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사고 14년…핵 잔해 880t에서 0.7g 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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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5-03-12 11:05 조회46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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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사고 14년…핵 잔해 880t에서 0.7g 회수
- 한승동 에디터
- 승인 2025.03.11 22:00
한국과 복사판처럼 닮은 일본의 ‘탈원전’ 뒤집기
도쿄전력, 원전사고 배상비용 전기 소비자에 전가
원전 재가동으로 원전사고 배상금 부담 덜기
위기상황을 남 일처럼 여기는 거야말로 위기상황
정적 제거 위한 정치적 도구로 악용하는 건 최악

880톤 핵잔해에서 13년만에 0.7그램 회수, 기약없는 폐로
일본 동북지역 대지진과 도쿄전력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가 일어난 지 오늘로 14년이 지났다. 사고원전 3기의 원자로 바닥에는 880톤으로 추산되는 녹아내린 핵연료 찌꺼기(잔해)가 아직도 거의 손도 대지 못한 채 그대로 남아 있다. 원전사고 13년만인 지난해 가을에 처음으로 여전히 고농도 방사선으로 가득찬 사고 원전의 원자로 바닥에서 핵연료 찌꺼기를 끄집어내는데 성공했는데, 고작 0.7그램이었다. (<아사히신문> 3월 11일)
이런 속도라면 2051년까지 수십조 엔을 들여 원자로 폐기(폐로)작업을 완료하겠다고 선언한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의 약속이 지켜질 가망이 없어 보인다. 원전 부지 대형 탱크들에 저장했던 130여만 톤의 핵오염수를 해양 방출(투기)하기 시작한 지 2년만에 6만여 톤의 액오염수를 태평양에 흘려보냈다. 그러나 매일 90여 톤의 핵오염수가 지금도 새로 생겨나고 있다.


한국과 복사판처럼 닮은 일본의 ‘탈원전’ 뒤집기
언제 끝날지도 알 수 없는 후쿠시마 사고원전 폐로작업에 투입될 총비용(폐로, 배상, 방사능오염 토양 제거 등 포함)은 지금까지 23.4조 엔(약 232조 원)으로 상정돼 있다.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큰 이 비용 중에서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금으로 상정된 돈은 9.2조 엔(약 91조 원). 그런데 이 배상비용을 사고를 낸 도쿄전력이 아니라 전기를 쓰는 모든 이용자(소비자)들이 분담해서 내고 있다.
일본정부는 지난 2월 ‘에너지 기본계획’을 각의(국무회의)에서 결정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뒤 원전 가동을 중단하고 순차적으로 모두 폐기해 “원전 제로”로 만들려던 탈원전 정책 방향을 되돌려 탈‘탈원전’으로 가자는 내용이었다. “원전 의존도를 가능한 한 저감(低減)한다”는 규정을 삭제하고 원전 비중을 오히려 늘려가기로 했다. 2040년까지 총에너지의 약 20%를 원전으로 충당하기로 했고, 이를 위해 30기의 원전을 가동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전에 54기의 원전을 가동해 국가 전체 전력의 약 30%를 충당했다. 사고 뒤 14기가 재가동됐고 나머지는 폐기 절차를 밟고 있거나 재가동 허가가 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일본정부는 가동 연한을 50년 이상으로 늘여서라도 원전 재가동에 힘을 실어주려 하고 있다.
이런 방향 선회는 3년 전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당시 기시다 후미오 정권이 에너지 안전보장을 이유로 원전의 “최대한 활용”을 내세우며 탈원전 정책을 사실상 퍠기처분하면서 이미 본격화됐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이런 측면에서도 세계사적 의미를 갖는 것은 그것이 촉발한 독일 등 유럽의 에너지 정책 변화를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원전을 재가동한 간사이와 규슈 지역 전기요금이 더 싸다는 자료들을 제시했고, 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롄)는 “(원전 재가동이) 우리나라의 산업경쟁력 강화와 경제성장에 필수불가결하다”고 주장했다. 탈탄소와 전력수요 증가 예측도 원전이 필요하다는 여론을 조성하는데 활용됐다. 윤석열 정부 집권 이후 이 땅에서 진행된 탈탈원전으로의 회귀 과정과 복사판처럼 닮았다.

