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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북중접경지역을 가다① “안녕하세요” 인사 건네자…북한 주민 반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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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7-26 17:49 조회4,69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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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북중접경지역을 가다① “안녕하세요” 인사 건네자…북한 주민 반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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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땅은 얼마나 가까이 있을까. 70년이 넘는 분단의 세월로 '지척(咫尺)의 땅'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아득한 곳이 돼버렸다. 최근 남북 관계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으면서 북중 접경지역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북한 접경지역의 모습은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 북한의 개혁·개방 움직임이 본격화되면 가장 먼저 달라질 북중접경지역을 방문해 살펴봤다.


잣나무만 남은 북 접경지역...왜?

압록강 물줄기를 사이에 두고 북한과 중국이 마주하고 있다. 압록강 물줄기는 지역에 따라 넓어졌다 열 댓 발자국 거리만큼 좁아지기도 한다. 압록강 하류에 위치한 중국 단둥시 하구 단교에 가면 끊어진 다리 하나를 볼 수 있다. 중국 하구와 평안북도 청성군을 잇는 다리 '청성교'다. 6.25 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끊어졌다. 청성교 다리 인근에서 북한 청성군 마을에 가까이 진입하는 배를 탔다. 순식간에 마을이 가까워졌다. 굉장히 낡고 오래된 집들이 듬성듬성 보였다. 기와가 없어 대부분 피나무를 엮어 지붕으로 만들었다. 지붕에만 비닐을 씌운 북한식 온실도 찾을 수 있었다.


강변에서 빨래를 하거나 고기를 잡는 주민들도 쉽게 만날 수 있다. 대여섯 명의 북한 남성 주민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에 그물을 치고 있었다. 그런 무리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현지 조선족 가이드는 "개개인들이 밥벌이를 위해 고기잡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기관에서 조직적으로, 집단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밭에서 일하는 주민들도 보였다. 대부분 감자나 들깨밭이었다. 소 달구지를 몰며 농사를 짓는 농민도 있었다. 자동차는 거의 발견하기 힘들었다. 북 접경지역에서는 연료가 없어 땔감이나 석탄으로 운행하는 차들이 많다고 한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거나 걸어다녔다. 주민들을 향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자 우리 쪽을 힐끗힐끗 쳐다보는 주민들은 있었지만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그들에게는 익숙한 일상처럼 보였다. 북 접경지역의 산들은 대부분 민둥산이다. 나무가 거의 없다. 유일하게 보이는 나무는 잣나무. 1995년 고난의 행군 당시 경제 사정이 워낙 어렵다 보니, 접경 지역 나무들을 모조리 베서 외화벌이용으로 중국 지역에 수출한 것이다. 그 이후 접경지역에는 줄곧 잣나무만 심기 시작했는데, '잣'이 중국 수출용 외화벌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북 접경 마을을 둘러본 류길재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1995년 고난의 행군 시기 직후 풍경에 머물러있다"며 "살림살이가 20여 년 전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곳곳에서 변화의 바람 '일렁'..."공장 가동 준비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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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수 공업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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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설명청수 공업지구


평안북도 청성군 마을을 뒤로 하고 배를 움직이자 수풍발전소 인근에 위치한 청수 공업지구가 나타났다. 북한에서도 손꼽히는 화학공업단지가 위치한 지역이다. 6.25 전쟁 도중 김일성이 잠시 머무른 곳이기도 하다. 고난의 행군 이후 5.24 조치까지 가세하면서 공업지구의 시간은 완전히 멈춘 듯 보였다. 대부분 공장은 가동을 오래 전에 중단했다고 한다. 공장 건물들은 대부분 색이 바래고 부서져 있었다. 벽체가 모두 떨어져 기둥만 앙상하게 남은 건물도 보였다. 현지 조선족 가이드에 따르면, 대부분의 공장은 규석이나 마그네슘 등 광물 생산에 주력했다고 한다. 최근 북한 경제제재가 풀릴 것으로 기대되면서 이 공업지구도 꿈틀대고 있다. 이미 올해 초부터 가동을 시작한 공장들도 있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공장도 곳곳에서 보였다. 북한 주민들이 오래된 공장 건물에 올라가 보수 작업을 진행하는 모습도 목격할 수 있었다. 공장 건물을 수리하고 새로 페인트칠을 준비하고 있었다. 공장 재가동을 서서히 준비하는 분위기다.

