기를 고려해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고쳐 놓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대한민국 외교부의 중요한 공식 문서자료가 이런 건 심각한 문제다.

 

외교부 발간 '2018 일본 개황'    외교부 누리집 촬영
외교부 발간 '2018 일본 개황'    외교부 누리집 촬영

 

역사왜곡 발언 모두 삭제한 2023판 일본 개황

외교부가 운석열 정부 들어 발간한 ‘2023년 일본 개황’에서 ‘일본의 과거사 반성·역사왜곡 언급 사례’를 통째로 삭제하고 일본 교과서의 역사 왜곡 사례들도 빼버렸다. 당연히 위의 사와다 렌조 발언도 빠졌다. 5월 30일 <경향신문>이 이를 보도하면서 “한일관계 개선을 앞세워 과거사 문제에 소극 대응하는 정부 기조가 투영된 것”이라고 지적하자, 외교부는 지난해 3월 15일 공개한 2023년판이 기존 자료 일부를 수정해 약식으로 발간한 것이어서 그렇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응했다. “올해 종합적인 개정본(최종본) 발간을 준비 중”이고 거기에 왜곡 반성 사례 등도 업데이트해서 “향후 개정본 발간시 참고할 예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약식이어서 문제의 부분들을 뺐고 업데이트해서 최종본에 반영하겠다는 외교부의 해명은 미덥지가 않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다 돼가는 시점에 굳이 ‘약식’으로 기존 수록 내용 중 중요부분을 통째로 빼고 일단 발간해서 공개한 뒤, 곧 최종본을 다시 만들겠다는 건 상식적인 일처리가 아니다.

2018년판은 7개의 파트로 구성된 총 379쪽짜리 자료인데, 2023년판은 6개 파트로 된 총 223쪽짜리로 2018년판보다 156쪽이나 줄였다. 그런데 그 줄어든 부분이 하나같이 한일간에 논란을 빚어 온 것들이다. 중요한 외교현안들이지만 서로 불편한 내용들이다. 특히 일본쪽이 더 불편해 할 것들이다. 그런 것들만 족집게처럼 빼버렸다.

 

2018 일본 개황 한일관계 참고자료에 실린 일본 주요인사들의 '역사왜곡 언급 사례'     외교부 누리집 촬영
2018 일본 개황 한일관계 참고자료에 실린 일본 주요인사들의 '역사왜곡 언급 사례'     외교부 누리집 촬영

검정 교과서 역사왜곡 자료도 삭제

2018년판 일본 개황의 ‘역사 왜곡 언급 사례’는 한일 국교‘정상화’를 위한 한일회담이 시작된 1951년부터 2018년까지 총리 등 일본 주요 인사들의 역사 왜곡 발언들 177개 항목, ‘과거사 반성 언급 사례’는 ‘한일협정’이 체결된 1965년부터 2018년까지의 주요 인사들 발언 71개 항목을 연도순으로 정리한 것이다. 이런 사례들은 적어도 1996년부터 발간한 7개의 모든 일본 개황에 모두 담겨 있었다. 개황은 정해진 발간 주기는 없으나, 정부가 바뀔 때마다 적어도 한 번 이상 개정판을 냈다.

그런데 2023년판에서 총 36쪽에 이르는 이 항목을 몽땅 빼버렸다. 5년 전인 2018년 이후 2023년판 발간 시점까지의 새로운 변화들만 업데이트에서 추가하는 쪽이 훨씬 더 쉬웠을 텐데 굳이 방대한 분량을 삭제해 가면서 약식본을 만들었다.

그리고 역시 파트 6의 ‘한일관계’ 6개 항목 중 ‘2.정무관계’에 포함돼 있던 ‘최근 주요 현안’인 ‘교과서 문제’도 모두 빠졌다.

2001년 4월, 2002년도용 역사교과서 검정 결과 우익 성향의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의 교과서가 통과했고, 2002년에서는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내용이 담긴 일부 고교 교과서들이 검정을 통과했다. 이후 2018년 3월의 문부과학성 고교 학습지도요령 개정에서 사회과에 독도를 일본 고유의 영토로 처음으로 명기했다. 이런 내용들이 8쪽에 걸쳐 22개 항으로 정리돼 있었는데, 모두 빼버렸다.

2023년판의 경우 이 껄끄러운 ‘한일관계’에서 줄어든 분량만 과거사 반성, 왜곡 발언 사례 36쪽울 포함해 무려 141쪽이다. 2018년판에서 줄어든 총 156쪽 분량의 대부분이 문제의 36쪽을 포함한 ‘한일관계’ 파트 속의 ‘참고자료’(총 169쪽)에 들어 있던 내용이다. 그리하여 2023년판의 참고자료는 18쪽만 남았다.

