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대담 l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이종석 전 통일장관
“남북정상 담판 통해 한반도 평화 새 동력 불어넣을 필요”
“남북정상 담판 통해 한반도 평화 새 동력 불어넣을 필요”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왼쪽)와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6일 서울 마포구 신촌로길 김대중도서관에서 대담을 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와 이종석(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전 통일부 장관이 6일 <한겨레> 대담에서 제시한 교착 조짐을 보이는 한반도 정세의 해법이다. 다만 문 특보는 ‘동시 교환’을, 이 전 장관은 ‘종전선언으로 신고·사찰 견인’을 방법론으로 제시해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이 전 장관은 “미국은 여론에 밀려 비핵화 조급증을 내고 있다”며 “‘북한’과 관련해 목표가 뭔지, 비핵화를 성취하려면 어떤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하는지, 무엇이 진정으로 비핵화에 도움이 되는지 자기 정리가 시급하다”고 짚었다. 문 특보는 “북한은 미국과 국제사회의 핵심 관심사인 ‘현재 핵’과 관련한 신고·사찰에 성의를 보여 한국·중국·러시아가 (제재 해제 등과 관련해) 미국을 설득할 공간을 열어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북-미가 역지사지”(이 전 장관)해 “신뢰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문 특보)는 것이다.
문 특보와 이 전 장관은 종전선언 문제가 최근 정세의 가장 뜨거운 쟁점이자 걸림돌이 되고 있지만 “올해 안 종전선언은 여전히 필요하다”고 짚었다. 그 구체적 방법론으로 “중국을 포함한 4자 종전선언 추진이 바람직하다”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초대해 비핵화와 종전선언 문제에서 촉진자 역할을 주문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문 특보와 이 전 장관은 현 정세의 특징을 남·북·미 정상의 ‘새로운 어법’을 따라가지 못하는 협상 담당 고위 관료들의 ‘낡은 어법’(구태·관성)에 따른 갈등 국면으로 진단했다. 아울러 북-미 정상회담을 이끌어내는 데 크게 기여한 ‘문재인 이니셔티브’의 소진되는 듯한 동력을 되살려야 한다며, 5·26 판문점 정상회담과 같은 ‘원포인트 회담’을 8월말께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대담은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김대중도서관에서 3시간 남짓 진행됐다. 진행은 이제훈 통일외교팀 선임기자가 맡았다.
사회 현재 한반도 정세의 성격과 특징을 큰 틀에서 짚어보면?
이종석(이하 이) 역사의 눈으로 거시적으로 보면 짧은 시간에 거대한 전환이 있었다. 한반도에서 이른바 ‘핵 문제’를 둘러싸고 발생한 갈등·대결 국면이 명확하게 해결과 평화 국면으로 전환했다. 다만, 구조와 현실 사이에 긴장이 있다. 문 대통령, 김정은 위원장,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강조한 새로운 인식·접근·해결의 틀과 관련한 협상의 관행이 아직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구태가 작용해 삐걱거리는 측면이 있다. 시간이 가며 조절되리라 본다. 문 대통령의 의지와 결단이 정세를 여기까지 끌고 오는 데 큰 구실을 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문재인 이니셔티브’의 동력을 잃고 있는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 한국이 북-미 사이에서 의미 있는 존재로 느껴져야 하는데, 최근 그렇지 않은 듯한 일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 우리의 역할을 강화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문정인(이하 문) 총론은 좋은데 각론이 문제다. 현 정세의 문제는 총론을 구체적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상들이 정치적 결단으로 총론의 방향과 흐름을 잘 잡았다. 그런데 그 아래 장관을 포함한 실무 협상 담당자들이 관료적 이해, 과거의 관성에 사로잡혀 있다. 북·미 모두 그렇다. 최근 미국 <뉴욕 타임스>가 ‘트럼프 대통령은 총론에서 대화하겠다고 하는데,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존 볼턴 안보보좌관 등은 각론에서 딴지를 건다’고 짚었는데, 상당히 일리 있는 진단이다. 북쪽도 김정은 위원장은 한·미 정상을 만나 새로운 어법을 구사하는데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 등 협상 담당자들은 과거의 어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데, 지금은 디테일이 관료다. 특히 미국 관료들.(웃음)
현재 한반도 정세 진단은
이 “짧은 시간에 평화국면 전환…북미 사이 한국 역할 강화 절실”
문 “정상들의 총론, 실무서 삐걱…협상 구체화 단계서 갈등 발생”
사회 6·12 센토사 합의 이행의 방법과 순서 등을 놓고 북-미 사이 이견이 도드라진다.