북한 현실을 목격할 수 있는 1500km


압록강 상류 지역으로 올라갈수록 북 접경지역 마을의 모습도 달라졌다. 압록강 상류 남안에 위치한 중강군 마을에는 비교적 모양새가 갖춰진 연립주택들이 보였다. 하지만 대부분 집들 역시 기와가 없어 피나무를 엮어 지붕을 만들었다. 전기시설도 없었다. 간간이 전봇대가 보이긴 했지만 밤에도 전기가 잘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열악해 보였다. 이 곳 역시 강 주변에는 빨래를 하거나 목욕하는 주민들이 많았다. 나체 상태로 단체 목욕을 하는 북한 남성들도 볼 수 있었다. 마을 중심에는 주체사상을 전파하는 주체탑이 자리를 잡고 있다. 북한에서는 마을마다 지리적으로 가장 좋은 위치에 '혁명사상연구소'를 세우고 주체탑도 함께 건립한다. 압록강 중상류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은 뗏목을 타고 내려오는 북한 주민들이다. 이 뗏목의 정체는 뭘까. 백두산 근처에서 벌목한 소나무나 통나무를 뗏목으로 엮어 사람이 직접 올라타 압록강 하류로 내려오는 것이다. 북 접경지역 주민들의 전통적인 목재 운송법이다. 주민들은 2인 1조로 뗏목에 올라타 그 위에서 밥도 해먹고 잠도 잔다고 한다. 중국에서 산림보호를 한다며 벌목을 못 하게 하면서 북 접경지역 주민들의 주요한 외화벌이 수단 중 하나가 된 것이다. 압록강변에서 뗏목을 만드는 주민들도 만날 수 있었다. 10명 가까이 모여 통나무를 뗏목으로 엮는 작업 중이었다. 일행들이 다가가 사진을 찍으려 하자 우리에게 "야!"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사진을 찍지 말라는 듯 양팔을 좌우로 '휘휘' 젓기도 했다. 북 접경지역 주민들이 보인 첫 반응이었다.

골목에서 들려오는 아이들 웃음소리.."그곳에도 일상이 있다"


압록강 물줄기를 따라올라 몇 시간을 더 달리자 양강도 혜산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이르렀다. 중국과 북한 사이에 밀수가 가장 많이 이뤄지는 도시기도 하다. 실제로 압록강변에서 보면 혜산과 중국 장백까지의 거리는 열 걸음에 불과하다. 띄엄띄엄 집들이 분포하던 다른 접경지역 마을과 달리 혜산시에는 빽빽한 건물들이 펼쳐졌다. 제법 모양새를 갖춘 연립주택도 많이 보였다. 갓 지은 듯한 신식건물부터 규모가 제법 큰 대강당도 있었다. TV 수신을 위한 안테나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건물 곳곳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만세', '우리나라 사회주의 제도 만세!', '장군님따라 천만리' 라는 정치구호들이 적인 선전물들이 전시돼있었다. 10층 이상 규모의 아파트도 눈에 띄었다. 망원경으로 살펴보니 한 낡은 아파트에서 인부들이 공사 중이었다. 재건축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아슬아슬하게 벽을 타 페인트 칠을 하고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도 보였다. 퇴근 시간이라 그런지 집으로 돌아가는 북한 주민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호피무늬 옷을 입은 남성도 눈에 띌 만큼 복장도 자유로웠다. 멀리 보이는 연립 주택 앞으로 낡은 슬레이트 지붕의 판자촌이 펼쳐졌다. 골목 어귀에서 뛰어다니고 고무줄 놀이를 하는 아이들도 보였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들렸다. 그만큼 가까운 거리에 북녘땅이 있었다. 지극히 평온해 보이는 일상이다. 그곳에도 잔잔한 일상이 있다. 압록강 너머 북한의 현실은 60년대 이후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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