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막가파식 '9.19군사합의' 효력정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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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3-10-27 09:45 조회1,018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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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의 막가파식 '9.19군사합의' 효력정지론
- 조성렬의 전략노트
- 승인 2023.10.27 00:15
이스라엘-하마스 전을 잘못 짚은 윤석열 정부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가지지구에 거점을 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을 계기로 국내에서는 ‘9.19군사합의’의 효력을 정지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러한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내세운 근거는 「9.19군사합의」에 항공완충구역이 설정된 것을 문제 삼는다. 그들은 항공완충구역 때문에 우리 군의 대북 정찰감시능력이 제한을 받아 북한의 기습공격이 있을 때 이를 조기에 탐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9.19군사합의’의 효력정지 주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1월에 제일 먼저 꺼냈다. 작년 10월 북한의 해상완충구역 내 방사포 사격에 이어 12월 북한 무인기의 남쪽 침범이 있자 그는 “북한이 다시 우리 영토를 침범하는 도발을 일으키면 9.19 군사합의 효력정지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 말을 받아 지난 6월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파기 가능성을 언급한 데 이어, 9월 신원식 국방장관도 “9.19군사합의는 군사적 취약성을 확대하므로 반드시 폐기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9.19군사합의’ 파기 내지는 효력정지 주장은 이번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 사태가 발생한 배경과 성격 및 교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곡해한 데서 나온 것이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과 남북한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동일시했을 뿐만 아니라, ‘9.19군사합의’가 효력정지됐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한 고려도 없이 내려진 졸속 판단이 아닐 수 없다.
우리 합참본부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의 교훈을 담은 브리핑자료에서 북한이 하마스의 공격방법을 대남 기습공격에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합참으로서는 어떤 경우든 우리 안보에 대한 위해요소들을 식별해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마땅하다. 하지만 하마스와 북한을 동일시하면서 내린 평가라면 자칫 정세 판단을 그르치고 대북정책의 오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하마스는 미국을 포함한 주요 서방국가가 국제 테러단체로 간주하고 있는 반면, 러시아나 중국, 아랍국가들은 팔레스타인의 한 정당으로 보는 등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하마스는 무장단체에서 출발했지만, 2016년 1월 주민투표를 통해 팔레스타인 가자지역에서 합법적으로 집권한 정당이다. 이에 비해 북한은 이란, 쿠바, 시리아와 함께 미국이 지정한 테러지원국으로 하마스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무장단체와 국가의 차이는 군사능력의 차이로 이어진다. 하마스는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과 이집트에 둘러싸여 고립된 채 자체 무기제조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이번에 이스라엘 기습공격에 사용된 무기들도 외부에서 공급받은 것이다. 이에 비해 북한은 각종 재래식무기는 물론이고 핵무기와 중장거리 탄도미사일을 자체적으로 제조할 수 있는 사실상의 핵무기 보유국이다.
또 다른 차이는 북한은 국제법상의 의무를 지닌 유엔회원국인 주권국가라는 점이다. 아직 불안정한 정전체제이기 때문에 언제라도 전쟁 재발의 가능성은 있지만, 북한으로서는 조국통일이라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유일한 수단으로 내세우고 있지 않다. 이에 비해 하마스는 이스라엘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려는 무장정파이기 때문에 독립국가 목표가 이뤄질 때까지 끊임없이 무장투쟁을 벌여야 하는 운명을 안고 있다.
결국은 윤석열 정부의 이스라엘-하마스 전에 대한 잘못된 평가가 대북정책의 오류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0월 11일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일방이 그것을 어기고 타방이 일방적으로 준수하는 건 상당히 잘못됐다”며 ‘9.19군사합의’ 얘기를 꺼냈다. 신원식 국방장관도 “하마스의 이스라엘에 대한 기습공격은 9.19남북군사합의의 효력정지 필요성을 더욱 높여주는 계기가 된다”면서 “잘못된 9.19합의 중에서 시급히 복원해야 할 사안에 대해 최단시간 내에 효력을 정지시키겠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윤석열 정부의 ‘9·19군사합의’ 효력정지 추진과 맞물려, 지난 10월 20일 윤석열 정부에서 초대 통일부 장관을 지낸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은 접경지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허용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지난 9월 헌법재판소가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의 대북 전단 살포 금지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것보다 한발 더 나아간 내용으로 무책임의 극치다.
