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하마스 참극'…팔레스타인에선 무슨 일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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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3-10-11 11:17 조회994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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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된 '하마스 참극'…팔레스타인에선 무슨 일 있었나
- 이유 에디터
- 승인 2023.10.10 22:05
유대국가 건설, 팔레스타인 파괴 설계자 스모트리히
올들어 서안지구 합병 작업 본격화…"민주주의 포기"
이스라엘, 하마스 사태 활용해 합병 강행 가능성 주목
초강성 스모트리히 "인질 문제 심각하게 고려 말아야"
"하마스를 인정사정없이 쳐야 하고 인질들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말아야 한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7일 새벽 육‧해‧공을 통해 기습공격을 하고 100명이 넘는 민간인을 인질로 잡고 있다고 발표한 직후 이스라엘의 베잘렐 스모트리히 (40) 재무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그날 오후 긴급히 소집된 이스라엘 각료회의 자리에서였다.
최악의 경우 민간인 인질들의 생명과 안전을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스라엘 지상군을 투입해 가자지구의 하마스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실제로 이틀 후인 9일 아부 우바이다 하마스 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사전 경고 없이 우리 국민을 표적으로 삼는다면 유감스럽게도 우리가 붙잡고 있는 민간인 인질 중 한 명을 처형할 것임을 선언한다"고 말했다.
보복을 공언한 이스라엘과 이에 맞선 하마스가 극한 대결을 벌이면서 인질을 비롯한 민간인들의 대규모 살상을 동반하는 참극으로 확대될 우려가 작지 않다.
스모트리히는 이타마르 벤-그비르(47) 국가안보장관과 함께 유대교 근본주의 정당인 '종교적 시오니스트당'의 지도자로 베냐민 네타냐후 극우 연정 내에서도 초강경 그룹에 속한다.
스모트리히 "인질들 문제 심각하게 고려 말아야"
조 바이든 대통령이 8일 "테러" "잔혹한 만행"이라고 하마스의 공격을 규탄하고 이스라엘 편에 서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저간의 사정을 보면 이스라엘의 귀책 사유도 적지 않다.
문제는 부패 사건으로 실각했던 네타냐후가 작년 11월 총선을 통해 총리로 복귀하기 위해 연정을 구성하면서 스모트리히와 벤-그비르에게 사실상 '실권'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즈>의 3일 자 기사에 따르면, 이들의 주요 목표는 두 가지다.
가장 중요한 목표는 요르단강부터 지중해에 이르는 '유대 국가'(Jewish state)의 창설이다. 이를 위해 서안지구에 정착을 확대하고 팔레스타인의 국가 건설 열망을 꺾음으로써 팔레스타인 주민을 이웃 요르단을 비롯해 다른 아랍 국가들로 이주하도록 압박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1967년 6월 3차 중동전쟁('6일 전쟁')에서 아랍연합군을 이기고 강제 점령한 서안지구(요르단), 가자지구(이집트), 골란고원(시리아)을 아예 자국 영토로 편입하겠다는 얘기다. 서안지구에는 35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있고, 팔레스타인 당국이 이곳의 40%를 관할 중이다.
사법부 무력화, 서안지구 합병 앞둔 정지작업
또 하나는 이스라엘 정부의 '독단적 결정'을 견제해왔던 유일한 합법 기구인 대법원의 권한을 제거해 사법부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네타냐후 정부는 지난 1월 이런 내용의 '사법부 기본법 개정안'을 공표하고 합법적 독재를 밀어붙이면서 시민들의 거센 항의 시위를 불렀다.
과거 대법원이 팔레스타인 주민 사유지에 건설한 정착촌의 합법성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사법부 무력화 추진이 서안지구 정착촌 확대를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의 성격도 있다.
특히 스모트리히는 국방부 내 '특별 직책'도 맡아 사실상의 서안지구 합병 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으며, 재무장관으로서 팔레스타인 당국으로 가는 돈줄을 차단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
스모트리히는 1980년 골란고원 태생으로 서안지구 유대인 정착촌 베이트 엘에서 성장했다. 그는 수시로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인종주의적 발언을 하고 공인된 동성애 혐오자다. 2019년 교통장관 시절엔 서안지구 정착민을 위한 도로와 인프라 건설 작업으로 유명세를 탔다.
크네세트(이스라엘 의회) 의원이던 2017년 그는 '이스라엘의 단호한 구상'이란 장문의 기고를 통해 신속한 정착 확대와 팔레스타인 영토 합병을 통한 서안지구 전체에 대한 장악 방안을 제시했다.
'이스라엘의 단호한 구상'…팔' 정체성 제거
<포린 어페어즈>에 따르면, 그는 "강에서 바다까지 아우르는 하나의 유대 국가 건설이란 우리 민족의 야망이 기정사실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며 "아랍 국가는 절대 이 땅에서 나올 수 없다는 점을 아랍인과 전 세계인의 의식에 각인시키려는 게 목적"이라고 썼다.
