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사무처장
김창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사무처장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뒤로는 김정은 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이 만나 판문점 주변에서 산책하던 사진이 걸려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지난해 9월 군사분계선 북쪽 땅 개성공단에 문을 열었다. 남북 정상간 합의인 ‘4·27 판문점선언’에 따른 것이다. 그동안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5개월 넘게 운영되면서 남북간 상설 대화창구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남북간 소통채널로 철도·도로, 항공, 산림, 보건, 의료, 체육, 통신 등 7가지 분야의 당국 회담을 모두 지원했다. 정상회담과 군사회담을 뺀 모든 분야를 포괄한 것이다.
공동연락사무소는 남북관계 발전에 어떤 의미를 지닐까. 어떻게 운영되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나갈까. 개성 현장에서 남북간 접촉을 총괄하고 있는 김창수(55)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사무처장은 “24시간 365일 소통하는 남북 상시 연락채널로 남북 정상이 합의해 설치한 첫 상설기구”라고 의미 부여를 했다. 또 “궁극적으로는 남북한의 중심지인 서울과 평양에 상주하는 대표부로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장기 전망을 내놓았다. 인터뷰는 지난 19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사무실에서 진행됐고, 24일 전화로 추가 질의를 했다.
▲ 오늘(19일)은 주중 평일(화요일)인데, 어떻게 서울에 나왔나?
“통상 주중에는 개성에서 근무하고 주말 휴일에 서울로 돌아온다. 그런데 북한이 정월 대보름을 휴일로 정해 쉬는데 마침 오늘이 정월 대보름이어서 공동연락사무소도 휴일근무 체제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남쪽 소장은 천해성 통일부 차관이지만 비상근이다. 개성 현장에는 김 처장이 천 차관을 대신해 상주하며 북쪽과의 접촉을 총괄한다. 사무소는 지상 4층 규모 건물로 2층엔 남쪽 사무실, 4층엔 북쪽 사무실이 있고 3층은 회담장으로 사용된다. 한 지붕 아래 두 가족이다. 김 처장은 “남쪽 사무실에 통일부와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 산림청 등에서 20여명이 파견돼 있으며 전기, 통신, 정·배수, 오폐수 처리, 소방, 의료, 식당 등 지원 인력이 30~40명 있다”고 소개했다. 이들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중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하며 야간과 주말엔 당직 체제로 운영된다.
▲ 공동연락사무소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
“한마디로 남북간 상시적 소통창구다. 당국간 회담을 협의하고, 민간 교류를 지원하고, 남북간 왕래의 편의를 보장해주는 업무를 한다. 우리가 북쪽하고 접촉하는 유형은 네가지다. 매주 금요일 천해성 통일부 차관과 전종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부위원장 간의 ‘소장 회의’가 열리고, 그다음에 나하고 황충성 조평통 부장 간 ‘부소장 회의’가 주 2회 열린다. 또 남북 ‘연락관 접촉’이 오전과 오후 하루 두차례 열리고, 필요에 따라 ‘실무협의’가 열린다. 그동안 하루 평균 3회씩 남북간 대면 접촉을 했더라. 그리고 통지문을 주고받은 게 지금까지 246건으로 하루 평균 1.65건이었다.”
▲ 과거에도 비슷한 기구가 있었는데.
“판문점 연락사무소가 있었다. 판문점 연락사무소는 1972년 7·4 공동성명 이후에 남북적십자회담을 하면서 만들어졌다. 이후 남북간 연락 기능을 해왔는데, 쌍방이 판문점 전화로 필요한 연락을 주고받은 것이다. 그런데 이마저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중단됐다. 그래서 그동안 판문점에선 유엔사 장교가 군사분계선 앞에서 확성기에 대고 소리치면 북쪽에서 그걸 받아 적거나 비디오를 찍는 코미디 같은 일도 벌어졌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10월엔 개성에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가 개설됐고, 2008년 2월 남북교류협력협의사무소로 확대됐다. 그러나 이들 기구는 주로 남북간 경협 업무를 지원했다. 이마저도 2010년 5·24 조치로 끝내 폐쇄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공동연락사무소를 궁극적으로 서울과 평양의 ‘상주대표부’ 설치로 발전시켜 나간다는 복안을 얘기한 바 있다.
▲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지난해 성사시킨 행사를 소개한다면?