도쿄전력, 원전사고 배상비용 전기 소비자에 전가
일본정부의 이런 방향선회 배경에는 사고원전 폐기와 배상 등에 들어가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된 도쿄전력과 일본정부가 배상비용의 소비자 전가 외에, 가동을 중단했던 기존 원전들을 재가동해 필요비용을 염출하려는 계산도 깔려 있다.
11일 <마이니치신문> 보도에 따르면, 배상비용은 원래 도쿄전력과 원전을 보유한 다른 전기사업자들이 부담하기로 돼 있었다. 그런데 사고 직후 5조 엔(약 49조 5천억 원) 정도로 상정됐던 배상비용이 2배 가까이 늘어나면서 원전을 보유하지 않은 전기 소매사업자들에게도 그것을 부담하게 하는 제도를 도입했고, 2017년에 성령(省令)을 개정했다. 배상비용을 송전선 이용료인 ‘탁송 요금’에 얹어 가는 형태로 거두어 가는 새로운 전기요금제가 만들어졌다. “본래 원자력 사업자가 부담해야 할 책임을 소매업자들에게 지운 것”이라며 후쿠오카 시의 신전력(전력 자유화와 함께 등장한 예전의 일반전기사업자 외의 전력회사)인 그린코프 전기의 히가시하라 고이치로 이사는 분개했다.
이에 대한 일본정부의 해명은 다음과 같다.
“원자력 사업자는 본래 사고가 일어나기 전부터 배상에 대비해 적립금을 확보해 둬야 한다. 탁송요금에 추가시켜 이를 거두어 가는 것은 사고 전인 과거분의 배상비용에 해당하는데, 현재의 신전력과 계약하는 소비자들도 사고 이전에는 원전을 소유한 대형 전력회사와 계약해서 원전이 발전한 전력을 공급받고 있었기 때문에 부담의 대상이 된다.”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야당으로부터 추궁당한 세코 히로시게 당시 경제산업상은 “모두가 부담해야 할 비용”이라 답변했다.
하지만 경제산업성 내에서조차 “이런 논리가 통하겠느냐”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무리가 있었다. 히가시하라 이사는 “이미 요금을 지불한 사람에게, 과거분을 청구하지 않았다며 또 받아 가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비판했다. 그린코프 전기 이용자들에게는 탁송요금에 배상부담금을 얹어서 청구하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그린코프 전기는 2020년 제도 시행에 맞춰 탁송요금에 배상부담금을 추가한 요금 인가를 취소해 달라고 후쿠오카 지방법원에 제소했다. 추가 조치를 법 개정 없이 국회심의가 필요없는 성령 개정만으로 결정한 것을 문제삼았고, 원고쪽 대리인인 고지마 노부오 변호사는 “헌법은 국민의 권리에 관한 규범은 국회가 법률로 결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탁송요금의 변경은 소비자의 부담증대로 이어지는 국민 권리에 관한 사안이다. 본래 국회에서 심의한 뒤 법 개정을 통해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후쿠오카 지법은 2023년 3월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판결은 배상부담금이 “전기를 쓰는 모든 소비자가 공평하게 부담해야 할 공익적 과제에 필요한 비용”이라며, 이를 탁송요금에 포함시킨 성령 개정이 “(경제산업상의) 재량권 범위 내”라고 했다. 그린코프 전기는 항소했으나 2025년 2월에 후쿠오카 고법은 1심 판결을 지지해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린코프 전기는 이에 불복해 10일 최고재판소(대법원)에 상고했다.
히가시하라 이사는 “신전력에 비용부담을 요구하려면, 먼저 도쿄전력 경영자나 주주의 책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원전 재가동으로 원전사고 배상금 부담 덜기
지금까지 국가가 도쿄전력에 지원한 돈은 15.4조 엔(약 152조 원)이나 된다. 도쿄전력은 연간 5000억 엔(약 4조 9500억 원)씩 지불하며 이를 갚아 나갈 계획인데, 그 중심에 후쿠시마 원전사고 뒤 가동이 중단된 도쿄전력 소유 가시와자키 가리와 원전(니카타 현)의 재가동이 자리잡고 있다. 원전을 재가동해서 번 돈으로 원전사고로 생긴 정부 재정적자를 메우겠다는 발상이다. 6, 7호기는 재가동을 위한 원자력규제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했으나 사원의 ID 부정 사용이나 테러대책 설비 부족 등의 불상사들이 거듭 발각되면서 도쿄전력에 대한 지역 현민들의 불신을 씻어내지 못하는 바람에 재가동에 필요한 지역 합의를 이뤄내지 못했다.

원전으로 되돌아가서는 안 될 이유
원전의 근원적인 난제는 아직도 해결된 게 없다. 핵 폐기물 처리에 대한 궁극적 해결방안을 찾지 못했고, 경제적으로도 신규 건설비가 1기당 1조엔(약 10조 원)에 이를 정도로 고비용이다. 정부가 베푸는 특혜가 없다면 건설비용은 훨씬 더 들어간다. 무엇보다 사고가 나면 다른 발전수단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피해가 발생한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가 그것을 증명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뒤 방사능 오염 표피토양 제거작업으로 생겨난 대량의 오염토를 최종적으로 처리할 방안도 아직 마련하지 못했다. 원전시설이 군사적 표적이 될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 일본은 대형 지진과 쓰나미 등 지질학적 불안정 요인에 의한 원전 위험성이 특히 큰 나라다.
교토에 본부를 둔 ‘녹색행동’(그린 액션) 그룹의 에일린 스미스 사무총장은 “일본의 많은 원전들이 낡았고, 그들이 사용하는 기술도 낡았다. 그들의 개보수 비용도 높아서 기존 원전들 가동은 상업적으로 더는 실익이 없다”며 일본정부가 원전에 투자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가디언> 2월 12일)
이런 위기적 상황을 원전이 있는 변방에서 멀리 떨어진 대도시에서 원전 생산 전기를 주로 쓰고 있는 사람들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남의 일처럼 생각한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심각한 위기적 상황일 수 있다.
원전에 비해 재생에너지 쪽이 위험부담을 분산할 수 있고, 유연성도 높다. 잠재력이 뛰어나고, 기술 발전으로 비용도 화석연료 발전보다 더 낮아졌다는 평가들이 나오고 있는데도 재생에너지 쪽의 가능성을 추구하기보다 화석연료와 원전 발전 확대 쪽으로 쉽게 치닫는 것은 일종의 경로의존성 탓인가. 이른바 ‘원전 마피아’로 상징되는 기득권적 이권구조 때문인가. 탈원전 정책 또는 그 허점을 정적들을 공격하고 제거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로 악용하는 건 최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