이 구조적인 측면에서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보다 여유가 있는 상황이다. 지금까지는 트럼프 대통령이 얻은 게 훨씬 많다. 김 위원장이 정말 원하는 것은 경제다. 달리 말하면 대북 제재 해제다. 체제 보장만이 목표라면 핵을 들고 있으면 그만이다. 김 위원장은 궁극의 목적인 경제를 얻으려면 체제 안전 보장과 비핵화 협상이 그에 선행해야 한다는 걸 안다. 그래서 제재 해제를 앞세우지 않고 핵·미사일 모라토리엄,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등의 조처를 취한 것이다. 김 위원장은 한-미 연합훈련 중단 정도를 빼고는 실물로 얻은 게 없다고 할 수 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역대 미국이 얻지 못한 것을 얻었다. 그런데도 미국에서는 정상회담이 실패했다, 공동성명이 잘못됐다는 극렬한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 이런 여론 탓에 폼페이오 장관 등 관료들이 마음이 조급해져 과거의 관성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이 오로지 비핵화 일정표 속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이유다.
현재 북-미 관계 교착의 핵심은 미국의 일방주의, 북한 버티기의 작용이다. 북-미가 공동성명 이행을 위해서 다시 합의 이행과 관련한 순서를 맞출 필요가 있다. 특히 미국은 진짜 목표가 뭔지 자기 정리가 필요하다. 예컨대 종전선언은 김정은 위원장이 의미 있는 비핵화 조처를 할 명분이 된다. 더구나 핵 포기는 북한 군부의 제도적 이익을 저해하는 것이라 군부에 줄 뭔가가 필요하다. 주민들한테 ‘종전선언으로 미국과 전쟁이 끝났으니 더는 핵무기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정당화할 수 있다. 종전선언은 미국의 협상 카드가 아니다. 비핵화를 촉진할 공동의 노력 대상이다.
문 북한은 공동성명에 명시된 ‘새로운 조미관계’의 증표가 종전선언이라고 얘기한다. 지금까지는 제재 해제 문제는 얘기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종전선언을 하면 그에 따라 비핵화 조처를 취할 것이고, 그러면 중국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제재 (부분)해제 결의안이 추진되고, 여기에 한국이 동참해 미국과 일본을 함께 설득할 수 있다고 본 것 같다. 그래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 해체,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55구 송환 등 새로운 관계 모색을 위한 제스처를 취하며 종전선언을 얘기했는데, 미국이 거부하고 있다. 그래서 갈등이 발생한다.
부시 2기 행정부 때 국무부 자문관을 지낸 필립 젤리코의 ‘핵 문제는 포괄적 평화프로세스의 맥락에서 풀어야 한다’는 제안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젤리코는 ‘동시다발, 다층적 접근·실천’을 제안한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는 핵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니 그에 얽매이지 말고 남북 문제, 한반도 평화체제, 북한의 개혁개방에 따른 에너지·경제협력, 인도적 지원, 인권 문제, 동북아 안보협력 등을 한 바구니에 담자는 것이다. 핵협상이 잘 안 풀려도 다른 것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개선하자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정부가 나름대로 잘하고 있다고 본다. 4·27 판문점 선언 2조(군사적 긴장 완화와 전쟁 위협 해소)에 따라 비무장지대 지피(GP·감시초소)를 철수하는 문제 등 상당히 전향적으로 나가고 있다. 서해 군통신선 연결과 이산가족 상봉 등 1조(남북관계 개선)에 명시된 내용도 잘하고 있다. 정부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도 조기 개소하고 판문점 선언 1·2조를 적극적으로 이행하면 남북관계가 개선될 것이고, 그러면 북-미 사이에서 역할을 할 수 있다. 비핵화에만 모든 걸 걸지 말고 의제를 다변화해 동시다발적으로 풀어가는 게 낫다. 젤리코 구상의 핵심이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가 6일 서울 마포구 신촌로길 김대중도서관에서 대담을 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이 문 선생님이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라 말씀을 조심스럽게 하시는 거 같다.(웃음) 이 국면에서 우리가 ‘문재인 이니셔티브’라고 표현한, 한국 정부가 마중물을 댔던 (정세 돌파의) 힘이 지금도 살아 있는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한국이 북한, 미국 등을 설득하려면 아이디어가 있어야 한다. 설득 과정에서 북한과 부딪히고 미국이 거부할 수도 있다. 그래도 물러서면 안 된다. 며칠 전 청와대 대변인이 ‘북은 비핵화에, 미국은 상응조처에 나서야 한다’고 공개 발언을 했는데, 지극히 온당한 말이다. 그런데 미국 눈치를 보느라 그런지 정작 부처에서는 이런 얘기가 공개적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 청와대 말고 우리 정부 어느 부처에서 이런 얘기를 했나.
