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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퇴근 뒤 쇼핑·회식…가로등 켜자 평양의 밤이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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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1-14 10:14 조회3,69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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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퇴근 뒤 쇼핑·회식…가로등 켜자 평양의 밤이 깨어났다

 

우리가 알고 싶은 북한 2 평양의 달라진 밤 풍경
북 전력난으로 정전 일상화
김정은 발벗고 나선 ‘도시 미화’
전력시설 복구하고 가로등 켜니
야시장과 함께 밤 문화 생겨나
대북 제제로 석탄 수출 막히자
집집마다 태양광 패널로 ‘자가 발전’
평양시 모란봉구역 개선문 근처 ‘개선청년공원’ 앞 매대에서 시민들이 대동강맥주, 룡성맥주, 평양주 등의 술과 말린 명태, 소시지, 과자류의 간단한 안주를 곁들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진천규 <통일티브이> 대표 제공
평양시 모란봉구역 개선문 근처 ‘개선청년공원’ 앞 매대에서 시민들이 대동강맥주, 룡성맥주, 평양주 등의 술과 말린 명태, 소시지, 과자류의 간단한 안주를 곁들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진천규 <통일티브이> 대표 제공
‘김정은 시대’ 이전 북한의 밤은 ‘암흑시대’였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집권 뒤 가로등을 켜라고 지시했다. 컴컴하던 도시의 밤이 밝아지자, 밤 문화가 생기고 삶이 바뀌었다. 사람들은 밤에 거리로, 시장과 식당, 오락시설로 나왔다. 가로등 아래서 연인과 친구를 만나고,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장을 본다. 많은 북한 주민에게 ‘난생처음’ 해보는 일들이다.

 

“저도 그렇고 많은 탈북자들도 북한에서의 기억은 ‘24시간 정전’의 일상화였다. 정전이 계속되고 몇달에 한번씩 전기가 들어오기도 했다. 저녁이 되면 할 일도 없었다. 이런 삶을 살던 사람들에게 김정은 집권 뒤 전기가 들어오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지방 소도시에서도 밤에 노래방, 당구장, 오락기계장(오락실)이 문을 열고 평양에서는 볼링장, 탁구장도 영업한다. 주민들이 삶이 나아짐을 생생하게 체감하고 기대하게 됐다.” 탈북자 출신 북한·분단 연구자인 주승현 인천대 교수의 얘기다.

 

최근 평양에서 온 20대 탈북자는 “전기 상황이 좋아져 평양시내에는 집집마다 하루 22~23시간은 전기가 들어온다. 이전에는 가로등도 없고 치안도 나빠 밤거리에 인적이 끊겼는데, 김정은 시대 이후 가로등도 다 켜지고 밤에는 기동순찰대가 순찰을 돌아 새벽 1~2시까지 돌아다녀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변화한 풍경을 전했다. 그는 “평양 시민들 사이에 김정은 지지가 꽤 높다. ‘확실히 젊은 지도자라서 다르네’ 그런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집권 초기부터 ‘사회주의 문명국’이라는 목표를 제시하고, 도시 미화 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했다. 집권 초반 현지시찰을 다니며 공원에서 직접 잡초를 뽑아 들고 책임자들을 질타했고, 잔디연구소를 만들어 잔디 품종개량을 지시할 정도로 열정을 쏟았다. 도시 미화 사업이 본격화하면서 2014년 무렵부터 주요 도시마다 ‘1호 도로’로 불리는 주도로를 중심으로 밤마다 가로등이 켜졌다. 밤이 밝아지자 역 앞에는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야시장이 형성됐고, 작은 달구지를 끌고 나와 휴대용 조명을 설치해 물건을 파는 노점상들의 행렬이 생겨났다. 밤에 시장을 둘러보고 수다도 떨고 거리에서 맥주도 마시고, 가로등 불빛 아래서 얘기도 하고 데이트도 한다.