9.19 군사합의 효력중지로 벌어질 일들
만약 윤석열 정부가 ‘9.19군사합의’의 효력정지를 강행한다면, 남북한 간의 군사적 긴장이 한층 높아질 것은 명약관화하다. 우리 군은 대북 확성기 방송 등 대북 심리전을 실시하고 비무장지대(DMZ) 일대에 정찰기를 즉각 투입할 것이다. 남북 군사완충지대를 해제하면 시범철수했던 DMZ 내의 군사초소(GP)가 다시 설치되고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재무장도 가능하다. 군뿐만 아니라 민간단체들도 대대적으로 전단살포와 확성기 방송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9.19군사합의’가 효력정지되면 비행금지구역이 사라져 우리 군이 북한의 도발징후를 실시간 감시할 능력이 높아진다. 하지만 DMZ 내 GP가 완전 복구되고 JSA 재무장이 진행되면 그만큼 남북 군대간의 우발적 충돌 가능성이 높아진다. 군과 민간단체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실시하고 대북 전단을 살포한다면 북한은 군사적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2014년 10월 민간단체의 전단풍선에 고사총 40발을 발사했고, 2015년 8월 우리 군의 대북 확성기 방송에 대해 북한군이 고사총 1발과 직사화기 3발을 발사한 바 있다.
일부 보수언론은 윤석열 대통령이 도발에 대해 원점을 타격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에 북한이 겁을 먹고 도발하지 못할 것이라는 한심한 분석을 내놓는다. 이는 과거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취임한 직후 북한이 군사도발할 경우에 “원점, 지원세력은 물론 지휘세력까지 타격하라”고 지시해 북한의 도발을 사전에 억제했다는 이른바 ‘김관진 효과’에 대한 잘못된 신화에 기초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현실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 ☞ 졸고, “북한의 비대칭확전 핵태세와 ‘김관진 효과’ 이후”
첫째, 한국군이 작전통제권을 갖고 있지 않아 북한군 도발의 원점 타격도 쉽지 않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군사도발이 있을 때마다 원점 타격하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2010.11), NLL이남 포격(2011.8, 2014,3), 해군 초계함 총격(2014.5), 연천군 야산 포격(2015.8)에 대해 한 번도 실행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북한군의 도발 원점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점도 있지만, 작전통제권을 가진 한미연합사령관이 확전을 우려해 한국군의 작전을 통제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이 한미연합사령관의 작전통제를 무시하고 맞대응한 사례가 있다. 작년 12월 26일 북한이 군사분계선(MDL)을 넘어와 대통령실·국방부·합참이 있는 용산 일대와 경기도 일대에 무인기 5대를 보내자, 윤석열 정부도 무인기 3대를 이북으로 보내 맞대응했다. 그러나 이후 유엔군사령부에서 북한의 도발 행위와 남한의 대응 행위 모두 정전협정을 위반한 것으로 결론짓고 경고를 내렸다.
둘째, 원점과 지원세력을 넘어 지휘세력을 타격할 경우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작년 9월 8일 ‘핵무력정책법’을 채택하면서 핵무기 사용조건 5가지를 제시했는데, 지휘세력의 타격은 “국가지도부와 국가핵무력지휘기구에 대한 적대세력의 핵 및 비핵공격이 감행되였거나 림박하였다고 판단되는 경우”와 “국가의 중요전략적대상들에 대한 치명적인 군사적공격이 감행되였거나 림박하였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해당될 수 있다. 남북한의 군사적 충돌이 확전될 경우 핵전쟁의 위험이 높아지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의 최첨단 무기를 지원받으면서도 돈바스지역이나 크림반도까지만 공격할 뿐 원래의 러시아 영토 내 군사기지를 공격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러시아나 동맹국을 공격하는 탄도미사일 발사 △러시아의 핵심 정부‧군사시설이 공격 당했을 때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한 ‘러시아 핵억제 정책 기본원칙’에 근거해 푸틴 대통령이 핵무기 사용을 경고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까 우려해 우크라이나의 군사작전 범위를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9.19군사합의는 한반도 평화관리의 기초
사실 9.19군사합의의 파기 가능성을 먼저 언급한 것은 북한이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2020년 6월 4일 대북전단 관련 1차 담화에서 우리측이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삐라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행위를 금지하기로 한 판문점선언과 군사합의서의 조항”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있으나 마나 한 북남군사합의 파기”를 경고한 바 있다. 하지만 몇 차례 위반에도 불구하고 ‘9.19군사합의’는 지금까지 남북 군사충돌을 억제하는 기본 규범으로 기능해 오고 있다.