우리가 대북 레버리지(협상력·설득력)를 가지려면 북-미 사이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다들 한-미 공조를 강조하는데, 우리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하다못해 10개 가운데 2~3개는 받아줘야 공조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안 된다고 하고, 그러면 우리는 단념하고, 그런 건 공조가 아니다. 우리한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강하게 지켜야 한다.
북-미 이견 어떻게 봐야 하나
문 “북, 핵 신고·사찰 성의 보여야…한·중·러가 미 설득 여지”
이 “종전선언이 비핵화 촉진…미국은 뭐가 목표인지 돌아봐야”
사회 판문점 선언 이후 100일이 지났다. 남북관계의 현재를 짚어본다면?
이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과 관련해 아직은 유엔 안보리 제재를 넘어서는 요구를 제시하지는 않고 있다. 다만 북한은 남쪽이 판문점 선언 실천을 위한 철도·도로·산림 협력 등에서 대북제재를 의식해 의제 협의에서 너무 조심스러워한다고 보고 ‘도대체 뭐 하자는 거냐’는 불만이 있는 거 같다. 이 지점에서 남북관계가 삐걱거리고 있다.
예컨대 이런 거다. 제재 탓에 정부가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사업을 지금 재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기업인들이 공단에 들어가 기계가 멀쩡한지 확인하는 정도는 할 수 있다. 그런데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며 기업인들의 방북을 승인하지 않고 있다. 금강산 지역을 활용해 비제재 분야의 교류도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미군 유해 송환과 발굴을 위해 (미국) 물자가 북에 들어가는 게 문제가 없다고 하듯이, 한반도 정세안정과 평화를 위한 남북의 협력을 위해 최소한도로 북에 들어가는 기자재에 노심초사하지 말아야 한다.
문 북쪽이 원하는 만큼은 아니지만, 미국의 압박과 제재에도 한국은 판문점 선언 1조와 2조를 살리고 있다. 3조는 비핵화와 관련돼 있다. 북한이 우리를 일방적으로 비판할 게 아니라 스스로 뭘 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유엔 회원국이다. 국제 제재라는 현실의 제약을 무시할 수 없다. 북한도 남쪽에 명분을 줘야 한다. 신고·사찰에 응해 한국이 미국·일본을 설득하고 중국·러시아와 더불어 완화 결의안 채택을 도모할 환경 조성에 나서야 한다.
사회 최근 정세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이 종전선언 문제인 듯하다. 중국 변수에 미국의 협상카드화 전략 등 사태가 점점 복잡해지는데, 바람직한 접근법은 뭐라고 보나?
