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포격 후 13년…긴장 고조
50대 “피신시설·이동권 없어”
80대 “참화 반복, 동요 안 해”
실향민 ‘고향 땅 희망’ 접기도
“안전 말해도 누가 듣나” 체념
조업 통제 땐 삶의 질도 걱정
“9·19 군사합의 무산이요? 연평도 주민으로선 불안하죠. 그런데 옛날부터 겪고 또 겪은 일이라, 솔직히 지겹습니다.”
인천 옹진군 연평도에서 나고, 여든 넘게 살아온 박태환씨(82)가 지난 26일 “불안감은 이미 만성이 되어버렸다”며 이렇게 말했다.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로 지상·해상·공중 모든 공간에서 적대적 군사행위를 금지한 9·19 군사합의가 사실상 파기되면서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북방한계선(NLL) 인근 서해5도(연평·백령·대청·소청·우도)는 군사적 긴장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지역이다.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해병대원 2명과 민간인 2명이 희생되기도 했다. 당시 북한은 남측 군부대는 물론 민가에 포탄 170여발을 퍼부었고, 한국군은 K-9 자주포로 즉각 대응했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지금, 다시 고조되는 남북 군사적 갈등에 연평도 주민들은 통화에서 “불안하지만 시끄러운 게 일상이 됐다”며 “늘 이런 일의 반복이니 동요하고 싶지 않다”고 체념조로 말했다.
박재복 선주협회장(54)은 “연평도 포격전 이후로 1~2년은 트라우마가 있었지만 10년이 넘어가니 무뎌지더라”며 “다들 일과 삶이 있는데 어찌 북한 도발 하나하나에 신경 쓸 수 있겠나”라고 했다.
주민들은 교전 상황이 발생해도 제대로 대피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박 선주협회장은 “2010년 이후로 안전하게 피신하게끔 이것저것 만들어준다고 사탕발림하더니 결국 무기만 증설됐다”며 “참화가 반복될 때 피신할 수 있는 제반시설이 갖춰진 게 없다”고 말했다.
연평도에 거주하는 박태원 서해5도평화운동본부 대표는 “말로는 서해5도에 사는 사람들을 ‘애국자’라고 하지만, 위험 상황에 주민들이 섬을 벗어날 이동권조차 보장이 안 된 상태”라고 했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여러 차례 최북단이자 접경지역인 서해5도에 사는 것 자체가 애국이라고 말한 터다.
서해5도평화운동본부는 정부가 ‘9·19 군사합의 일부 효력 정지’ 카드를 들고나오자 “안전핀을 제거하는 행태로 서해5도를 다시 전쟁과 포격의 위협으로 몰아넣는 행태”라며 반대 성명을 냈다. 박 대표는 통화에서 “국가 존재 위기에선 전쟁을 불사하는 게 맞지만 지금이 그런 상황인가”라며 “아직 주민들은 체감하지 못하지만, 불안한 것을 넘어 조업 관련 통제 등 주민들 삶의 질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했다.
박 대표는 실향민 부모를 뒀거나 실향민인 연평도 노년층 사이에선 ‘언제 한번 고향 땅 밟아봤으면’ 내심 기대를 품은 이들도 있었지만, 이제는 다들 희망을 접었다고 전했다. 그마저도 노환으로 많이 돌아가셨다고 했다. 주민들은 “안전이 제일 중요한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으니 불안하다고 말해봤자 소용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박태환씨는 “우리는 재난안전문자가 와도 그렇구나, 훈련 소리 시끄러워도 어쩔 수 없구나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9·19 군사합의 파기가 주민들에게 좋을 리 없겠다만 지금 우리가 얘기해봐야 누가 들어나 주겠냐”며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