이렇게 껄끄러운 부분을 모두 들어내고 새로 넣은 것이 ‘강제징용 문제’와 ‘일본 수출규제 조치’다. ‘강제징용 문제’는 한일관계 파트의 정무관계 항목 중 ‘최근 주요 현안’에서 7쪽 반 정도의 분량으로 다뤘고, ‘일본 수출규제 조치’는 한일관계 파트의 경제관계 항목의 최근 주요 현안에 추가됐는데, 반쪽짜리의 짤막한 분량이다.

 

2018 일본 개황의 한일관계 참고자료에 실린 일본 주요인사들의 '과거사 반성 언급 사례'   외교부 누리집 촬영
2018 일본 개황의 한일관계 참고자료에 실린 일본 주요인사들의 '과거사 반성 언급 사례'   외교부 누리집 촬영

2023년판 일본 개황을 서둘러야 했던 이유

과거사 반성, 역사왜곡 발언들이나 역사교과서 개악 논란들을 이처럼 모조리 빼버리고, ‘강제징용 문제’와 ‘일본 수출규제 조치’를 새로 넣은 것이 수상쩍다. 실은 여기에 2023년판을 서둘러 낸 ‘비밀’이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특히 ‘강제징용 문제’에 2023년 판을 서둘러 낸 이유가 집약돼 있다.

짐작하듯, 이 두 항목은 윤석열 정부가 ‘해결’했다고 지금까지 자랑하고 있는 한일간 난제들이다. 어쨌든 2018년판 이후의 변화된 최신 상황을 넣은 것이니 자연스런 것이고, 문제될 게 없지 않느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과거 정부들이 정리해서 차곡 차곡 쌓아 온 사례들 위에 새로운 것을 추가 정리하는 기존 개황 작성방식을 버리고 왜 굳이 그런 약식본을 만들었을까. 사와다 렌조의 인용구가 잘못돼 있어서 삭제한 건 더더욱 아니다. 그것이 문제였다면 몇 글자만 고쳐 놓으면 된다.

2023년판의 ‘강제징용 문제’의 ‘라. 최근 해결 노력’은 다음과 같은 구절로 시작한다.

“‘2018년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이후 일본의 대한 강경 자세에 과거 정부가 한일관계를 사실상 방치하며 양국관계 경색 국면 지속.”

여기에는 왜 윤석열 정부가 ‘제3자 변제’와 같은 편법으로 강제징용 배상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었는지 항변하듯 자신들 해법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논리의 핵심이 들어 있다. 한마디로 강제징용에 대한 대법원의 2018년 배상 확정판결은 잘못된 것이며, 그 잘못된 것을 전임 문재인 정부가 (국제법 위반이라며 철회하거나 번복시키라는 일본 주장을 무시한 채) 바로잡지 않고 방치하는 바람에 한일관계가 경색되고 나라 사정이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여기서 애초에 문제를 만들어낸 일본의 잘못에 대한 지적은 어디에도 없다. 강제징용 배상문제가 터진 것은 마치 일본이 아니라 사법부를 일본쪽 요구대로 굴복시키지 못한 전임 문재인 정부 탓이라는 투다.

‘강제징용 문제’에서 독립된 상자글로 붙여 놓은 ‘강제징용 대법원 관련 정부 입장 발표문’은 전임 정부의 “사실상 방치”로 한일관계가 경색된 어려운 상황에서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다”고 썼다. 그래서 내놓은 게 ‘일제강제동원 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한 판결금과 이자의 지급이며, “그 재원은 민간의 자발적 기여 등을 통해 마련”한다는 것이었다. 이른바 ‘제3자 변제’라는 편법이다.

 

2018 일본 개황 한일관계의 '정무관계'에 실린 '교과서 문제'    외교부 누리집 촬영
2018 일본 개황 한일관계의 '정무관계'에 실린 '교과서 문제'    외교부 누리집 촬영

 

한일 유착 전환을 위한 전략적 D데이 3.1절

정부 발표문은 그리하여 “최근 엄중한 한반도 및 지역·국제 정세 속에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가장 가까운 이웃인 일본”과 함께 한·일 양국의 공동이익과 지역 및 세계의 평화번영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끝맺는다.

이 발표문이 공표되기 닷새 전인 지난해 3월 1일 발표된 대통령 ‘3.1절 기념사’에 이런 구상의 기본틀이 요약돼 있다.

그것은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지금 세계는 104년 전 3.1 독립만세시위 때처럼 복합적인 위기의 시대다. 100여 년 전 세계사의 변화에 재대로 대응하지 못해 나라를 잃고 고통받은 것처럼, 지금 또 다시 그런 세계사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미래를 준비하지 못한다면 불행한 과거가 되풀이될 것이다. 100여 년 전처럼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여야 한다. 100여 년 전 우리가 싸워서 극복해야 할 상대는 군국주의 일본 침략자였지만, 지금은 그것이 북한, 그리고 명시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북중러 북방 삼각동맹이다. 일본은 이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됐다. 미국 주도 아래 한미일이 뭉쳐 맞서 싸우자.

