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친미’ 노골화에
싱하이밍 발언이 기폭제 돼
국민정서 자극 ‘감정싸움’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 등
쉬운 분야부터 협력 모색을”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베팅’ 발언을 계기로 흔들리던 한·중관계가 ‘강 대 강’ 대치로 치닫고 있다. 여당의 싱 대사 추방 요구에다 개인 비리 의혹 보도까지 나오면서 양국 감정은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는’ 수준으로 악화하고 있다. 양국 간 경제적 연결고리가 느슨해지고, 북핵 문제와 관련해 중국 역할에 대한 기대도 줄어들어 이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갈등 때보다 해결점을 찾기가 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맞불 초치’로 달아오른 양국 갈등은 국민감정 악화로 이어질 기세다. 중국 관영매체인 글로벌타임스는 12일 “싱 대사의 발언은 정상적 외교활동”이라면서 한국 외교부의 발언을 겨냥했다. 문화일보는 이날 싱 대사가 1박에 1000만원 상당의 국내 숙박시설에 무료로 머물렀다며 접대 의혹까지 제기했다.
윤석열 정부가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하던 외교 기조를 접고 한·미 동맹 강화와 한·미·일 공조로 방향을 바꾸면서 한·중 갈등은 예견된 결과다. 지난 4월 국빈 방미를 앞둔 윤석열 대통령이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대만해협에서의 일방적 현상 변경 ‘절대 반대’를 언급하면서 맞불 초치 등 한 차례 달아올랐다. 싱 대사 발언까지 더해지면서 한·중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는 데는 큰 이견이 없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은 “싱 대사 발언은 중국의 대한국 정책이 관망과 관리 위주에서 억제와 압박으로 전환했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말한 것”이라면서 “개인의 일탈적 행태나 중국의 ‘전랑외교’ 같은 공세적 성향에 따라 결정된 것이 아니고 중국 최고지도부 결정”이라고 말했다. 이동률 동덕여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도 “중국은 윤석열 정부가 미국의 반중 연대에 너무 적극 참여치 않도록 관리하려는 의지가 있었지만 원하는 대로 안 됐다”면서 “끌어들일 것이냐 압박할 것이냐에서 끌어들이는 전략은 성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경계선으로 가는 것 같다”고 했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최악의 시기로 꼽히는 2017년 사드 갈등 때보다 더 나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한령(한류 제한령)에 의한 국민감정 악화, 코로나19로 인한 양국 교류 단절 등으로 이미 양국 관계 회복의 발판이 될 지반은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다. 무역구조 변화와 미·중 갈등으로 한·중관계를 지탱해온 경제협력도 느슨해졌다. 북핵·미사일 도발에 대한 중국 역할론 기대도 줄어들었다.
황재호 한국외대 국제학부 교수는 “박근혜 정부 당시 사드 갈등은 한·중관계가 최상이었다가 악화됐고 국가 차원의 입장 차이였지만 현재는 윤석열 정부의 한·미, 한·일 관계 강화 기조에서 상대적으로 중국을 적대시하는 분위기가 있었고, 이 가운데 감정적 문제까지 개입됐다”고 짚었다.
양국 갈등은 국내 정치 요인과 더해지면서 더 복잡하게 얽히고 있다. 여권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향한 공세를 이어가는 한편 반중 정서에 편승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중국 국적 유권자들에 대한 지방선거 선거권 규제안을 제시했고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은 전날 싱 대사를 ‘외교적 기피인물’로 지정,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복잡하게 꼬인 한·중 갈등을 풀기 위해서는 쉬운 협력 분야부터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과 교수는 “비외교 안보 분야나 경제통상, 특히 투자 분야에서 대화 창구를 여는 것이 관건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흥규 소장은 “연내 한·중·일 정상회의도 어려울 수 있다”면서 “오는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 등을 활용해 정부 간 대화와 소통을 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