 

평양시 모란봉구역 개선문 근처 ‘개선청년공원’ 입구 분수대에서 젊은이들이 청량음료를 마시며 데이트를 하거나 스마트폰을 보며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진천규 <통일티브이> 대표 제공
평양시 모란봉구역 개선문 근처 ‘개선청년공원’ 입구 분수대에서 젊은이들이 청량음료를 마시며 데이트를 하거나 스마트폰을 보며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진천규 <통일티브이> 대표 제공
가로등은 암울했던 도시들을 ‘희망의 나라로’ 바꿔주는 불빛이자 ‘개인 공간’의 탄생을 의미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이런 변화가 “도시를 꾸민다는 차원을 넘어서 주민들의 일상생활을 바꾸는 작업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전까지 북한 사람들의 공간은 조직, 단체, 직장 등에만 있었다. 개인적 공간이라고 해봐야 청소년들이 강둑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는 식의 비밀 공간밖에 없었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김정은 시대 이후 등장한 밤의 물리적 공간을 주민들은 새로운 일상 문화를 만드는 공간으로 활용했다. 이제 밤거리, 시장, 식당에서 익명성을 가질 수 있는 개인의 공간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과거에는 직장과 집, 소속된 단체를 오가던 사람들에게 일상의 공간이 생겼다”는 것이다.

 

‘밤의 변화’는 김정은 시기 전력 사정의 획기적 개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변화다.

 

1990년대 중반 김정일 시대에 경제난이 심각해지면서 전력 시설을 비롯한 국영 시설들이 거의 망가졌다. 홍민 실장은 “주민들이 황해제철소 시설을 다 뜯어가자 당국이 탱크를 동원해 막다가 소요가 일어나기도 했다. 전력 시설도 망가졌다. 지방 도시에 있던 중소형 발전소들은 다 방치됐고, 수리할 능력도 인프라도 없었다”고 설명한다.

 

김정은 시대 들어 시장화가 진전되자 국가도 시장에서 벌어들인 재원을 전력 복구에 투입했다. 국가가 전력 생산에 다방면에서 관심을 쏟았다. 북-중관계가 회복되면서 중국이 평양 근교에 갈탄화력발전소를 지어주는 등 중국의 지원이 전력난 해소에 도움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대북 제재로 석탄 수출이 금지되자 국내 화력발전에 석탄을 대거 투입한 것도 역설적으로 전력난 해소에 도움이 됐다.

 

‘태양광 붐’도 주요 동력이었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 전세계 태양광 패널 가격이 폭락하자 중국 업체들이 남아도는 태양광 패널을 북한에 헐값으로 팔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제 평양시내에는 태양광 패널을 달지 않은 집이 거의 없다고 탈북자들과 전문가들은 전한다. 주승현 교수는 “처음에는 중국산을 수입했는데 분해해보니까 너무 쉽게 만들 수 있어서 이제는 북한 내에서 많은 태양광 패널을 생산한다. 사정이 좋지 않은 집도 태양광 패널 한개는 달고, 잘사는 집은 패널 6개씩도 설치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주체사상탑 전망대에서 본 평양의 야경. 가운데 온 건물을 초록빛 조명으로 밝힌 건물이 105층 ‘류경호텔’ 이다. 북녘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다. 왼쪽 기와지붕의 건물은 ‘인민대학습당’이고 오른쪽 아파트 단지가 ‘창전거리’ 살림집이다. 진천규 <통일티브이> 대표 제공
지난해 6월 주체사상탑 전망대에서 본 평양의 야경. 가운데 온 건물을 초록빛 조명으로 밝힌 건물이 105층 ‘류경호텔’ 이다. 북녘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다. 왼쪽 기와지붕의 건물은 ‘인민대학습당’이고 오른쪽 아파트 단지가 ‘창전거리’ 살림집이다. 진천규 <통일티브이> 대표 제공
결국 북한의 전력난도 ‘시장의 발전’이 해법이 된 것으로 보인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김정은 시대 들어서도 국가가 공급해주는 전력은 크게 늘지 않았지만, 민간의 자가발전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기업들도 배터리 등을 수입해 자가발전을 하고, 집집마다 태양열 패널이 엄청나게 늘어나는 등 자체 전력 생산이 늘었다. 먹고사는 부분뿐 아니라 에너지도 시장을 통해 해결한 것”이라고 짚었다.

 

1987년 착공해 동구권 붕괴와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며 2011년에야 외장 공사를 끝낸 평양시내 류경호텔 외벽에는 지난해부터 10만개가 넘는 엘이디(LED)전구가 설치돼 밤마다 그림과 구호 등으로, 상전벽해한 평양의 밤을 밝히고 있다.

 

박민희 노지원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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