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한 비건 “폼페이오 지시받아”
미국 시민 북 여행금지 재검토
북 협상장으로 부르는 유인책
전문가들 “긍정적 신호는 분명”
북이 호응할지 여부는 미지수
미국 시민 북 여행금지 재검토
북 협상장으로 부르는 유인책
전문가들 “긍정적 신호는 분명”
북이 호응할지 여부는 미지수
미국의 대북 실무협상을 이끄는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19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인천공항/연합뉴스
19일 방한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하면서 기자들과 만나 “다음주 워싱턴에 돌아가면 민간 및 종교단체의 대북 인도지원에 대한 미국의 정책을 재검토하라는 지시를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으로부터 받았다”며 “내년 초 미국의 (대북 인도)지원단체들과 만나 적절한 (대북) 지원을 더욱 확실히 보장할 방법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비건 특별대표는 또 엄격한 대북제재로 인한 지원의 지연 등 인도지원단체들의 우려를 짚으며 “미국 시민이 지원물품을 전달하고 국제적 기준의 검증을 위해 북한을 여행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재검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정부는 북한에서 송환 직후 숨진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건을 계기로 지난해 9월부터 미국 시민의 북한 여행을 금지해왔다. 최근 대북 제재·압박을 강화하면서 트럼프 행정부는 인도지원 활동가들의 방북까지 불허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미국의 대북제재 규정은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 지원 자체를 명시적으로 막는 조항을 두고 있지 않다. 재무부 해외자산통제실의 ‘일반허가’ 규정에는 인도주의 지원 엔지오(NGO) 활동 관련 음식 등 ‘서비스’ 제공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제재 심사 기간을 장기화하는 등의 방법으로 북한에 인도주의 물품 반입을 막아왔다. 김광길 변호사는 “미국이 독자제재 가운데 인도주의 지원처럼 법적으로는 허용돼 있는데 정치적으로 지지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며 “이제 정치적으로 승인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메시지는 북-미가 비핵화 및 상응조처에 대한 접점을 찾지 못하고 표류하자 북한을 다시 협상장으로 불러들이기 위한 유인책으로 보인다. 김연철 통일연구원장은 “수준과 관계없이 신뢰 구축 조처를 검토할 수 있다는 것 자체는 긍정적인 메시지다. 여행금지 조처와 관련해 선별 허용을 시사한 대목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이 대북제재에 대해 초보적인 수준이라도 신축적인 검토가 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했다는 것이다.
다만 북한이 요구해온 유엔 대북제재의 해제 조처는 아니며, 미국이 “비핵화까지 제재 유지”라는 기존의 입장을 손상시키지 않고도 취할 수 있는 초보적 유화 제스처로 풀이된다.
북한이 미국의 ‘손짓’에 화답할지는 미지수다. 다수의 전문가는 미국의 이번 메시지가 긍정적인 것은 틀림없지만 북한을 협상장에 나오게 할 만큼 강력한 카드인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소장은 “북한은 제재가 적대시 정책의 표상이라고 보기 때문에 제재 완화에 대한 강력한 조처가 포함되지 않으면 움직이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이제 북-미 고위급 회담에 나와 추가 비핵화 조처와 미국의 추가 상응조처를 논의하자며 북한에 공을 넘긴 것”이라고 짚었다.
일각에서는 비건 특별대표의 발표가 “국내정치적 리액션”이라며 지나친 의미 부여를 경계했다. 미국 내에서 인도적 지원까지 틀어막은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불만이 높은 데 대한 반응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한 외교소식통은 “대북 협상과 관련한 (미국의) 자발적 조처, 제스처로 보기 어렵다”며 “북에 선심 쓰듯이 해서는 진전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번 한-미 협의가 녹록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던 외교부 쪽에서는 비건 특별대표의 메시지를 “굉장히 좋은 징조”라며 “북쪽에서도 반드시 신호를 읽을 것으로 본다”고 관측했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한-미 협의에서) 남북관계에서 대북제재를 유예나 면제할 수 있느냐가 관건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비건 대표는 22일까지 한국에 머물며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워킹그룹 회의 등을 한다.
김지은 이제훈 박민희 기자 mira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