문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을 ‘정치적 상징’ 정도로 이야기했다. 애초엔 트럼프 대통령도 한국전쟁을 끝내겠다고 했고, 북도 종전선언에 그렇게 큰 의미를 두지는 않은 듯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북-미가 종전선언을 어려운 과제로 만들고 있다. 미국은 해리 해리스 주한대사의 말처럼 “종전선언이 불가역적이라 조심해야 한다”고 하고, 북은 새로운 북-미 관계를 규정하는 상당히 중요한 문건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얼마 전 중국 외교부 관료를 만났는데, “종전선언은 정전협정의 법적 지위를 바꾸는 것”이라고 짚고는 “중국은 법적 당사자, 한국은 실질적 당사자다. 중국이 참여하지 않는 정전협정의 지위 변경에 동의할 수 없다”고 하더라. 종전선언은 엄격하게 말하면 평화협정 서문에 해당하니까, 중국이 함께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나 싶다.
이 종전선언 문제가 현재 정세 진전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는데, 지금 그 디테일이 미국의 관료다. 미국 관료들이 종전선언을 하면 비핵화가 안 된 상태에서 군사적 옵션에 제약을 받는다는 말을 만들어냈다. 여기에 중국 변수가 겹쳤다. 남·북·미 3자 종전선언은 가능할 수 있지만, 우리 정부가 이를 공개적으로 계속 주장하는 건 국익 측면에서 위험하다. 한국 정부가 중국 배제에 앞장선다고 중국 쪽이 인식할 수 있어서다. 실제 정부가 ‘남·북·미 3자 종전선언’을 공개 주장한 기간에 한-중 관계에 부정적 영향이 컸다. 북-중 양국은 세차례 정상회담을 거치며 ‘4자 종전선언’ 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듯하다.
문 우리가 판문점 선언에 ‘올해 안 종전선언’을 넣은 이유는 적대관계 해소 목적도 있지만, 그만큼 북한의 비핵화를 빨리 추동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런데 미국은 (종전선언 문제 등에서) 중국이 북한을 배후조종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오해를 빨리 푸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래서 오히려 남·북·미·중 4자 종전선언을 추진하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이 아닌가 싶다. 북한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중국이다. 중국이 4자 틀로 들어와서 북한과 많은 협의를 할 수 있으면 종전선언 해법도 나오고 비핵화도 촉진할 수 있지 않겠나. 미-중 사이 무역 갈등도 심한데, 한반도 종전선언을 매개로 4자 정상이 만나면 미-중 관계 반전도 가져올 수 있다.
이 동의한다. 시진핑 주석한테 중국이 종전선언에 참여해서 비핵화 촉진자 노릇을 해달라고 설득하면 어떨까.
종전선언 접근법은
문 “‘법적 당사자’ 중국 참여 필요…미-중 무역갈등 반전 가져올 수도”
이 “중 포함 4자선언 추진 바람직…시진핑에 비핵화 촉진 역할 제안을”
사회 대북 제재 문제가 그야말로 문제다. 특히 판문점 선언 이행에 제재 문제가 핵심 걸림돌로 작용하는 느낌이다.
문 우리 정부는 애초 북한이 신고와 사찰을 허용하는 시점에 유엔 안보리를 소집해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의미심장한 조처를 취했으니 제재 완화 결의안을 채택하는 방안을 논의하자’는 제안을 하려는 구상을 갖고 있었던 걸로 알고 있다. 미국 정부와도 논의가 된 걸로 안다. 그런데 북한은 신고·사찰 전에 종전선언이 먼저 와야 한다고 해 교착상태가 발생했다. 삼두 체제가 필요하다. 첫째, 북한은 성의를 보여 우리 정부, 중국, 러시아가 미국을 설득할 기제를 줘야 한다. 둘째, 젤리코의 제안처럼 국제사회도 비핵화와 제재 지속에만 매달리지 말고 북한이 개혁개방에 나설 때 어떻게 지원·협력할지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 셋째, 우리가 교류협력 등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견인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 6일 서울 마포구 신촌로길 김대중도서관에서 대담을 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이 북한은 애초 올가을쯤에는 적어도 민생 분야 제재 해제는 이뤄질 수 있다고 보고 계획을 세운 거 같다. 그런데 종전선언 대목에서 교착상태로 빠졌다. 북한은 비핵화가 결과적으로 프로세스(과정) 진행으로 정리됐으니, 제재 해제도 단계적으로 가리라 볼 것이다. 물론 북한은 애초에 “단계적, 동시적” 해법을 주장했으니, 제재 해제 역시 단계적일 수밖에 없다고 판단할 것이다. 그런데 북한의 “단계적, 동시적” 해법 주장을 시간끌기로 해석하는 이들이 있는데, 오독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4·20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통해 ‘경제 올인(다걸기) 전략’으로 바꿨다. 중국의 이론가들은 이를 개혁개방 선언으로 본다. 중국 개혁개방의 역사적 기점인 1978년 3중전회 때와 비슷한 분위기로 본다. 김 위원장이 최근 북부 지역 경제 현장을 점검하며 목표 시점을 제시하고 지원을 약속하는데, 그건 돈이 없으면 안 되는 일이다. 김 위원장도 그걸 안다. 돈이 어디서 오나? 김 위원장 머릿속의 비핵화 시간표가 길게 늘어져 있지 않다는 걸 뜻한다. 더구나 국제사회가 북한에 개혁개방을 지속적으로 촉구해왔는데, 지금은 경제제재가 개혁개방을 견제하는 구조다. 어떻게 선순환 구조로 바꿀지 고민해야 한다.
