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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만에 밝혀진 가짜 독립운동가 집안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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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10-01 14:59 조회7,94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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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가짜 독립운동가 김정수 일가 고발한 김세걸씨

[오마이뉴스 김경준 기자]

 
 가짜 독립운동가 김정수 일가의 실체를 밝혀낸 김세걸씨
ⓒ 김경준
최근 국가보훈처(처장 피우진)는 가짜 독립운동가 의혹이 제기된 김정수 일가(김낙용·김관보·김병식)에 대해 '서훈 공적이 거짓으로 밝혀졌다'는 사유를 들어 서훈 취소 결정을 내렸다. 김정수 일가에 대한 의혹 제기가 이뤄진 지 꼭 20년 만이다(관련기사: 국가보훈처, 가짜 독립운동가 4명 서훈 취소).

김정수 일가는 그동안 김정수(1909~1980)를 비롯해 할아버지 김낙용(1860~1919), 큰아버지 김병식(1880~미상), 아버지 김관보(1882~1924), 사촌 동생 김진성(1913~1950) 등이 모두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으면서 3대에 걸친 독립운동 가문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보훈처의 이번 결정으로 그동안의 공적이 모두 거짓이었음이 밝혀졌다.

사건의 전모가 밝혀질 수 있었던 것은 20년간 진실을 바로잡기 위해 싸운 한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바로 독립운동가 김진성(1914~1961) 선생의 아들 김세걸(71)씨다. 그는 김정수 일가의 가짜 독립운동 의혹을 처음 제기한 장본인이다.

강산이 바뀌어도 두 번이나 바뀌었을 긴 세월 끝에 진실이 밝혀진 지금, 그는 어떤 심경일까. 추석을 앞둔 지난 9월 23일, 서울 노원구 자택에서 김씨를 만나 그간의 과정과 소회를 물었다.
 2018년 8월 27일자 대한민국 관보에 실린 '독립유공' 정부포상 취소 명단. 그동안 가짜 독립운동가 의심을 받아오던 김정수 일가에 대해 '서훈 공적이 거짓으로 밝혀짐'에 따라 서훈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 대한민국 전자관보
보훈처 직원의 황당한 답변

"좀 늦긴 했지만 기쁘죠. 20년 만이라는 사실이 아쉽긴 합니다만..."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소식이었지만 김씨의 표정과 말투는 덤덤했다. 진작 이뤄졌어야 할 조치였건만 무려 20년을 끌었다는 사실이 허탈한 듯했다. "보훈처가 왜 이리 질질 끌었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는 "보훈처 공무원들의 책임감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실제로 그는 지난 1998년 4월 김정수 일가의 가짜 의혹을 처음 제기한 이래 20년간 보훈처에 시정을 요구해 왔다. 하지만 보훈처의 담당 공무원은 그때마다 늘 '검토 중'이라며 시간 끌기에만 급급했다고 한다.

답답했던 김씨는 국사편찬위원회 등을 찾아다니며 김정수가 가짜라는 증거를 찾아내 들이밀기까지 했다. 하지만 담당 공무원은 "어떻게 그런 자료를 모으셨냐"며 "나는 머리가 나빠서 잘 못 찾겠다"는 황당한 답변까지 늘어놓았다고 한다. 그렇게 복지부동이던 보훈처로부터 20년 만에 받아낸 답변이기에 이번 결정은 김씨에게도 매우 값지다.

부친 대신 현충원에 누워 있던 가짜 독립운동가

김씨가 가짜 독립운동가 김정수의 실체를 알게 된 것은 부친의 공적을 가로챈 '가짜 김진성'을 추적하는 과정에서였다.

