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차 단체상봉..남북 기자단, 이산가족 공동인터뷰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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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8-21 19:30 조회4,847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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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있고 싶다. 안 보내고 싶다” | |||||||||||||||||||||||||||||||||||||||||||
2일차 단체상봉..남북 기자단, 이산가족 공동인터뷰 진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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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째 만난 남북 이산가족들의 표정은 밝았다. 하지만 이튿날 작별을 감지한 듯, 아쉬움의 표정도 역력했다. 남북 이산가족들은 21일 오후 3시경부터 금강산호텔에서 단체상봉을 이어갔다. 북녘의 남동생을 만난 김혜자 할머니(75세)는 “볼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네”라고 하자, 동생 은하 씨는 “내일 아침이 또 있지 않습니까”라고 답했다. 누나는 동생에게 “내가 서울에서 ‘은하야!’하고 부를게”라고 말하자, 동생은 “그럼 제가 ‘네~’할게요”라며 웃었다. 누나는 거듭 동생에게 “사랑해”라고 말했지만, 동생은 쑥스러운 듯 아무 말이 없었다. “너는 사랑한다는 말 안 하니”라는 60여 년 만의 누나 핀잔에, 동생은 “누님을 존경해요. 누님이 날 사랑해주니까 얼마나 좋은지 몰라”라고 말했다. 이튿날이면 헤어짐을 감지한 듯, 누나는 백발이 성성한 동생에게 “너무 좋다. 꿈같다. 지금까지도 꿈꾸고 있는 것 같다”며 “같이 있고 싶다. 안 보내고 싶다”고 아쉬워했다. 북녘의 동생을 만난 형 차제근 할아버지(84세)는 다시 만난 동생을 보자마자 “동생!”이라고 반가워했다. 하지만 동생을 북에 두고 온 형의 마음은 착잡했다. 차 할아버지는 “내가 버리고 나와서 항상 죄책감에 가슴이 아파. 내가 형으로서 동생을 버리고 나만 살겠다고 나와 미안해. 버리고 나와서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동생 버리고 나만 내려와서 내가 너무 미안해”라고 말했다. 그런 형의 무릎을 매만지며 북녘의 형은 “아이고 뭐가 미안해요”라고 위로했다.
북녘 여동생과 남동생을 만난 형 박기동 할아버지(82세)는 동생들과 활기차게 이야기를 나눴지만, 이내 하루밖에 남지 않음을 아쉬워했다. 박 할아버지는 “60여 년 만에 만나 반갑지만 헤어질 것을 생각하니 안됐다. 기약이 없다”고 말했다. 함께 올라간 여동생 선녀 씨도 “이제 헤어지면 언제 만날지 기약이 없다”며 “평화가 빨리 이뤄져야 하는데 담이 너무 높다”고 아쉬워했다. 북녘 언니와 여동생을 만난 배순희 할머니(82세)는 “70여 년 만에 만났으니 못다 한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다”며 “어제, 오늘 한 이야기도 또 하고 싶다”고 간절함을 드러냈다. 이날 단체상봉에는 고령의 이산가족들이 건강상 이유로 나오지 못하기도 했다. 북측 조카를 만나기 위해 온 강화자 할머니(90세)는 이날 단체상봉에 불참했다. 오전 개별상봉과 객실중식을 했지만,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단체상봉은 포기한 채, 호텔에 머물렀다. 67년 만에 남녘의 어머니를 만난 북녘의 두 딸은 기자들을 향해 “어머니를 봐서 너무, 정말 좋아요”라고 말했지만, 이내 표정이 어두워졌다. 남녘의 여동생이 어머니는 피로해 쉬기로 했다고 말하자, 고개를 끄덕였지만, 못내 아쉬워했다. 북녘 여동생 김유덕 할머니(85세)도 남녘 오빠 김달인 할아버지(92세)를 만나지 못했다. 김 할아버지는 건강이 좋지 않아 숙소에서 쉬기로 한 것. 남녘 조카가 건네는 과자와 음료수를 받을 뿐, 김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연회장 입구만 바라봤다. 이날 북측은 가족들에게 다과 봉투를 선물했다. 북측이 제공한 봉투에는 사탕, 초콜릿 과자, 과일 단묵, 강정, 배단물, 금강산 샘물, 캔커피 등이 담겼다. 박경서 대한적십자사 회장은 단체상봉장을 돌며, 가족들을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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