“큰 행사로 10·4 선언 기념행사와 철도·도로 착공식이 있다. 둘 다 여기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실무협의해서 며칠 만에 성사했다. 과거에는 남북간에 행사 한번 하려면 개성이나 베이징, 평양 등에서 남북이 만나서 협의했다. 협의하는 데만 두세달 걸렸다. 그러나 여기 개성에 상설 연락사무소가 있으니까 이 연락사무소를 통해 집중 협의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4~5일 만에 협의를 다 끝냈고, 행사도 그 전보다 훨씬 매끄럽게 치러졌다.”
▲ 남북간 협의를 하면서 서로 일 처리 방식의 차이 같은 것 때문에 어려움은 없었나?
“당연히 어려움이 있다. 지난 연말에 한 철도·도로 착공식의 경우는 북에서 답변을 늦게 줬다. 북한은 자기들 일정이 있다. 12월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기일 행사가 중요하니까 그 행사를 중심으로 연말 일정이 짜이는 것이다. 12월26일 개성 판문역에서 열린 행사는 불과 5~6일 전에 협상이 본격 시작된 것인데, 이처럼 북쪽의 시간표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시간이 촉박한데 왜 답을 안 주느냐’고 갑갑해하거나 의도를 오해할 수 있다. 남북간 시간 개념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 착공식 때도 우리는 날씨가 추우니까 200~300명을 수용할 대형 텐트를 치자고 제안했는데, 북쪽은 ‘철길과 역사가 다 보여야 하니까 텐트 설치는 안 된다’고 반대했다. 그래서 텐트 대신 온풍기를 설치하고 따뜻한 차 등을 준비해 참석자들이 추위를 녹일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서로 절충했다.”
남북 정상이 직접 ‘공동연락사무소’ 합의
첫 남북간 상시적 소통창구로서 의미 커
서울·평양 상주대표부로 발전할 가능성
북쪽 인사들, 공식 만남 외엔 접촉 꺼려
작년 폭우 땐 북쪽이 개성공단 배수 작업
“그런 게 윈윈” 영어 사용에 거부감 적어
김 사무처장은 19일 인터뷰에서 올 상반기 행사와 관련해선 “북쪽에 3·1절 100돌 공동행사를 제안해놓은 상태”라고 말했다. 그때까지 북한은 답변을 주지 않은 상태였으나, 이틀 뒤인 21일 ‘3·1절 공동행사가 어렵다’는 통지문을 보내왔다. 27~28일 북-미 정상회담 일정 때문에 3·1절 행사를 준비할 여력이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 사무처장은 24일 전화 통화에서 “북한도 3·1절을 중요하게 평가한다. 3·1절이 북한의 ‘혁명 전통’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민족사 차원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행사로 보더라. 그래서 이번에 대규모 공동행사를 기대한 것인데, 일정상 어쩔 수 없게 됐다”며 아쉬워했다.
▲ 올 상반기 행사로 또 어떤 것이 계획돼 있는가?
“아직 확정된 건 아니지만, 4·27 판문점선언 1주년이 주요한 행사로 예상된다. 또 북-미 정상회담이 마무리되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도 예상된다. 4월15일은 김일성 주석 생일인 태양절이다. 그래서 김 위원장 답방이 이르면 3월 말~4월 초 이전에 이뤄지거나, 아니면 4월27일 판문점선언 1돌 기념행사와 동시에 추진될 수 있다. 또 늦어지면 5월 이후 추진될 수도 있을 것 같다.”
▲ 북쪽과 사업을 하고 싶은 민간인들도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지원을 받을 수 있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민간교류도 지원한다. 우리 사무소를 이용하면 북쪽과 접촉하는 것보다 신속성과 안정성이 보장된다. 북한은 4·27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행사는 무엇이든 좋다고 한다. 그렇지만 먼저 실현 가능성 문제를 검토해볼 것을 권유한다. 또 세부적으로 구체적인 사업계획서를 갖고 접근해야 한다. 북한이 일회적 이벤트성 행사나 북한 전역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하는 행사에 거부감이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면 좋다.”