1988년 중국 심양에서 군의관 생활을 하던 김씨는 어느 날 노래방에 갔다가 반주 화면에 등장한 현충원 묘역 영상에서 부친의 이름을 새긴 묘비명을 발견했다. 보훈처에 사실 확인을 요구한 결과, 보훈처에서는 '부친과 함자가 똑같은 동명이인'이라고 답변해왔다. 보훈처의 답변이 석연치 않았던 김씨는 1992년 한중수교가 이뤄진 이듬해인 1993년 직접 한국으로 건너와 문제의 묘지를 확인했다.

묘비에 적힌 가짜 김진성의 행적은 생몰연대만 다를 뿐 부친의 공적과 거의 동일했다. 의심을 확신으로 굳힌 김씨는 부친이 진짜 김진성임을 증명하는 증거들을 모아 보훈처에 시정을 요구했다. 결국 1998년 가짜 김진성의 묘는 파묘되고 그 자리에 부친의 유해가 이장됐다.
 1998년 7월 31일,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있던 가짜 김진성의 묘를 파묘하고 부친 김진성 선생의 유해를 안장한 직후 촬영한 가족사진
ⓒ 김세걸
 김세걸씨의 집 거실에 걸려있는 부친의 훈장과 사진들
ⓒ 김경준
부친의 명예는 뒤늦게 회복됐지만, 김씨는 이대로 넘어갈 수 없었다. 부친의 명의로 훈장과 보훈연금을 부당 수령한 가짜 김진성의 유족으로부터 훈장과 연금을 회수해와야만 했다. 보훈처에 확인한 결과, 수령인은 딸 김재원(살아 있다면 현재 74세)으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미 행방불명되어 연금 지급이 끊긴지 오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포기할 수 없었던 김씨는 수소문 끝에 묘역을 관리하던 직원으로부터 결정적인 제보를 받았다. 가짜 김진성의 묘역에 제사를 지내러 오던 후손들이 바로 옆에 위치한 김정수의 묘역에서도 제사를 지내더란 것이었다. 김정수의 묘역을 찾은 김씨는 가짜 김진성의 묘비에 조카로 기록되어 있던 이름들이 김정수의 묘비에는 아들로 기록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가짜 김진성과 김정수는 사촌형제였던 것이다.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위치한 가짜 독립운동가 김정수의 묘(181번 묘)
ⓒ 김경준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위치한 가짜 독립운동가 김정수의 묘비 뒤에 적힌 공적 사항. 독립운동가 김정범의 공적과 매우 흡사하다. 김정수의 아들로 기록된 이름들은 1998년 파묘 전까지 가짜 김진성의 묘비에 조카로 기록되어 있었다고 한다.
ⓒ 김경준
독립운동가 김정범의 공적을 가로챈 김정수

그때부터 김씨는 김정수의 실체에 대해 추적하기 시작했다. 김정수는 일제강점기 당시 만주 지역의 대표적인 항일조직 참의부에서 활동한 공로로 1968년 건국훈장 애국장(현 독립장, 3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김씨는 김정수의 공적으로 기록된 사실들이 독립운동가 김정범(1889~미상)의 공적과 매우 흡사함을 발견했다.

이에 대해 김정수 측은 "김정범이라는 이름은 독립운동하던 당시에 쓰던 다른 이름"이라며 동일 인물임을 주장했다. 하지만 김씨는 김정수와 김정범, 두 사람이 명백히 다른 인물임을 밝혀냈다.

우선 일제 당시의 기록을 살펴봐도 김정범이 김정수란 이름을 썼다는 근거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 또 김정수와 김정범의 나이 차이는 무려 10살 이상인 데다가(김정수는 1909년생, 김정범은 1899년생) 원적 역시 김정범은 '평북 초산'이지만 김정수는 '평북 영변'이다.