문 북한이 오해하는 게 있다.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 폐쇄,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대 부분 폐기 등 조처로 성의를 보이면 미국도 제재를 완화하리라 기대한 듯하다. 지금까지의 조처는 ‘미래핵 개발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핵심 관심사는 현재 핵·미사일 상황에 대한 신고와 사찰이다. 셈법이 다르다. 북한이 관심과 성의를 보이면 한·중·러가 나서 제재 완화 결의를 추진할 수 있어 물꼬가 트일 수 있다.
이 중요한 지적이다. 북한이 신고·사찰과 관련된 일련의 진전된 움직임을 보이면 민생 분야 1단계 제재 해제까지는 갈 수 있다고 본다. 우리가 미국을 설득해 종전선언을 성사시키고, 동시에 북한을 설득해 종전선언 뒤 자연스럽게 신고, 사찰을 하게끔 만들어야 한다.
판문점 선언 ‘가을 평양 정상회담’은
이 “서두를 필요는 없어…필요하다면 8월말이라도 별도 원포인트 회담”
문 “가을·평양에 구애될 필요 없이 8월 말이나 9월 초 어디서든 만나야”
사회 판문점 선언에 명시된 ‘가을 평양 정상회담’ 문제를 짚어보자.
문 ‘가을, 평양’에 구애될 필요가 없다. 4·27 판문점 정상회담 뒤 김정은 위원장의 요청·제안으로 5·26 판문점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았나. 이번엔 문 대통령이 제안하면 김 위원장이 응할 차례다. 남북관계가 잘 풀려서 가을에 남북 간 경제협력 등이 본격화되면 가장 좋겠지만, 종전선언이 이뤄지지 않으면 비핵화 동력도 안 생기니까 판문점이든 평양이든 가리지 말고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 8월말이나 9월초가 적당하다고 본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9월 하순 유엔총회 즈음해서 뉴욕에서 이벤트를 생각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전에 남북의 지도자가 담판을 해야 한다. 남북의 의사소통이 원활해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우리가 얼마든지 이야기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줘야 대미 레버리지가 생긴다. 그 동력을 지렛대로 삼아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야 한다.
이 ‘가을 평양 정상회담’은 필요하다. 11월말까지는 가을이다. 그러니 서두를 필요는 없다. 성과가 없으면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 다만 정세가 어려우니, 필요하다면 (가을 회담과 별도로) 8월말이라도 5·26 회담처럼 ‘원포인트 정상회담’을 시도해볼 수 있겠다.
하지만 원포인트라도 문 대통령이 손에 아무것도 없이 김 위원장을 만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사실 최근 정세의 걸림돌인 종전선언이 안 되고 있는 이유는 미국 때문이다. 우선 미국을 상대로 종전선언뿐만 아니라 (북한이 신고·사찰에 응하면 가능한) 제재 1단계 해제 등 전체적인 조율을 해야 한다. 미국이 불편해해도 강하게 붙어야 한다. 그래서 문 대통령이 손에 ‘물건’을 들고 김 위원장을 만나 결단을 촉구하는 방식은 가능하겠다.
정리 노지원 이제훈 기자 zo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