금년 2월에 발간된 『2022 국방백서』에 따르면, 북한의 대남 침투 및 국지도발은 1960년대에 327건으로 최고조에 달했고 1970~1980년대 들어와 크게 줄었다가 1990년대 들어 156건으로 다시 증가해 2000년대 225건, 2010년대 237건을 기록했다. 하지만 2018년 ‘4.27판문점선언’과 부속 군사합의서인 ‘9.19군사합의’ 이후 2019년에는 0건, 2020년 1건, 2021년 0건, 2022년 1건이 발생했다.
9.19군사합의’ 이후 발생한 침투 및 국지도발의 사례는 2번 있었다. 첫째는 2020년 5월 중부전선 우리 군 GP에 북한군이 고사총 사격을 가한 것으로 우리 군도 대응사격을 실시했다. 우리 군은 시정(視程)이 안 좋았고 유효사거리 밖에서 사격이 이뤄진 점을 고려할 때 북한군의 오발사격 내지 단순 실수라고 결론내렸다. 둘째는 2022년 12월 북한군 무인기 5대가 용산 대통령실 부근과 경기도 일대에 침투시킨 것으로, 이는 북측이 고의적으로 합의를 위반한 것이다.
‘9.19군사합의’를 위반한 사례는 17차례가 된다. 북한의 합의 위반을 유형별로 보면, 북측 해상완충구역 내 방사포 사격훈련이 14건(문재인 정부 1건, 윤석열 정부 13건)으로 가장 많고, 그밖에 우리 GP에 대한 총격, 동해 NLL이남 해상완충구역 내 미사일 낙탄, 북한 소형무인기 5대의 우리 관할지역 침입 등이 각각 1건씩이다. 17건 가운데 국방부가 ‘대남 침투 및 국지도발’에 포함시킨 것은 GP총격 사건과 소형무인기 침투 사건 두 건뿐이다.
눈에 띄는 것은 북한이 ‘9.19군사합의’를 위반한 건수를 보면 2건이 문재인 정부 때이고 나머지 15건은 윤석열 정부 때인 2022년 10~12월 석달 사이에 발생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 때의 위반은 오발사격을 제외하면 해상완충구역 내 사격 1건뿐이다. 출범 초부터 대북 적대정책을 표방한 윤석열 정부에 들어와 위반 사례가 크게 늘었다. 이 수치만 보아도 윤석열 정부보다 문재인 정부 때 오히려 한반도 평화관리가 잘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북한을 자극하는 배경에 정치적 의구심도
지금 국제정세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마무리도 되지 않은 가운데, 이스라엘-하마스 사태까지 벌어져 매우 불안정한 형국이다. 이럴 때일수록 사소한 군사적 충돌도 일어나지 않게 예방하고 우발적 충돌이 발생하더라도 확전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거꾸로 가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불확실성이 높아진 국제정세 속에서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평화를 정착시켜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불필요할 정도로 과도하게 북한을 자극하면서 남북관계를 무한 대치로 이끌고 있다. 이 때문에 많은 국민들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게 아닌가 불안해 하고 있다. 북한을 자극하는 배경에 뭔가 정치적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게 아닌가 의구심을 갖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한다.
남북관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는 과거에도 몇 차례 있었다. 대표적으로 1997년 제15대 대통령선거 직전에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진영에 유리한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해 북측 인사에게 휴전선에서 무력시위를 해 달라고 요청한 혐의로 기소된 ‘총풍 사건’이 있다. 또한 2010년 6월 2일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5월 20일에 천안함 조사결과를 발표해 정치적으로 활용하려 했다는 의심을 받았다. 하지만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집권당이 패배했다.
국제정세의 불안정 속에서 한반도에서의 전쟁 가능성을 막고 평화를 관리하는 것은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정부의 기본책무이다. 정치적 의도가 있든 없든 더 이상 북한을 벼랑끝으로 몰지 말고 남북관계를 정상화시켜야 한다. 남북관계 정상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 관리의 출발은 기존의 ‘9.19군사합의’를 견지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