김창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사무처장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우리는 숙소, 식당, 사무실 세 건물만 왔다 갔다 한다. 모두 5㎞ 이내에 있다. 퇴근 뒤 숙소에선 대부분 탁구를 많이 하며 시간을 보낸다. 또 일부는 위성 텔레비전을 시청하거나 책을 보거나 하며 쉰다. 인터넷은 조만간 설치될 예정이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하지 않나. 직원들 사이엔 ‘개성 3락’이란 우스갯소리가 있다. 첫째 즐거움이 옥상에 올라가 별 보기다. 여긴 불빛이 별로 없어 서울에선 볼 수 없는 은하수를 볼 수 있다. 그다음이 칠흑 같은 어둠 즐기기다. 여긴 정말로 깜깜한데 익숙해지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 마지막으로 멀리 남쪽에서 비치는 불빛을 보며 고향 생각 하기다. 오죽하면 이런 걸 ‘3락’이라고 하겠나. 그래도 남북관계 발전의 최전선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으로 근무한다.”
▲ 개성에서 북쪽 사람들도 많이 만날 텐데.
“김정은 체제가 들어서고 우선 세대가 젊어졌다. 과거보다 국제 여론이나 정세에도 더 관심이 많아 보인다. 영어 사용에도 거부감이 적다. 내가 ‘서로 이득이 되는 방향을 생각해보자’고 했더니, ‘그런 걸 윈윈이라고 하죠’라고 받아치더라.”
▲ 북쪽 사람들과 자주 어울릴 기회는 있나?
“공식적인 만남 이외에는 북쪽에서 접촉을 꺼린다. 숙소와 식당도 우리와 떨어져 있다. 지난해 10월쯤 내가 ‘박연폭포에 같이 가보자, 송악산에도 가보자’고 제안했다. 그랬더니 북쪽에서 ‘거기만 갈 거냐. 황진이 무덤도 같이 가자’고 하면서도 ‘그런데 먼저 연락사무소 업무를 잘 정착시켜놓고 가자’고 하더라. 아직도 못 가봤다. 꽃피는 봄이 오면 다시 한번 제안해보려고 한다.”
▲ 개성공단은 어떤가. 가동중단된 지 3년이 지났는데 관리는 되고 있나?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개성공단에 있지만 개성공단 업무를 하는 곳은 아니어서 내가 말하기에는 제약이 있다. 그래도 공단도 둘러보고 북쪽 사람들 얘기도 들어봤다. 북쪽 사람들은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조건 없이 대가 없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재가동하겠다’고 한 것에 대한 남쪽의 여론을 궁금해한다. 그동안 북한 사람들이 개성공단을 계속 관리해왔다고 한다. 지난해 8월 개성에 폭우가 700㎜ 쏟아진 날이 있었다. 지하 통신망에 물이 다 찼는데, 이걸 북쪽 인력들이 다 빼는 작업을 했다고 한다.”
▲ 27~28일 베트남에서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전문가의 입장에서 어떻게 전망하나?
“최근 미국이 미묘한 입장 변화를 보이는 것을 보면, 미국이 비핵화 입구의 문턱은 낮추면서 출구의 목표를 정확히 설정하고 속도는 조금 빨리 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과거 입구였던 신고 문제라든가 이런 것에 대해선 좀 더 융통성을 보인다. 이번 하노이 정상회담을 계기로 비핵화는 단계적, 동시적으로 추진되는 단계에 진입하게 될 것으로 본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비핵화를 위한 세부 조치, 목표와 로드맵 등이 나온다면 그것만으로 성과라고 본다.”
▲ 문재인 대통령이 얼마 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남북 사이의 철도·도로 연결부터 남북 경협 사업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다면 그 역할을 떠맡을 각오가 돼 있다’고 말했는데.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미 협상에서 다양하게 쓸 카드를 더 쥐여준 것이다. 미국이 북-미 협상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 대통령의 제안은 북-미 관계 개선과 비핵화 진전을 신성장동력 창출의 계기로 삼아서 번영하는 한반도라는 미래 비전을 실천하겠다는 것으로 본다. 이번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연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철도·도로 연결 사업 등의 물꼬가 트이길 기대한다.”
suh@hani.co.kr
김창수 사무처장은 누구?
김창수 사무처장은 통일맞이,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한반도평화포럼 등 시민사회에서 오랫동안 통일운동 활동가로 일해왔다. 1994년 문익환 목사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문 목사의 곁을 지키며 민간 통일운동의 저변을 넓히는 데 많은 역할을 했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3년 2월부터 2006년 4월까지 청와대 안보정책수석실 행정관을 역임했고,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뒤 조명균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으로 다시 공직에 들어왔다. 민간과 공직을 오가며 남북관계와 관련해 풍부한 경험을 쌓은 전문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