여기에는 정치적 반대파들을 모조리 자유민주주의에 반대하는 ‘좌파 전체주의자’ 내지 ‘실패한 사회주의자’ 또는 ‘친북 친중 음모론자’로 몰아 대중과 유리시키고 고립시키려는 꼼수가 숨겨져 있다.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확대정상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며 악수하고 있다. 2023.3.16. 연합뉴스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확대정상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며 악수하고 있다. 2023.3.16. 연합뉴스

닷새 뒤인 3월 6일 제3자 변제안을 발표한 윤석열 대통령은 3월 16일 도쿄로 날아갔다. 기시다 일본총리에게 확정된 ‘제3자 변제’ 해법을 들고 가서 문재인 ‘좌파 정권’시대와는 180도 달라진 한일 ‘준동맹’관계를 과시했다. 그리고 4월 24일부터 6박 7일간의 미국 국빈방문 때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 한미일 삼각동맹을 완성할 연결고리인 한일 유착이 본궤도에 올랐음을 선포했다.

이렇게 보면, 과거사 반성과 역사왜곡 발언 사례 등을 삭제해 버린 것은 경향신문의 지적대로 “한일관계 개선을 앞세워 과거사 문제에 소극 대응하는 정부 기조가 투영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매우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일본이 불편해 할 수 있는 방해요소들을 선도적으로 제거하면서 접근하는 적극적 대일 유착전략이라 할까.

아마도 대통령 취임 이전부터 구상하고 준비했을 그 전략의 성공과 실패를 가를 시기적 전환점을 취임 1주년이 가까운 3월로 잡지 않았을까 싶다. 한일 양국 모두 신경을 곤두세우고 미국마저 주시하는 3.1절 기념사와 6일의 제3자 변제안 발표, 16일의 한일 정상회담. 그리고 4월의 미국 국빈방문. 그 전에 어떻게든 매듭을 지어야 했고, 취임 이후 지리멸렬했던 국내정치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서도 뭔가가 필요했을 것이다. 일본이 시간을 끌지 않고 흔쾌히 받아줄 화끈한 해법. 2023년 일본 개황을 그렇게 삭제하고 추가해서 약식본이라도 만들어야 했던 것은 그런 사정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일 유착과 한미일 준동맹 관계 선포는 1853년 페리 제독의 ‘흑선’이 도쿄 남쪽 요코스카의 우라가에 닻을 내린 이후 근대 일본에 찾아온 행운이 다시 도래할 것임을 예고하는 듯하다. 우리 근대의 경험치가 알려 주듯 그것은 한국에겐 불운일 수 있다. 그때 이후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핵심 교두보는 짧은 태평양전쟁기를 제외하면 늘 일본이었고, 조선은 그 때문에 늘 일본을 바라보는 변방이거나 대륙-해양 대립의 최전선에 내몰린 약자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분단과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치렀다. 미국은 중국이 도전자로 부상하자 또 다시 같은 전략을 구사하려 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거기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있다.

 

2023 일본 개황 한일관계의 '정무관계'에 실린 '강제징용 문제'   외교부 누리집 촬영
2023 일본 개황 한일관계의 '정무관계'에 실린 '강제징용 문제'   외교부 누리집 촬영

사와다 렌조의 발언은 흘러간 옛 이야기일까

그런데 일본이 과연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가장 가까운 이웃”일까? 사와다 렌조의 얘기는 이미 흘러간 ‘과거사’일까.

1951년 9월에 제1차 한일회담이 열리기 직전 국회 연설에서 당시 일본총리 요시다 시게루는 그 회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번 한일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일본에 있는 한국인에게 일본국적을 주지 않는 것이며, 이민족인 소수민족은 뱃속의 벌레로서 일본이 이것을 갖지 않게 하는 것이 한일회담의 목적이다.”

자신들이 일본국적을 부여하고 사실상 끌고 간(식민지적 빈곤과 노예상태로 인한 ‘자발적’ 도일까지 포함해서) 재일 조선인들을, 이제 일본을 해치는 ‘회충’이나 ‘십이지장충’쯤으로 멸시하며 하루빨리 추방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한일회담의 최대 목적이라고, 근대 일본 최고 ‘위인’의 하나로 칭송받는 요시다는 국회에서 공언했다.