결정적인 증거는 사진과 지문이다. 남아있는 김정수와 김정범의 사진을 같이 놓고 비교해 보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생김새가 다르다. 두 사람의 지문 역시 대조해 본 결과 다른 사람으로 판명됐다고 한다.
 <동아일보> 1933년 2월 8일자 '참의부원 김정범 공판' 기사. 이 기사에 '김정수'라는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심지어 사진 속 인물과 김정수의 사진은 생김새가 전혀 다르다. 하지만 보훈처는 김정수가 김정범이라는 이명으로 활동했다는 주장을 받아들여 서훈했다.
ⓒ 김세걸
 가짜 독립운동가 김정수(왼쪽)와 실제 독립운동을 한 김정범(오른쪽)의 비교 사진. 얼굴 생김새와 출신지, 나이, 옥고를 치른 형무소 등이 모두 다르다. 하지만 보훈처는 <동아일보> 1933년 2월 8일자 기사를 근거로 두 사람에게 각각 3등급 독립장(1968년), 4등급 애국장(2009년)을 수여했다. 한 사람의 공적으로 두 사람에게 이중 포상을 한 셈이다.
ⓒ 김세걸
이러한 근거를 바탕으로 김씨가 문제제기를 하자 보훈처는 2009년 김정범에게 애국장(4등급)을 수여했다. 한 사람의 공적을 놓고 두 사람에게 이중포상을 한 것이다. 한 사람은 가짜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보훈처는 왜 이런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인 걸까.

"표면적으로는 김정수의 후손들에게도 소명할 기회를 줘야 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내가 김정수가 가짜라는 증거를 다 찾아서 제출했음에도 저런 행보를 벌인 건 무능하다고밖에 볼 길이 없습니다."

보훈처, 의지만 있으면 김재원의 행방 찾을 수 있어

김정수의 할아버지 김낙용(독립장), 큰아버지 김병식(애족장), 아버지 김관보(독립장) 역시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은 상태였다. 김씨는 그들에 대해서도 "실존 여부 자체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김진성과 김정수 두 사람이 모두 가짜임이 밝혀진 마당에 증거도 없는 다른 일가들의 공적 역시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이들에 대해서도 전면 재조사를 벌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김정수 일가의 족보 가짜 독립운동가 김정수 일가의 족보. 김정수 본인 뿐만 아니라 할아버지 김낙용, 아버지 김관보, 큰아버지 김병식, 사촌동생 김진성 3대가 서훈을 받았다. 현재 김진성의 딸 김재원은 '소재불명'이고 김정수의 자녀들은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이라고 한다.
ⓒ 김세걸
김정수 일가의 독립유공자 등재를 누가 주도했는지는 현재까지 밝혀진 바 없다.  김정수는 죽은 지 한참 됐고, 그 후손들 역시 연락을 받지 않는 상황이라고 한다.

김씨는 "김정수의 후손들을 직접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며 "분명 사촌인 김재원의 행방에 대한 단서도 그들은 알고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아울러 김씨는 보훈처가 의지만 있으면 김재원의 행방을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 때가 어느 때인데 사람 하나 못 찾는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죽었으면 죽었다고 기록이라도 남았을 텐데, 여전히 소재 불명이라고 하니까요. 분명 보훈처 내부에는 기록이 있을 거 같은데..."

아직도 넘어야 할 산 많이 남아

김정수 일가에 대한 서훈 취소가 이뤄졌지만, 김씨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그는 '가짜 독립운동가 김정수 묘역 파묘', '김정수 일가의 유족들이 받아간 보훈연금과 훈장의 회수', '보훈연금을 부당 수령한 유족들에 대한 법적 처벌', '김정수에 대한 모든 국가기록 삭제', '가짜 김진성의 딸 김재원이 받아간 훈장의 회수', '김정수 일가의 행적에 대한 전면 재조사' 등 후속 조치들이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김정수 일가에 대한 서훈은 취소됐지만 훈장은 회수하지 못한 상황이다. 김씨는 이들에게 주어진 훈장을 압수수색을 통해서라도 회수해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이지만, 보훈처로부터 "그렇게 하긴 힘들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했다. 김씨는 "도대체 보훈처가 일을 할 생각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보훈처가 김정수의 유족들에게 이장 안내를 했다고는 하지만,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강제로 파묘할 법적 권한은 없다고 한다. 유족들이 자발적으로 이장을 할 때까지 두 손 놓고 기다려야만 하는 현실인 것이다.

