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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은행의 평양지점 상상하며 ‘금융용어’ 짝짓기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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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10-11 11:24 조회12,16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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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은행의 평양지점 상상하며 ‘금융용어’ 짝짓기했죠”

등록 :2018-10-10 18:49수정 :2018-10-10 19:18

[짬] ‘금융인 북한학 박사 1호’ 김희철 연구위원

 

‘금융인 북한학 박사 1호’인 김희철 북한연구소 연구위원. 사진 박수지 기자
‘금융인 북한학 박사 1호’인 김희철 북한연구소 연구위원. 사진 박수지 기자
남북간 금융교류가 가능해졌다고 상상해보자. 남쪽 은행의 평양지점에서 고객에게 “수표에 서명해달라”고 요청하면 갸우뚱해 할지도 모른다. 남쪽에서 쓰는 ‘수표’(手票)를 북한에서는 ‘행표’(行票)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대신 북에서 통용되는 ‘수표’는 남쪽에서 쓰는 ‘서명’을 의미한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북한 사람들에겐 “수표에 서명해달라”는 말이 “서명에 서명해달라”는 이상한 말로 들릴 수 있다는 얘기다.

 

올해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으로 경제협력(경협)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국내 주요 금융기관에서도 ‘북한 공부’에 여념이 없는 가운데, ‘은행맨’ 출신 북한학 박사가 남북 금융 용어를 비교·설명한 책 <남북경제 금융상식용어 해설>(수류책방)을 펴냈다. 경협과 금융교류에 앞서 우선 서로의 언어부터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지난 2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김희철(55) 북한연구소 연구위원은 “이 책이 경협에 관심이 많은 국내 금융기관 종사자들과 기업인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한다”라며 “경협이 본격적인 궤도에 들어서면 북쪽에서도 읽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남북경제 금융상식용어 해설’ 펴내
남한 162개·북한 148개 용어 풀이
‘수표-행표’ ‘서명-수표’ 쓰임새 차이
“경협 활발해져 북에서도 읽혔으면”

 

 

국민은행 지점장 출신 ‘27년 은행맨’
“탈북민 위한 ‘금융 상식’ 부록으로”

 

 

김 연구위원은 지난 2016년 케이비(KB)국민은행 서울 장안동 지점장을 끝으로 27년 은행맨 생활을 마쳤다. 2012년 동국대에서 북한학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금융인 출신 1호 북한학 박사’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가 일해온 배경과 전혀 다른 학위를 취득한 배경엔 은퇴 이후 인생에 대한 고민과 평안남도 강서 출신 실향민인 부모의 영향이 컸다.

 

책은 예금·대출·전자금융·보험 등 10개 분야로 나눠 남북이 쓰는 금융용어를 풀어냈다. 김 연구위원은 책을 쓸 때 북한에서 펴낸 <재정금융사전>과 <경제사전>을 수십차례 읽으며 기초자료로 삼고, 해당하는 우리말을 잇는 방식으로 썼다고 설명했다. 그는 “은행 실무를 30년 가까이 경험한 덕분에 낯선 북한 금융용어를 우리말로 풀이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북한의 재정금융사전에서 ‘은행이 일정 기간에 이뤄진 예금돈자리의 입·출금정형을 정해진 기간마다 만들어 예금자에게 대조 확인할 수 있게 하는 문건’이라고 설명해놓은 ‘계시서’를 읽으며, 곧장 남쪽의 ‘거래내역 확인서’를 떠올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책에 나온 북한의 금융용어를 보다 보면, 대체로 한자 표현이 많은 우리와 비교하면 입말을 살린 용어가 눈에 띈다. 예를 들어 장부상으로만 자금을 청산하는 결제를 ‘상계’라고 하는데, 북에서는 이를 ‘맞비비기결제’라고 쓴다. ‘입금거래’와 ‘대부업’을 북한에서 각각 ‘돈넣기’와 ‘돈놀이’로 표현해 직설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이런 방식으로 남북의 금융용어를 정리한 낱말은 모두 310개다. 남한 용어 162개, 북한 용어 148개로 남한 용어가 더 많은 셈이다. 완전한 일대일 대응이 되지 않는 이유는, 남한에서는 쓰는 금융용어지만 북한에는 개념조차 없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방카슈랑스’다. 은행과 보험사가 협력해 제공하는 금융서비스를 가리키는 단어인데, 사실상 금융시장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려운 북한에서는 이를 북한식으로 바꾼 문서상 용어조차 없는 것이다. 물론 북한은 주식시장이 없지만 ‘우량주식’을 개념상 ‘청색주식’으로 정리해두기도 했다. 김 연구위원은 “실제로는 북에서 쓰지 않는 단어이지만 외국 사전과 자료를 참고해 ‘사전적 용어’를 만들어 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추첨제 저금’과 같은 우리에게 없는 개념의 용어도 있다. 추첨제 저금은 은행이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 대신 추첨을 통해 당첨을 맞은 사람에게만 당첨금을 지급하는 저금을 가리킨다. ‘로또식’ 저금인 셈이다.

 

김 연구위원은 이 책의 1차 독자로 상정한 대상은 국내 금융기관 종사자들이지만, 국내 금융기관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탈북민들에게도 도움이 되길 기대했다. 그는 “북쪽에서 온 친구를 한번 만나기로 했는데 처음 가입한 은행 지점에서만 항상 거래해야 하는 줄 알고 약속에 늦게 나온 적이 있었다”며 “사소한 은행 이용법도 모르고 있는 친구를 보고 은행맨으로서 일종의 사명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탈북민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금융기관의 업무와 대출 상환 및 이자 계산을 하는 방법 등을 설명해둔 두꺼운 부록도 정리해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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