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아프리카·남미 향한
우크라 지원 대열 합류 손짓
팔 민간인 고통에는 ‘소극적’
위선적 행보에 비판의 눈초리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이후 미국과 유럽 등 서방 국가들이 이스라엘에 대한 전폭적 지원을 약속하면서 글로벌 사우스(아시아·아프리카·남미 개발도상국)를 설득해 우크라이나 지원 대열에 합류하게 하려던 서방의 외교적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7일(현지시간) 서방 관리들과 외교관들을 인용해 이같이 전했다. 미국과 유럽이 수개월 동안 러시아의 러시아를 국제법을 위반하는 ‘왕따’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으나 지난 7일 하마스의 공격 이후 이스라엘의 무력 보복에 대해 서방이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이스라엘을 감싸는 듯한 태도를 취하면서 글로벌 사우스 사이에서 위선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는 것이다.
인도, 사우디 아라비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을 포함한 글로벌 사우스는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하는 대신 자국의 실리를 중시하는 독자적 행보를 보여왔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이 일어나기 한 달 전인 지난 9월 초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미국과 유럽은 유엔 헌장과 국제법을 강조하며 개도국 정상들에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민간인 공격을 비판해줄 것을 촉구한 바 있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력 시설 및 민간인 공격을 전쟁범죄라고 비판해온 미국과 유럽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무차별 폭격과 물·전기·가스 차단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요르단과 이집트 등 아랍 국가들은 가자지구 민간인 보호와 관련해 목소리를 높이라고 서방 관리들을 압박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주요 7개국(G7)의 한 고참 외교관은 FT에 “우크라이나와 관련해 글로벌 사우스를 설득하려는 노력은 물거품이 됐다”면서 “그들은 다시는 우리 얘기를 듣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외교관은 “우리가 우크라이나에 대해 했던 말들을 가자지구에 적용하지 않는다면 모든 신뢰를 잃을 것”이라면서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인권에 대해 하는 말을 브라질, 남아공, 인도네시아 등이 믿을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일부 미국 외교관들은 조 바이든 행정부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지지가 대다수 글로벌 사우스의 입장과 크게 괴리됐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주요 개도국들은 전통적으로 자결권과 미국의 지배에 대한 저항의 차원에서 팔레스타인 독립을 지지해왔다.
이 같은 상황에서 결국 러시아가 수혜를 입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 서방 외교관은 “우리는 러시아가 중국의 지지를 받아 이 상황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면서 “우크라이나 지지 결의안을 위한 다음 유엔총회에서 기권하는 국가들이 크게 늘어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