일본 패전 뒤 국교단절 상태였던 한일관계 수복을 서둘렀던 것은 미국이었다. 제1차 회담이 열린 그 해 그 달에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한국 중국은 초청받지도 못함)이 체결돼 일본에게 전쟁범죄 면죄부가 주어지고 전범국 일본은 졸지에 미국의 최대 동맹국이 됐다. 그때는 6.25전쟁(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였다. 전승국 미국은 원래 전범국 독일을 동서독으로 분단 지배했던 것처럼 패전국 일본을 분단하지 않고 그 피해국인 한국(조선)을 분단시켰다. 결국 그 때문에 6.25전쟁이 일어났다. 미국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과 6.25전쟁으로 본격화한 동서 냉전에서 일본을 미군기지이자 동맹국으로 만들고 한반도 남쪽(한국)을 일본경제권에 편입시켜 미국의 동아시아 교두보로 삼으려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과 일본을 하나로 묶어야 했고, 그때까지 도쿄에 총사령부(GHQ)를 두고 일본을 점령통치하던 미국은 한국대표를 도쿄로 불러 한일 국교‘정상화’를 다그쳤다.

한일 회담에서 미국과 일본에 국가생존을 기대야 했던 한국은 침략과 식민지배가 정당했다는 일본의 고압적인 자세에 사실상 아무런 대항수단도 갖고 있지 못했다. 미국은 쓸모가 큰 일본 편을 들었다. 독도는 원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초안에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반환‘받아야 할 영토로 기재됐지만, 독도를 일본영토로 편입해야 한다는 일본 우익과 미 점령군사령부 내의 친일파 미군 고위관리들의 요구로 나중에 반환 리스트에서 빠졌다. 일본이 자국영토 ’다케시마‘라 고 주장하게 된 시초가 거기에 있다.

1953년 10월에 열린 제3차 회담에서 구보다 간이치로 일본대표는 회담 석상에서 조선(한국)민족을 일제 강점하의 노예상태에서 해방시켜야 한다고 한 연합국의 ’카이로 선언‘(1943년 12월)은 “전시 히스테리”의 표현이었다며 “일본의 36년간 한국 통치는 한국인들에게 은혜를 베푼 것”이고,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화하지 않았다면 중국이나 소련이 그랬을 것이라고 했다. 이 ’구보다 망언‘으로 한국 여론이 들끓었고, 이후 회담은 4년 이상 열리지 못했다.

 

17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린 서울시국회의 기자회견을 마친 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가면을 쓴 사람이 '위안부 합의이행', '독도 영유권 주장 인정', '한반도 자위대 진출' 등이 적힌 쓰레기봉투를 윤석열 대통령 가면을 쓴 이에게 건네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3.3.17. 연합뉴스
17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린 서울시국회의 기자회견을 마친 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가면을 쓴 사람이 '위안부 합의이행', '독도 영유권 주장 인정', '한반도 자위대 진출' 등이 적힌 쓰레기봉투를 윤석열 대통령 가면을 쓴 이에게 건네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3.3.17. 연합뉴스

이케다 총리 “이토 히로부미처럼 한국 파고들어야”

그밖에 2018년판 일본 개황의 파트 6의 ‘한일관계’ 속 ‘참고자료’ 7개 항목 중 5번째 항인 ‘일본의 과거사 반성·역사왜곡 언급 사례’에는 요시다, 구보타, 사와다를 비롯한 모두 177개 항목의 왜곡사례들이 조목조목 정리돼 있다.

“이토 히로부미’의 예를 따라서 일본은 한국에 파고들어가야 한다”고 했던 이케다 하야토 총리, “일본은 조선을 지배했으나, 조선을 보다 좋게 하려고 한 일”, “창씨개명만 해도 조선인을 동화해 일본인과 같이 취급하려고 취해진 조치”라고 한 다카스기 신이치 대표의 발언도 거기에 들어 있다. “대만을 경영하고, 조선을 합병하고, 만주에서 5족 간의 협력과 평화를 꿈꾸었던” 군국일본의 “조선 합병을 일본제국주의라고 한다면 그것은 영광스러운 제국주의”라고 한 시이나 에쓰사부로 외상, 그리고 지금까지도 “독도는 역사적 사실에 비춰도, 국제법상으로도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줄기차게 반복하는 스가 요시히데 총리, 기시다 총리, 고노 다로 외상, 후쿠이 데리 오키나와북방담당대신, 미야코시 미쓰히로 영토문제담당대신 등의 발언들도 들어 있다.

그리고 ‘과거사 반성 언급 사례’에는 역대 일본 총리와 대신들의 한반도 침략과 식민지배, 일본군 위안부 동원에 대한 사죄와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들이 71개 항목으로 정리돼 있다. ‘2023년 일본 개황’에는 이런 과거사 왜곡과 반성 언급 사례들이 모두 빠졌다.


브라우저 최상단으로 이동합니다 브라우저 최하단으로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