귀화한 그에게 돌아온 건 조국의 멸시와 냉대였다

김씨의 기억 속에 부친 김진성은 자상했지만 늘 병약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독립운동을 하다 일제에 붙잡혀 옥고를 치르면서 몸이 망가졌기 때문이다. 젊은 아버지는 눈을 감으며 어린 아들에게 "커서 꼭 의사가 되어라, 그리고 중국에서 사는 게 힘들면 조선으로 돌아가라"는 유언을 남겼다.
 1960년에 촬영한 김세걸씨의 가족사진. 맨 뒤에 안경을 쓴 이가 독립운동가 김진성 선생이며, 앞줄 맨 오른쪽에 서 있는 아이가 김세걸씨다.
ⓒ 김세걸
아버지의 바람대로 김씨는 중국에서 인민해방군 군의관으로 복무하며 대령까지 진급하는 등 엘리트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1997년 조국인 대한민국으로 귀화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조국으로 돌아온 그에게 돌아온 것은 멸시와 냉대였다. 가짜 독립운동가 문제를 제기한 그에게 보훈처 공무원들이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인정해주고 귀화시켜줬으면 됐지 뭘 더 요구하느냐'는 식의 태도로 나오는 바람에 심한 굴욕감을 느끼기도 했단다.

그는 현재 기초생활수급자 신세다. 모친 앞으로 나오는 보훈연금과 자신이 받는 기초생활수급비, 그리고 아내가 남의 집 애를 봐주면서 벌어들이는 수입으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얼마 전까지 택배 상하차 노동까지 했지만, 최근 탈장수술을 받으면서 경제 활동에 나서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조국에서 맛본 심한 무력감과 굴욕감은 그를 지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가 20년 동안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부친의 명예회복을 위한 신념과 그를 물심양면으로 도운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래 나는 공산당이었지만 한국에 와서 예수당이 됐습니다. 내가 다니던 '사랑의교회'에서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죠. 가짜 김진성 공훈록을 내놓으라고 해도 모르쇠로 버티던 보훈처를 움직인 것도 모두 교회 사람들이 힘써준 덕분이었습니다."

가짜 독립유공자 문제 해결 위해 정부가 나서야

김씨는 보훈처를 여전히 불신하고 있지만, 그래도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희망을 보았다고 한다. 보훈처가 20년 만에 서훈 취소라는 전격적인 결정을 내린 것도 보훈 문제에 의지를 가진 대통령이 나섰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것. 그는 정부가 좀더 의지를 갖고 가짜 독립운동가 문제 해결을 위해 앞장섰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냈다.

"문재인 대통령이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이 더이상 안 통하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잖아요.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보훈처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유족들 입장에선 무척 고마운 일인데 기왕이면 가짜 독립유공자 문제에 대해서도 신속하고 올바른 해결을 해주었으면 합니다. 현재 현충원에 가짜 독립유공자로 밝혀진 이들이 66기나 된다고 하는데 언제까지 방치할 겁니까. 이런 건 정부가 의지를 갖고 나서야 합니다."

김씨는 지금도 부친이 옥고를 치렀던 서대문형무소에 갈 때마다 아버지의 고생이 상상되어 눈물이 쏟아진다고 했다. 그가 이 싸움을 포기할 수 없는 까닭이다.

김씨와의 인터뷰를 마친 후, 곧바로 현충원으로 향했다. 애국지사 묘역에 위치한 문제의 181번 묘에는 여전히 김정수라는 이름 석 자가 또렷하게 새겨진 비석이 우뚝 서 있었다. 가짜 독립운동가 김정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잠들어 있었다.
 부친 김진성 선생의 서대문형무소 수감 당시 사진을 가리키는 김세걸씨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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