그의 구상을 보면, '새로운 유대 국가' 안에서 팔레스타인인은 군 복무를 통해 충성을 증명하지 못하면 보통 선거권을 얻지 못한 채 '2등 국민'으로 살아야 한다. 이를 거부하고 팔레스타인 독립국을 꿈꾸면 각종 압박을 통해 다른 나라로 떠나도록 하고 있다. 무장을 들고 저항하면, 테러리스트로 간주하고 이스라엘 군을 동원해 토벌하겠다는 내용이다.
<포린 어페어즈>는 "그의 구상은 팔레스타인인의 국가 건설 희망을 부시고 차별적 권리를 지닌 채 이스라엘 통치를 받도록 강압함으로써 팔레스타인 정체성을 제거하고자 고안된 것"이라며 "팔레스타인 정체성의 내장을 도려내야 한다고 주장해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것이 구상으로 끝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스모트리히는 서안지구 합병 지휘권을 확보하자마자 신속히 행동으로 옮겼다. 서안지구에 추가로 50만 명을 늘려 유대인 정착민을 100만 명으로 만들고 1만3000개가 넘는 정착촌 구축 계획을 마련했다. 이 중 80%는 '하나의 팔레스타인 국가' 가능성을 애초에 좌절시키고자 서안지구 심장부에 조성하기로 했다.
서안지구 합병 작업 본격화…"민주주의 포기"
올해 2월에는 팔레스타인인 사유지에 무단 건설한 서안지구 내 9개의 전초기지를 합법화함으로써 그동안 불법적으로 설치한 약 80곳의 전초기지들에 대한 합법화의 길을 열었다. 8월에는 뒤늦게 합법화한 전초기지들을 완전한 정착촌으로 전환하는 것을 허용하기도 했다.
특히 7월에 스모트리히는 크네세트 외교국방위원회에 출석해 팔레스타인 당국이 관장하는 서안지구 40% 지역에 있는 팔레스타인 빌딩들을 "국가안보 위협"을 거론하며 '철거' 계획을 공개했다.
또한 서안지구 특정 지역 내의 기본 인프라 건설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당국의 특정 행위에 대해선 "적대적 정치 행위"로 규정해 관련 자금을 압류할 수 있도록 했다. 앞서 3월에는 서안지구 합병을 겨냥해 극우 정당과 연계된 민간 자경단을 구성해 서안지구 내 이스라엘인들에 대한 통제를 가능하도록 했다.
이것이 그동안 서안지구에서 스모트리히 주도로 네타냐후 정부가 벌인 일들이다.
서안지구 합병 등을 통한 '새로운 유대 국가'의 청사진은 1948년 5월 이스라엘을 건국하면서 다비드 벤구리온 초대 총리가 △ 유대 국가 △ 민주주의 △ 영토('야훼가 약속한 땅') 회복 등 세 가지 원칙(트릴레마) 중에서 민주주의를 포기하고 독재국가로 가겠다는 선언으로 읽힌다. 실제로 스모트리히는 "민주주의 손상"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은 그 이상도 지불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하마스 사태 활용해 합병 강행 가능성 주목
하마스 기습공격 사태 이전에 사우디아리비아가 '이스라엘-사우디 수교'와 관련해 미국과 협상하면서 1993년 오슬로 협정의 '두 국가 방안'(two-state solution)에 따라 서안지구 내 이스라엘 점령지역 중 상당 부분을 팔레스타인에 인도하고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건설할 수 있도록 협조할 것을 그 조건 중 하나로 내걸었다.
이를 두고 네타냐후는 고민 중이었는데, 스모트리히는 "팔레스타인에 어떤 양보도 않을 것이다. 그것을 소설"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하마스 기습공격으로 촉발된 유혈 참극으로 일단 미국 중재의 사우디-이스라엘 간 관계 정상화 협상은 동력을 잃게 됐다. 사태의 진전을 지켜봐야겠지만, 스모트리히를 비롯한 이스라엘 유대 초강경 그룹이 하마스에 대한 서방세계의 '공분'을 활용해 자신의 서안지구 합병을 밀어붙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스라엘의 진보 성향 언론인 하레츠는 8일 사설을 통해 하마스의 공격을 사전에 파악하고 막지 못한 이스라엘의 정보 실패와 미흡한 준비 태세 등을 비판하면서 네타냐후 총리의 책임론을 거론했다.
이에 네타냐후는 야권을 대표하는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와 제2야당 국가통합당의 수장 베니 간츠 전 국방부 장관을 '비상 정부'에 참여시키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라피드 전 총리는 초강경파인 스모트리히와 벤-그비르를 해임해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다.